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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선택과 선택 사이에서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게 되는 소설.
평소 남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꿈꾸다가도 때로는 오규원 시인의 시 제목처럼 가끔은 주목받은 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평범함과 주목받은 생이라...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이내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 지금 보다 편안하고, 많은 것을 결정 할 수 있는 진짜 멋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보니 유년시절에 생각했던 장미빛 미래는 그저 환상일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체감하게 되었다.
왜 그때는 그런 걸 몰랐을까? 어른의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고 내가 선택했기에 그것을 묵묵히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뭐 이런 삶이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남녀간의 문제 또한 처음 만났을 때는 불이 붙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활활 타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잔불조차 남지 않는 차가움만 존재한다. 그런 시간을 서로가 노력하여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둘 중 누구 하나는 어느새 내가 선택한 그 이를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거야. 저 장난감 같은 반지는 또 하나의 인생의 의미를 띠고 빛나지 않아. 일상으로 돌아가 다른 손가락에 끼워질 저 반지를 보고 떠올리는 건 또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이 시끄럽고 꼴불견인 여행뿐일 테니까. 우리에게 있는 건 지금과 과거, 미래뿐이야. 마사토시가 함께하지 않는 날 상상하는 건 만일 내가 개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 p.49
가꾸다 미쓰요의 <평범>은 총 6편의 단편이 담겨져 있는 단편집이다. 여섯 편의 단편은 표제작인 평범과 다르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열정적인 시간이 지나고 잔불조차 남지 않는 상태에서 남편들은 그 시간을 그저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부인들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에는 '이혼'으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또 하나의 인생' '달이 웃는다' '오늘도 무사 태평' '주방 도라' '평범'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는 하나같이 이어졌던 관계가 어떤 이유로 소원해져 관계를 끊고 다른 이를 선택해 살지만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왜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되고, 관계의 시작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선택과 선택사이에서 놓쳤던 인연들을 떠올리며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만약' 내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각 인물의 상황에 따라 여러번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 그들이 한 선택은 결국 최악의 상황이고, 그 최악의 상황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또한 잘못이 있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하여 '만약'이라는 상황을 대입해 다시 선택의 기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가정법이상으로 현실 도피로 느껴졌다.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결혼생활에 대한 권태로움에 대해서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더불어 우리나라 정서와는 다른 일본 특유의 문화들이 많이 베어져 나오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어라면, 만약에 그랬더라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겠지 하는 그들의 가정법들. 그러나 그 시간에 그 사람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인물이 갖는 특성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들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용서할까? 말까?
"용서할래."
그렇게 대답했다. 그것 이외의 대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해도 아픈 일은 이미 겪어 버렸고, 그 아픔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게다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무서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때 야스하루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경정하는 것이 엄청나게 두려웠다.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해 버리면 줄곧 용서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또한 그 누군가도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게 된다. 그런 무거운 기분을 안고 자신도 누군가도 살아가게 된다. 그런 게 싫었다. 어른이 된 지금 짐작하건대 여섯 살의 야스하루는 분명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 p.89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은 '달이 웃는다'다. 다른 단편들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이 단편만은 주인공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읽었다. 여섯 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그 시간의 어린 나는 현명한 선택으로 잘못을 한 그 누구를 살렸다. 그 시간을 지난 나는 나와 함께 했던 아내를 이해하지 않기로 했지만 어린 나의 선택을 되돌아 보면서 다시 선택을 한 그의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는 다시 누군가를 만나도 똑같은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이란 게 처음부터 있을까? 아니면 만들어져 가는 걸까? 만들어져 가는 거라면 언제, 어떤 계기로 그 뒤가 정해지는 걸까? -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