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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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다함께 들어봐요!


​ 귀가 예민한편이다. 비교적 작은 소리도 잘 듣는 편이기에 시끄러운 곳을 잘 가지 않는다. 집에 있을 때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들었던 노래를 계속해서 틀어놓은 경우가 많고, 좋아하는 가수도 한정적이다. TV나 라디오도 한시적으로 볼륨을 줄이고 잠깐 들여다 볼 뿐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더 선호한다.


책을 읽듯 글자를 통해 보는 것은 좋아해도 귀로 듣는 것은 익숙하게 들려오는 노래가 아닌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음악은 때로 피로감이 느껴져 새로운 영역을 발을 딛지 않았다. 그런 시기가 오래 되었고, 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개척할 여지가 1도 없었는데 김정범 음악감독의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를 읽고 그가 살며시 건네주는 리스트에 '그럼, 한 번 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경력으로 보아 많은 직함을 갖고 있음에도 그의 글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순수하다. 


"곡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국에 대한 생각을 하다 지하철을 놓치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중에도 아이디어가 떠올라 데이트를 망치기도 하는 거야." - p.88


음악 감강도 독서와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정과 다독을 하듯 음악을 듣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심할 정도의 다독 습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 시절, 두 학기에 걸쳐 필수과목인 지휘법을 수강할 때였습니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이나 이탈리아의 작곡가 '루지에로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팔리아치'등의 악보를 닳도록 정독했지요. 왜냐하면, 이 악보들을 보면서 직접 지휘를 하는 것이 시험이었거든요. 그것도 제가 평소 따문하게 생각해온 스트라빈스키나 레온카발로의 음악을요! 그런데 정독을 거듭하면서 이 음악들이 마법처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듣지 못했던 멜로디와 악기 소리가 들리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느껴지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 후로 어떤 음악들에 대해서만큼은 악보를 정독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 p.94


음악인에 관한 영화를 보다보면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들이 하나의 소리가 되어 멜로디가 되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 음악은 그저 삶 자체였다.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어렸을 때 어떤 노래가 좋아 라디오에 그 노래가 나오면 녹음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지만 그와 연배가 꽤 많이 나는 시절이었는지 그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다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년시절에 그가 갖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어디서 출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의 귀를 믿는 것. 그리고 새로움과 실험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 만약 실패한다면? 간단해. '아임 소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거지 뭐. 다시는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설령 그 실수로 아무도 나와 일해주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정말로 나쁜 일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실험을 멈추는 것이야." - p.164


고백하자면, 이 코너를 시작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계기는 장 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의 영화들입니다. 그는 새로운 물경이라는 뜻의 '누벨 바그 Nouvelle Vague'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지요. 지금까지 수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존재하지만, 단 한 사람의 거장을 꼽으라면 저는 고다르를 꼽고 싶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접한 그의 영화에서 대사와 배경음악을 비롯한 모든 소리가 영상과 함께 시처럼 혹은 긴 클래식 음악처럼 다가온 때의 경이로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운드와 이미지를 향한 본격적인 관심도 그의 영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p.248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소개하는 뮤지션의 음악들 중에서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제외한 단 한곡도 들어보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평소 음악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 했구나 싶기도 하고, 그가 소개하는 수 많은 곡들을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알아 갈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뮤지션의 음악을 듣기 보다는 책장 가까이에 책을 두고 천천히 1~2곡씩 음악을 들어보며 그가 이야기하는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다.


폴란드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헨릭 고레츠키는 클래식의 영역에서든 대중음악의 영역에서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인물입니다. 보기 드물게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든 음악이 지닌 미래지향적 요소를 이론적으로, 감성적으로 빼어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 p.250 


그는 잔잔하게, 때로는 친근한 이웃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음악을 권한다. 누군가 권한다고 쉽게 빠져 드는 성격이 아니건만 그가 권하는 음악은 욕심을 내서라도 천천히 들어보고 싶다. 음악도 미술처럼 기본적인 베이스가 깔려야 더 깊이있게 들을 수 있지만 계속해서 음악을 듣는 연습이 되야 비로소 전문가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는  그가 작업한 '허삼관' 이외에도 그가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했을 때, 오랜시간 사귀던 연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 느꼈던 순간, 순간들을 그는 음악으로 글로 표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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