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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평점 :
'모성'이라는 두 글자 밖에는 할 말이 없는.
요즘은 책에 쓰여진 이야기보다 현실 속 뉴스가 믿을 수 없는 소식들을 전달한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사람이라면 으레 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그렇게 범행을 저질러 왔음에도 태연하다. 모자이크 처리된 범인의 화면 속에 사건의 동기와 범행 등이 그들의 자백에 의해 서서히 밝혀진다. 피해자의 부모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브라운관 안에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일마다 보는 뉴스 소식은 또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이전에는 상상 할 수 조차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는 마치 브라운관 안에서 전해지지 않는 그들의 심정을 이어받아 쓴 이야기 같다. 제목 그대로 생명의 탄생이 보이지 않는 신의 손에 좌지우지 밖에 될 수 없고, 내 안의 생명이 내 손에 오기까지의 길고 긴 과정을 작가는 여과없이 그려내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은 자연의 섭리 중 하나지만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삼신 할머니'가 점지해 주시는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신의 영역이기도 하다. 힘든 과정을 거쳐 나의 품에 들어온 아이, 아이의 아빠 보다 열 달 동안 아니 그 전부터 아이의 탄생을 고대하던 엄마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염원하는 것이었고, 그것만이 나의 행복이었을 것이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도록 지켜주는 것. 그것이 모성이고, 내 세상은 오로지 그 아이 하나뿐임을 <성모>에서 보여준다.
누군가의 애달픔이 더해진 가운데 아이이데시에서 벌어진 영유아 살해사건은 아이를 가진 가정에 충격을 던져주고,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갖게 만든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가오루의 엄마 호나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 벌어진 사건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살해사건 때문에 조바심을 갖는다. 내 아이에게 혹여나 나쁜 손길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본의 강간죄, 강간 치사죄 형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가벼운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사카구치는 수사에서 강간죄 피해자를 만날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갔다.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절망 끝에 자살한 피해자도 있었다. - p.75
"수사 회의에서 유력한 정보나 증거가 올라오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녀석을 만났다고 받아들이도록 해." 다니자키는 "네?" 하고 잠시 갸웃하더니 이윽고 "아아,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일단 의심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명심할게요!"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칠 무렵에는 이미 아이이데 경찰서 앞에 도착해 있었다.- p.106
책은 얇지만 놀라울 속도로 빠르게 읽힌다. 도저히 손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건이 더해지고, 뉴스로 전해지는 사건을 보는 제 3자의 시선이 여럿 더해지고, 그 속에 숨어있는 날큼한 시선이 더해져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친절의 시선이 한 아이에게 독이 되고, 사건이 더해지기까지 우연의 시간이 교차된다. 경찰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치밀한 범인은 촘촘한 거미줄 사이를 벗어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여 범행을 저지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굉장한 흡입력 있는 작가의 필력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하나하나 벌어지는 사건들이 치밀하고 섬세하게 방향을 틀어나간다.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여럿 있었지만 소개하다보면 스포일러가 나올 것 같아 적어놓지 못할 정도로 아키요시 리카코가 그려낸 문장은 하나도 허투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이끌어가는 힘과 순간적으로 장면이 바뀔 때 순식간에 다시 뒤틀어가는 메세지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매섭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반전은 극의 희열감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들었을 만큼 놀라운 결말로 끝을 맺고 있는 작품이다. 놀랍도록 충격적인 이야기 보다는 글을 풀어가는 힘이 좋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