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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착한 여자 1~2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한 여자의 일생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가 밀려가서 매 순간 새로운 해안선을 긋듯이 사는 것이다. 비록 폭풍우 몰아치고 파도가 뒤집혀 백사장이 유실되고 바다 아닌 것들이 바닷물로 뒤덮이는 순간이 온다 해도, 그래도 며칠 후면 다시금 고요해진 파도가 비슷한 자리에 해안선을 긋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 p.360
공지영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녀의 작품 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푸른숲)을 좋아하는데 그 이후 그녀의 작품을 몇 작품 읽어왔지만 그녀가 그리는 작품 속 인물들이 포근히 와닿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은 다 불우하다. 어린시절의 불행으로 인해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녀의 곁에 다가서는 남자를 대신해 다른 이와의 애정을 갈구하다 다시 버려지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다 다시금 상처를 받는다. 그 이후 남겨지는 것들은 그들과의 관계로 인한 아이들 뿐이다. <착한 여자>의 주인공인 정인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30대의 어른 여자사람으로 되기까지 수 많은 바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녀에게 고백을 한 명수의 손을 잡지 않은 정인의 삶은 가시밭길을 가듯 고단했고, 책의 말미에 가서야 두 사람의 희망어린 인연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행동에 답답하여 화가 난다. 97년에 출간된 이 책은 아마도 시대적으로 많은 여자들의 일생을 담아내기도 했고, 또 지금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는 한창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이어서 어른 여자의 삶을 그토록 깊이 바라보지 못했다. 인물적인 한계, 환경의 한계가 비춰지면서도 정인이 연관되는 수 많은 인연들과의 실타래가 오밀조밀 복잡하게 얽혀나간다. 공지영 작가의 특유의 침잠한 필체가 정인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를 알려준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쉴 새 없이 너어가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만남, 사랑. 그러나 그들의 화살표는 이내 어긋나 버리고 여자 혹은 남자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현실 속 남녀의 관계는 차갑게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이내 그 상처를 마음에 담아내지 못하고, 스스로의 몸에 상흔을 내 버리는 막다른 상황까지도 몰고간다. 나의 상처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나와 관계된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일까? 고통을 넘어선 시간이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있어 더 큰 고독과 쓰라림으로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닌 사물이나 음악, 자연에서 주는 포근함이 정인의 마음을 다잡게 하고, 문득 한 순간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마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2004,북박스)에서 진솔이 건이에게 이야기를 건넨 것 처럼. 남녀 사이의 관계가 주는 희열만큼이나 고통을 수반하게 하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가는 바람에도, 한들한들 피어있는 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주는 평온함들을 고백하고 있다.
시간이 지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사는 삶은 저마다 다른 것 같아 보여도 닮아있고, 또 닮아 있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타인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글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리석음과 선택, 한계의 굴레 속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꼈던 책이다. 그래서 더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정인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