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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되었습니다 - 영화 [희생부활자] 원작 소설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평점 :
죄와 벌에 관한 완전한 심판이란 무엇일까?
요즘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것 보다 매일 방송되는 뉴스의 소식들이 더 센세이션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뉴스에서 전해주는 소식 보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의 수위가 놓았다면, 지금은 현실 속 뉴스의 소식들이 강렬한 펀치를 날려주는 것만 같다. 현실 속에 일어난 잔인한 사건들이 내가 읽고 보는 것 이상으로 더 강하고, 잔인하게 사건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자비한 살인과 폭력으로 아이, 어른, 남자, 여자, 부모, 형제, 이웃 할 것 없이 나를 중심으로 어긋난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길을 지나다녀도,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도 버릇처럼 슬쩍 옆 사람의 동태를 살피게 된다. 다른 어느 동물 보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라는 말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명에 대한 존엄성 보다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인 살인이거나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는 최근에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희생부활자>의 원작소설이다. 배우 김래원과 김해숙이 주연배우로 출연했는데, 원작소설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영화 보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는터라 이번에도 영화보다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죄의 경중을 따져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이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가해자의 죄의 대가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처벌하는 것 같다.
박하익 작가는 우리가 늘, 뉴스로 보는 잔인한 사건 조차도 그에 합당한 댓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특이하게도 소설 속의 피해자들이 죽었음에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진홍의 엄마인 명숙 역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어떤 남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본 진홍은 7년이 지났음에도 늘, 자신이 엄마를 지키지 못했음을 자책한다. 다시 나타난 엄마가 생소하면서도 반가운 진홍이지만 명숙은 자신의 아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를 죽이려 한다. 왜? 자신을 죽인 범인만을 찾아 죽이고 사라진다는 다른 희생부활자들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아들인 진홍에게 달려든다.
기억의 전진법칙은 인간이 경험한 사실을 진술할 때 시선은 전방을 향하고 경험도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회상된다는 법칙이다. 반면 거짓말을 지어내는 경우에 인간은 상황이나 장면을 마치 제3자의 시점에서 묘사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상화에서는 '집을 나왔다'라고 결과적 행위만 추출해 간략히 말한다. 거짓말을 말할 때에는 필요 없는 사족, '이를 닦고 나서 집을 나왔다'는 과정적 행위까지 굳이 묘사하여 듣는 사람에게 더욱 그럴 듯하게 말하려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 p.54
자신을 죽인 범인을 죽이기 위해 다시 나타나 그 범인을 죽이고 소멸된다는 설정이 기발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명숙에게는 마치 불량품처럼 희생부활자들과 달리 다른 시스템을 작동하고, 진홍은 다시 나타난 이가 진짜 엄마인지 아니면 엄마와 같은 모습을 한 다른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항상 명숙 옆에 붙어 있다. 국정원의 직원들이 명숙을 가둬두고 추적 관찰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진홍은 가려진 실체 안에서 엄마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진짜 살인범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그를 둘러싼 일들이 마치 진짜 범인은 진홍에게 화살표를 기울인 듯 하지만 진홍은 오롯하게 자신의 엄마만을 지키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7년 전과 같은 불행한 일은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저는 인간의 값어치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 p.162
함무라비 법전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목숨을 앗아갔다면 가해자 역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법칙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마저도 속이 시원스럽게 내려가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죄와 벌이 동등하게 해결되면 이보다 더 명확한 해결법이 아닌가 싶었으나 읽는 내내 이런 법칙이 주는 결말은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에 대한 명확한 결론 보다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는 사람이 야차와 같은 얼굴을 하며 그를 혹은 그들을 죽인다고 하니 그 또한 한 사람을 오롯하게 인간의 윤리와 도덕적인 잣대를 댄다면 완벽한 심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만 영혼을 가진 게 아니야. '이야기'도 인간처럼 각기 영혼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일단 뼈대가 서고 작동되기 시작하면 그럴 듯하게 진행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괴상한 이야기도 천역덕스럽게. 꿈결처럼 말이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어린 아이라도 얼마든지 어른처럼 말할 수 있지." - p.228
책은 시종일관 진홍에게 시선을 두면서도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인 하형과 경채에게도 무게의 중심은 둔다.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무게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 진홍의 죄의 무게는 이야기가 계속 진행 될수록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넘어간다. 과연 진홍은 자신의 엄마를 죽였을까? 그의 치명적인 과거가 드러나면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이 더해져 자꾸만 진범으로 몰리는 그에게 과연 진실의 입이 문을 열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한시도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었다. 현실 속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도 치부 될 수도 있겠지만 죄와 벌에 관한 이야기를 박하익 작가만의 독특한 설정으로 묵직하게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의미있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