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로 읽는 세상
김일선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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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단위는 언뜻 의식하기는 힘들지만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의 기준이 어떤 식으로 삶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인간이 자연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이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 p.16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만났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라 그저 스르륵 지나갔을텐데, 근래에 접했던 과학분야의 책들이 생각과 달리 재밌게 읽혀 또 한 권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들었던 과학은 어렵기도 했지만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지 실생활에 깊이 도움을 주거나 흥미를 돋우지 않고 그저 수학공식을 익히듯 과학을 배웠다. 더욱이 어렸을 때 실험을 하다가 짝꿍인지 아니면 실험을 함께한 반 친구였는지 그 친구가 실수로 식초가 가득든 병을 내 과학책에 쏟아버렸다. 과학책을 못 쓰는 건 둘째치고, 그때 맡았던 식초 냄새가 얼마나 강했던지 아직도 식초 냄새만 맡으면 욱하고 올라올만큼 식초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가 내 과학은 물론 과학에 대한 흥미를 모조리 빼앗아 버린 원흉이었다.


그 후로 정말 과학을 싫어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고 회자되었던 책을 찾아 읽고, 흥미로운 책들을 골라 읽으니 예전보다는 과학을 접하는데 있어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 <단위로 읽는 세상>은 어려운 과학의 이야기보다는 과학의 기초가 되는 '단위'와 단위로 얽혀있는 문화, 경제, 과학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져 있어 흥미를 끈다. 무엇보다 저자에게는 악몽이었지만 '0점'을 맞은 시험을 통해 단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셨던 노교수님으로 인해 훗날 그는 '단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고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쓰는 많은 것들은 '단위'에 의존해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단위를 의식하지 않고, 으레 그것이 원래의 기준인 것 마냥 사용한다. 단위 때문에 보잉 767 비행기가 연료가 부족해 잘못하면 큰 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날 뻔하고, 나사의 화성궤도선이 한 순간에 불타버린 것도 '단위'를 착오하여 생긴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기준을 만들었음에도 인간이 하다보니 실수가 생겨나고 단순한 실수하고 하기에는 커다란 손실이 한 순간에 날라간 사건은 웃지 못 할 일이었다.이렇듯 우리는 많은 과학적 발명과 서로의 약속과 약속으로 생겨난 단위가 어떻게 발견되고, 만들어져 왔는지는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재밌는 사례 가운데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화폐의 단위였다. 우리나라는 원, 일본은 엔, 중국은 위안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둥글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사이가 좋든, 좋지 않든 양 옆에 있는 중국과 일본의 영향이 없지는 않나보다. 이 밖에도 국제 단위계에 표기된 인물들의 이름을 따서 단위를 딴 이름도 재밌게 읽은 챕터다. 외국의 많은 지명이나 이름을 보면 대체적으로 그들이 발견을 했거나 발명을 한 이름을 많이 따 그들의 업적을 새겼는데 제일 많이 이름을 남긴 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순이다. 아무래도 산업혁명을 이룬 국가들이 과학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고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업적에 힘입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단위들을 유용히 쓰고 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아도, 어렵게 느꼈던 이들도 문화와 문명, 우리가 늘 쓰는 단위의 중요성을 인식 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단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일상의 언어이면서도 중요한 언어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큰 간극인지를 다시끔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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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시간이 만드는 기적, 그곳의 당신이라는 이야기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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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의 기록들.


강세형 작가의 책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를 보자마자 멋진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은연중에 많이 들어봤지만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친숙하게 들렸다. 그녀의 이름은 중성적인 느낌이나 그인지 혹은 그녀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해서 그런지 책을 통해 성별을 명확히 알려줌으로서 명확히 그녀의 성별을 알게 된 것 같다.

멋진 제목과 그녀의 친숙한 이름에도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책이었다. 그녀가 말한 책과 영화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공감이 가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음에도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기를 몇 번 펼치고, 또 펼치다 보니 이제야 그녀가 말한 시간의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좀처럼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강세형 작가의 책은 포근하게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낯선 곳에 발을 디디며 어떤 공간에 들어가보니 벽면 한 가운데 빔프로젝트가 환하게 켜져 있는 것 같았다. 낯선 공간의 어색함과 환한 불빛이 주는 안도감, 벽면 한쪽에 켜 놓은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그녀가 소개해준 책 가운데서는 몇 권 읽어도 보았고,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도 있어서 반가웠지만 영화는 대부분이 생소한 줄거리였다. 어느 한 분야를 좋아하다보면 매칭시켜 시아를 넓혀 보기 보다는 한 분야를 깊이 파헤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영화의 문은 닫아버리고, 책의 문만 활짝 열어놓았다. 작년까지 너무 치우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올해는 자중하고 분야에 관계없이 넓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내 친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제 정말 선도 그만 보고 싶다. 선 볼 때마다 우울해지기만 하는데, 우리 엄마는 언제쯤 포기하실까?" 한 달 전에도 이미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나는 또 깔깔거리며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다. "우울할 게 뭐 있어. 그냥 단편 소설 한 편 읽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에게도 분명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그 또한 시간을 겪어낸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오늘 날씨 참 좋다. 볕 좋은 카페에서 책 한 권 읽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 p.72


쳇바퀴 돌아가듯 출근하고 퇴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사이에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영화와 책, 나와 관계된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각각의 상황과 나이에 따른 고충들이 다를 뿐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읽고, 내가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고충을 담아 낼 뿐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지 어떤 의미 보다는 그 시간을 살아낸 우리의 시간들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작가 강세형은 말하고 있다. 시간의 빈 공간 사이에 우리가 욱여넣은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많은 생각의 편린들, 책을 읽으며 느꼈을 재미와 생각지 못한 결말이 훗날 명확히 떨어지는 선택이었음을 로알드 달의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소개해 준 많은 책 가운데 로알드 달의 책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의 영화는 꼭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성이 점점 매말라지는 것 같다. 나름대로 물도 주고, 영양분도 가득 준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은 자꾸만 현실적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행동반경이 자꾸만 좁아지는 것 같다. 강세형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욱여넣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고, 단단한 힘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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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의 하루 한 장
정호승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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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연말이 가까워지면 많은이들이 내년의 달력과 다이어리를 준비한다. 어느 해에는 서점에서 받은 달력을 쓰기도 하고 어느 해는 은행에서 받은 달력으로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각가의 해마다 책상에 올려 놓은 달력은 달랐지만 어떤 해에는 그 해의 달력이 넘쳐났고, 어느 해에는 한 개도 장만하지 못해 겨우 하나의 달력을 구해 책상에 얹어놓았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달력도 딱 하나만 준비해 놓고, 다이어리는 년도가 지난 다이어리를 재활용해 쓸 생각으로 장만하지 않았다. 매번 블로그에 한 해의 계획과 읽어보고 픈 책과 계획을 적어놓았는데 한 해가 지나 살펴보니 나는 작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작년 한 해에 읽었던 책을 정리해서 간추려 올리고, 올해 읽어보고 픈 책은 마음 속으로 몇몇 권을 정해놓고 있지만 늘, 예전처럼 공수표를 날릴 것 같아 혼자서 읽어보리라 다짐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떤 달력을 책상 위에 놓아주고, 어떤 다이어리를 써야겠다는 나만의 징크스아닌 징크스가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것까지도 탈피하고자 나름 편안하게 노트에 끼적이며 생활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경계선이 뚜렷하면서도 다르지 않는 시간들 사이로 나는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하는데 우연히도 정호승 시인의 시가 있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의 책을 일력으로 엮어만든 달력이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 때마다 달력을 넘기면 쓰담쓰담해주는 글귀를 마주치는가 하면 하루의 시작을 더 올곳게 만드는 글귀들을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가 지나 다시 재활용이 안되는 여타의 달력과 달리 <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의 일력은 다시 해를 넘겨 글귀를 음미해도 상관없는 달력이다.

내가 가장 힘들때, 아플 때, 마음이 속상할 때, 누군가에게 나의 속내를 털어내고 싶을 때 날짜와 상관없이 자주 넘겨보고 싶은 일력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하지만 저마다의 시간으로 바쁘고, 누군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없을 때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글귀가 사무칠 때 만나면 더없이 좋은 글이다. 누군가에게 쓰담쓰담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 일어 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글귀라 생각한다. 알고 있는거지만 누군가 너는 정말 잘 할 수 있어! 오늘 하루는 너무 힘들었지! 하며 기운을 북돋아주는 글들이 숨어져 있어 한 해가 든든한 것 같다.

새해의 시작은 늘 으쌰으쌰하며 모든 것을 다 해낼 것 같은 호랑이 기운으로 계획을 세우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몇 시간만 지나면 벌써 2월의 첫 날. 허물어졌던 마음을 단디 채우고, 첫 달의 설레임이 시작되는 시간. 시간은 금​세 넘어가니 2월은 조금 더 단단한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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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의 화가들 - 서로의 연관검색어로 남은 미술사의 라이벌 16
박미성 지음 / 책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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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있으면서도 다른 화가들의 이야기.


 2인칭 '당신'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화가들의 이야기에는 적확하게 쓰여진 제목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이름마저도 닮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니는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 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정하게 서로를 지켜주는 온점이 되어 그들을 지탱해 나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렘프란트 반 레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에두마르 마네,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로댕, 카미유 클로델,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살라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가 주인공들이다. 각각 2명씩 짝을 지우면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근대 조각사,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에 관해 인물로 살펴보는 미술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두 사람의 필모그라피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서로 활동했던 시기가 빗겨나가지만 다양한 형태로 예술을 표현했고, 조각가 혹은 화가의 입지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영역까지도 개척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러 책이나 소설을 통해 많이 접해봤지만작품을 토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소개하여 이야기한 것이 마음에 든다. 다만, 도판의 색감의 어두운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들의 관계 뿐 아니라 그들이 그린 그림이 왜 비난이 되었는지 미술사적으로 오해를 일으켰는지를 자세하게 들려줌으로서 그들이 그린 작품이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했던 그림도 많았지만 책 표지에 쓰였던 그림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혹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인지 물고기인지 알 수 없는 그 그림이 생경하면서도 눈에 아른거려서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이처럼 내 곁에 혹은 당신 곁의 화가들은 친숙하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우리들을 사로 잡는다. 그들이 살았을 때 많은 이들에게 호응이 좋았던 화가들도 있고, 때론 젊은 날에 쌓은 부와 명예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화가도 있으며, 그림 한 점 파는 것이 어려워 모델을 살 돈이 없어 거울을 보고 자신의 자화상을 엄청나게 많이 그린 화가도 있다. 시간이 지나 그 어떤 사연을 뒤로하고 그들이 그린 그림이 대표적인 미술사의 표본이 되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아닌 그들이 열정을 다해 그린 그림을 보면서 그들의 예술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고, 함께 있어서 힘이 되었고, 함께 있어서 더 마음 속에 불이났던 시간들을 마주 할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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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착한 여자 1~2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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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일생​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가 밀려가서 매 순간 새로운 해안선을 긋듯이 사는 것이다. 비록 폭풍우 몰아치고 파도가 뒤집혀 백사장이 유실되고 바다 아닌 것들이 바닷물로 뒤덮이는 순간이 온다 해도, 그래도 며칠 후면 다시금 고요해진 파도가 비슷한 자리에 해안선을 긋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 p.360


 공지영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녀의 작품 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푸른숲)을 좋아하는데 그 이후 그녀의 작품을 몇 작품 읽어왔지만 그녀가 그리는 작품 속 인물들이 포근히 와닿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은 다 불우하다. 어린시절의 불행으로 인해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녀의 곁에 다가서는 남자를 대신해 다른 이와의 애정을 갈구하다 다시 버려지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다 다시금 상처를 받는다. 그 이후 남겨지는 것들은 그들과의 관계로 인한 아이들 뿐이다. <착한 여자>의 주인공인 정인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30대의 어른 여자사람으로 되기까지 수 많은 바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녀에게 고백을 한 명수의 손을 잡지 않은 정인의 삶은 가시밭길을 가듯 고단했고, 책의 말미에 가서야 두 사람의 희망어린 인연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행동에 답답하여 화가 난다. 97년에 출간된 이 책은 아마도 시대적으로 많은 여자들의 일생을 담아내기도 했고, 또 지금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는 한창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이어서 어른 여자의 삶을 그토록 깊이 바라보지 못했다. 인물적인 한계, 환경의 한계가 비춰지면서도 정인이 연관되는 수 많은 인연들과의 실타래가 오밀조밀 복잡하게 얽혀나간다. 공지영 작가의 특유의 침잠한 필체가 정인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를 알려준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쉴 새 없이 너어가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만남, 사랑. 그러나 그들의 화살표는 이내 어긋나 버리고 여자 혹은 남자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현실 속 남녀의 관계는 차갑게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이내 그 상처를 마음에 담아내지 못하고, 스스로의 몸에 상흔을 내 버리는 막다른 상황까지도 몰고간다. 나의 상처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나와 관계된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일까? 고통을 넘어선 시간이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있어 더 큰 고독과 쓰라림으로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닌 사물이나 음악, 자연에서 주는 포근함이 정인의 마음을 다잡게 하고, 문득 한 순간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마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2004,북박스)에서 진솔이 건이에게 이야기를 건넨 것 처럼. 남녀 사이의 관계가 주는 희열만큼이나 고통을 수반하게 하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가는 바람에도, 한들한들 피어있는 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주는 평온함들을 고백하고 있다.


시간이 지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사는 삶은 저마다 다른 것 같아 보여도 닮아있고, 또 닮아 있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타인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글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리석음과 선택, 한계의 굴레 속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꼈던 책이다. 그래서 더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정인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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