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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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을 넘어선 한 중년의 삶 속에서.


마쓰이에 마사시의 첫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진입 장벽이 조금 있지만 읽고 나면 여운이 짙은 소설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여러번 몇몇 장면을 다시 되짚어 볼 만큼 좋았고, 그의 다른 소설이 있다면 모두 다 읽어보고 싶을 만큼 선명하게 각인된 작가여서 이번 신작 장편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도 기대가 되었다. 그의 소설은 서랍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섬세하다. 굉장히 촘촘하게 바느질이 잘 되어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성큼성큼 문장을 읽게 하기 보다는 천천히, 오래 음미하여 읽도록 하는 책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초 여름과 청쾌한 여름, 가을, 겨울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면,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깊은 가을과 초 겨울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청춘의 격정을 넘어선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쓸쓸하고, 다정하면서도, 허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몇몇 유명한 소설 중 첫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휘어감는 소설이 있는데 이 책 또한 다른 의미로 마음을 덜컥 하게 만든다. '이혼을 했다.'로 시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깐깐한 아내의 서슬퍼런 눈초리와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돌싱으로 돌아왔고,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그는 집을 아내에게 주고 나왔다. 결혼 할 당시에도 아내의 눈치를 봤지만 자신의 취향대로 가구를 사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다다시는 그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이 기거할 다른 집을 찾아 나선다.

마흔 여덟 살에 혼자 된 그는 다소 오래 되었지만 자신의 취향인 단독주택을 얻게 되고, 그곳에서 살고 있던 주인 소노다씨의 부탁과 허락으로 실내의 공간을 그의 취향으로 꾸며 나간다. 전작에서도 건축에 대한 설명이 실내와 실외, 건축을 둘러싼 풍경에 대한 설명을 섬세하게 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을 포함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에 대한 설명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각각의 서랍을 열어보듯 공간, 건축, 출판, 책, 책장,가구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런 다다시의 섬세한 감성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그저 아내의 눈치만 보고 안으로 삭혔어야 했으니 그도, 아내도 여러모로 불만이 쌓였을 것 같다. 각자가 이해하지 못한 성향들이 서로 상반되다 보니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각자의 길을 찾았지만 다다시는 이보다 훨씬 더 자신의 공간을 정성들여 만들어 간다. 편집자인 그는 책을 만들어가듯 집을 하나하나 고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간다.

소노다씨가 언제 돌아 올지 모르나 몇 년의 임대계약을 하고 나서 그는 그곳에 있던 길고양이 후미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우연히 결혼생활을 하며 만난 가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는 이전과는 다른 만남으로 그의 일상에 가나를 들인다. 청춘남녀와는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나는 그와 헤어지고 회사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갑작스레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다다시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녀와 설레는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잠시 가나의 아버지가 섬망증세가 시작되면서 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는 어중간한 상태로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노년의 삶들이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나 역시 다다시와 마찬가지로 그를 가족으로 끌어 당기기 보다는 애인과 호감을 느끼는 남자 사이의 관계를 유지한다. 집을 꾸미며 고양이 후미와 평온하게, 쓸쓸한 마음을 덮여주며 설레는 마음으로 가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때론 섬세하게 꾸민 집을 꾸미기 전과 후의 사진을 찍어 소노다씨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때론, 소노다씨가 준 그림 두 점에 대해 그녀가 건네 준 말과 달리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 듣게 되고,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유추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미스테리하게 느껴지지만 여유롭던 그의 일상과 여유가 서서히 넘어가는 해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어 울컥하게 만든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먹물이 스며들듯 그의 이야기는 차분하면서도 중년의 삶에 이어 노년의 삶까지 이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20대였다면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다다시와 가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정의 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청춘이라면 이런 관계조차 어정쩡하게 두지 않았으나 격정을 넘긴 그들에게는 가능한 관계였음을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훗날, 다다시씨가 원하는 대로 가나와의 관계가 더 진전이 되었을까? 책을 읽고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그의 책 제목이 깊이 와닿았다. 우리의 삶 역시 어떤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삶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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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공동주택에 살았으니까 말이지. 천장 위에도 바닥 아래에도 벽 너머에도 아무도 안 사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 - p.85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인가하고 "오카다라고 합니다. 거들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구신가?" 가나의 아버지는 표정을 잘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치매 노인이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카다입니다." "도와주러 왔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가나가 뒤에서 명랑하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요. 고맙군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가나가 내 등을 가볍게 쳤다. 고마운 게 '도와주러'와 이어지는 걸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는 걸까. 지금 그런 생각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도 내 머릿속을 뱅뱅 헛돌았다. - p.124~125

"나이를 먹었다고 주변을 정리하고 예금 통장이랑 눈싸움을 벌이면서 겁내며 살면 재미없죠. 이 집도 당신이 손을 봐줘서 이렇게 밝고 쾌적하게 되살아났잖아요. 비용 때문에 벌벌 떨지 않고 관리를 제대로 해주는 게 중요한 일이에요. 늙었다고 한탄해봤자 뭐가 되겠어요."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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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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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은밀한 이야기


 제시 버튼의 데뷔작인 <미니어처리스트>는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을 눈에 그려질 듯 그려냈고, 배경 만큼이나 인물 또한 특색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제법 도톰한 책이었음에도 이야기가 끝이나는 것이 아쉬워 페이지를 일부러 천천히 넘기곤 했다. <미니어처리스트>가 배경과 인물들 모두를 초점으로 둔 반면, 그녀의 두번 째 작품인 <뮤즈>는 시대적 상황 보다는 인물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1967년 6월과 1936년 1월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을 교차하며 각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대와 상관없이 흐르는 듯 보였으나 점차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 나가며 교집합을 이루어가는 것이 특징인 소설이다.

1967년 6월 현재의 시점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델이다. 그녀는 신발 판매원으로 근무하다가 영국 스켈턴 미술관에 타이피스트로 직장을 얻게 되고, 함께 살았던 친구의 결혼으로 인해 집에 홀로 남게되고, 축하 자리에 온 낯선 남자 로리를 만나게 된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며 쓴 시를 오델이 읊게 되고, 우연히 들은 로리는 그 시를 쓴 오델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에게 다가선다.


1936년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에서 부유한 저택의 외동딸인 올리브는 자신의 식구들 몰래 그림을 그린다. 그녀 곁에 친구처럼 다가서는 테레사가 마음에 든 올리브는 은밀하게 자신의 그림을 테레사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 사이 그녀의 어머니 세라는 이삭 노블레스에게 자신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세라와 함께 모델을 서는 올리브는 이삭을 마음에 품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된 올리브는 그 모든 마음이 영감이 되어 풍부한 색채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이삭이 완성되었다며 가져온 그림은 올리브가 그림이었다. 당시, 여자들은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렸다 할지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회였고, 미술학교의 통지서를 받았음에도 숨어서 그렸던 올리브의 재능에 탐이난 한 소녀의 실수 아닌 실수로 이야기는 점점 꼬이게 된다.


오델은 로리와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자신에게 성큼 다가서는 그에게 벽을 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에게 유일하게 남겨주신 어머니의 유품인 그림을 오델이 근무한 스켈턴 미술관에 의뢰하게 되고,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오델의 상사인 퀵은 로리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녀가 쓰는 글에 대해서 누구보다 응원해주며 도와주는 퀵의 손길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비밀을 안고 사는 그녀의 모습에 오델은 로리와 퀵 사이를 오가며 갈등한다. 화가 이삭 노블레스의 삶에 대해 현재와 과거에 밝혀지게 되고, 그림은 그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하여 그린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하며 전문가들이 나눈 이야기를 이야기를 우연찮게 오델은 엿듣게 된다.


올리브와 이삭, 이삭과 세라, 올리브와 테레사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자신의 욕망과 예술에 대한 질투, 혹은 성공이라는 목표아래 그녀의 아버지 해럴드는 페기 구겐하임에게 '밀밭의 소녀들'을 팔게되고, 유명한 컬렉터인 그녀는 해럴드를 통해 이삭에게 또다른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던 중 전쟁이 터지게 되고, 그들의 상황은 또 한번 반전이 일어난다. '뮤즈'라고 통칭되는 오델과 올리브는 닮은 듯 다른 시대의 사랑과 예술을 통해 펜으로, 붓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벽을 치고 살지만 퀵의 당부에도 로리와 밤을 보내게 되고, 우연히 로리의 집을 구경하게 된다. 그림과 그림사이에 어긋난 시간들을 돌이키듯 그녀가 발견한 팜플렛은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힌트가 되어 이야기가 조합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델과 올리브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녀들의 앞 길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퀵'와 '테레사'는 그들의 재능을 더 깊이 끌어올린 것과 동시에 나락으로 빠트렸던 인물이라 주인공들 보다 더 눈에 띈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신 보다 더 재능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사랑한 여자 올리브를 이삭은 사랑했을까? 어쩐지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혁명이라는 목표아래 여자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마음은 함께 하지 않았나 싶다.

부유한 조건에 엄청난 재능을 겸비한 해럴드와 세라의 딸 올리브가 오델이 살고 있는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30년 후에 재능이 있음에도 가난했던 오델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각 시대가 갖는 어려움 그래서 머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각각의 퍼즐 조각을 통해 그려냈다. 비로소 각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영감의 원천인 그들이 더 이상 사그러지지 않고, 우리들 앞에 드러냈으면 좋겠다. 많은 예술의 대표주자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평등하게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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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아하는 사람,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이 제일 나은 사람이라 여기게 된다.  - p.59


이삭이 올리브의 손에 장작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올리브는 그의 손끝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 올리브도 그를 만난 뒤로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캔버스에 그리고, 공책에도 스케치를 빼곡하게 채웠다. 올리브는 자신의 내면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이 길고 긴 영감이 끝날까 두려우면서도 이삭이 곁에 있는 한 창작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16


이삭은 이따금 유명한 화가를 보통의 다른 화가보다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참신함이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그림이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다른 점이라면서 '훌륭한 제도사는 될 수 있지만, 세상을 다르게 보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라고 말했다. 테레사는 온몸을 스치는 고통의 파도를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참신함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힘이었다. 테레사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이 소녀가 축복받은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 p.132


"모든 건 무너져요. 조금씩 별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죠. 그러다 알게 돼요. 발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리가 부러졌다는걸. 그런데 그건 내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던 일이에요, 오델. 타인의 마음 속에서, 혹은 당신이 만나지 못할 신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거죠. 그러다 어느 날, 돌 하나를 던지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돌이 힘 있는 얼간이의 차 창문에 맞아요. (생략)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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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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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심리 싸움


​ 리안 모리아티의 신작이 나왔다. <허즈번드 시크릿>(2015,마시멜로)을 시작으로 <정말 지독한 오후>(2016,마시멜로)에 이어 이번 작품인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를 포함해 세 권의 작품을 읽었다. 그녀의 소설이 출간 될 때마다 매번 벽돌 두께마냥 두터운 두께를 자랑하지만 그 어떤 주제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것 마냥 페이지가 쉬이 넘어간다. 다만, 그녀의 작품에 있어 아쉬운 점이라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감에도 이해 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로 보여지는 결말이다. 쉬이 이해 할 수 없지만 같은 문화권이 아니기에 넘길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되고,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결말로 접어들었을 때 그들의 선택이 결코 마음 속 깊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재밌는 미국 드라마 한 편을 산뜻하게 봤지만 잔영이 남을 정도로의 아쉬움이나 한 번 더 재독하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는 차이의 갭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은 참으로 쉽게 재밌게 읽힌다.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는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가 벌이는 심리 게임이다. 최면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35살의 싱글인 앨런은 부인의 죽음으로 8살 아이를 기르고 있는 핸섬한 패트릭과 연애하게 된다. 그는 첫 데이트에서 그를 스토킹하고 있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첫 데이트의 좋은 분위기로 인해 그의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의 그림자를 밟고 다니는 여자는 그가 예전에 만났던 연인인 사스키아였다. 그녀와는 몇 년전 헤어졌지만, 그녀는 헤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를 쫓아 다니고, 심지어 그의 8살 난 아들 책을 보호하기도 한다. 두 여자가 잘생긴 남자인 패트릭을 사랑하는 감정은 같지만 한 여자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애정'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고, 또 한 여자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집착'이라는 말을 쓰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붙일 수 없는 애정을 사스키아의 행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앨런은 그런 사스키아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껴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하지만 그녀가 인지하지 못한 어느 날 두 사람은 이미 만나기도 했다.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그녀의 행동들이 맞부딪쳤을 때 두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가 궁금했던 책이었고, 무엇보다 색깔이 다른 사랑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사랑과 집착은 동전의 양면처럼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보여지는 복잡 미묘한 순간들이 너무나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어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를 인식하며 읽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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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저기행 - 책으로 읽는 조선의 지성과 교양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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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좋은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고전 가이드북!



 시대적으로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조선시대'다 보니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인물이나 사건 각 왕권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의 생각이나 나라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그들이 쓴 책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유명한 어의인 허준 선생의 이야기도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알린 이순신 장군도,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드높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 조차도 그들이 쓴 저서 보다는 그들의 생애나 하나의 사건들에 대해서만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남기고 간 좋은 책들은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간혹 그들의 생애에 관심을 두다보면 그들이 남긴 저서를 읽고 싶어 책을 가까이 두고 읽어보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쉬이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시대가 지나 그들의 말로 풀어낸 해석도 그렇거니와 도통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없다면 읽어내기 어려운 책으로 느껴졌다.


<조선 명저 기행>에서는 각 부 별로 정치, 역사, 기행, 실학, 의학으로 나뉘어 명저들을 설명하고 있다. 1부 정치 명저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와 조선 오백 년을 지탱해준 헌법인 <경국대전>이다. 관리들의 지침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읽은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 책이기도 하다. 2부 역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유득공의 <발해고>가 눈에 띈다.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와 더불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읽어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읽을만큼 짧은 문장이 간결하게 적혀져 있음에도 읽는데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당시에 있었던 참혹한 일에 대해 피를 토하듯 반성을 하는 이야기여서 읽는 내내 열이 오르내릴 만큼 답답하게 느껴졌던 책이다. 


3부 기행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하멜의 <하멜표류기>다. 익숙하지만 제법 두꺼운 판본의 책으로 되어 있어 도전하고픈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이 없어 미루고 있었는데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통칭되는 그의 이야기를 꼭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4부 실학에서는 이익의 <성호사설>이다. 2부 역사 명저에 소개되어 있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처럼 교과서나 책을 통해 한 두 번쯤 접해봤던 택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책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5부 의학에서는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쉽게 쓰여진 <동의보감>을 읽고 싶다고 하셔서 쉽게 쓰여진 책을 찾으려 했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없어서 책을 구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몇몇 책은 쉽게 접할 수 없지만 고전으로 읽히는 책이 어떤 책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어서 좋았다. 


<논어>나 <장자>처럼 동양의 철학서나 역사서들이 많이 번역되는 것처럼 조선의 명저들이 현재 우리가 읽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낮춰 쉽게 번역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서를 읽는 재미도 쏠솔하지만 조선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읽고, 또 읽었던 책들과 저서들을 읽음으로서 그들이 남기고자 한 이야기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과 책을 연결해주는 책이라 더 재밌게 읽었지만 무엇보다 16권의 책의 핵심을 짚어주는 책이라 더 좋았다. 알고 싶었지만 어려워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 수 있었고, 더 깊은 내용을 원한다면 그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올해 가기 전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는 꼭 탐독해야겠다는 의지를 불끈 세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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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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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콕, 찔러주고 눌러주는 국가의 진짜 모습을 그려내다.


 2007년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즐겨읽지 않았으나 당시 우석훈 경제학자와 박권일 기자가 함게 쓴 책 <88만원 세대>(레디앙, 20017)가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책이었다. 그 분야의 책을 읽지 않아도 한 번쯤 뉴스나 신문을 통해 들어봤을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수십번, 혹은 수백번 들려 올 정도로 당시 청춘들을 대변하는 용어였고, 책이 출간된지 십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대표하기도 한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에도 나는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그 단어가 너무 듣기 싫었고, 표지에 그려진 사람이 마치 인형처럼 돌아가는 그 형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시대보다 더 나아갈 수 없는 도돌이표 같은 생활에 빠져나올 수 없는 세대의 지옥같은 모습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애써 피하려고 해도 두 사람의 글을 하나의 좌표가 되어 청춘들을 대표하게 되었고, 얼마 전 뉴스로 본 청년들의 실상에 대한 뉴스는 이보다 더 참담하게 느껴졌다. ('88만원 세대보다 더 아래의 금액으로 받는 세대'가 등장했다, 라는 뉴스였다.)


경제학자인 우석훈의 <국가의 사기>는 콕콕콕, 찔러주고 눌러주는 국가의 진짜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이전에 내가 느꼈던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 싫을 수 있지만 이전과 달리 요즘은 사회의 그런 과정 까지도 피하지 않고 글을 통해 접하고 있다보니 놀랍기 보다는 그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책을 읽기 전 그의 프로필을 보다가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만큼 간략하면서도 솔직한 속내의 글귀로 그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프로필만 보아도 경제학자 우석훈이 말하는 국가발 사기 프로젝트에 대해 과감없이 말하겠구나 싶었다.


나라의 위급한 상황이 오면 나라는 한 개인의 생명을 책임지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생명이 모여 나라를 위협하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마친다. 그러면서 나라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기 이전에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개인의 잔인한 선택을 종용했고, 우리는 의무감처럼 그것을 받아들였던 시대도 있었다. 위의 이야기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등장했던 한 장면의 대사였다. 그 장면의 대사를 몇 번이고 돌이켜 보면서도 그 말이 굉장히 서럽게 느껴진 동시에 잔인한 폭력처럼 느껴졌다. 시공간을 떠나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그려진다면 우리에게 그런 질문들을 하지 않고, 안전하게 나라에서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사기>는 경제와 정치, 문화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우리나라가 가고 있는 발걸음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책이다. 시대적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한발짝 나아가고 있지만 광고, 주식, 은행, 신용, 교육, 관트리피케이션, 기업, 공무원등 병폐로 자리잡고 있는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잘못된 관례로 흘러내리는 세금의 누수와 그것들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이야기까지 총 4장의 이야기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원전 마피아니, 자원외교, 4대강, 도시재생등 TV만 틀었다하면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이야기를 그의 책을 통해 읽고 있으니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리 잘못된 선택의 말로로 인해 좌표측이 저만치 떨어져 나가있는 것만 같다. 뉴스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거침없는 설명으로 지금껏 우리가 해 온 선택들이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견주어 나가기 보다는 자꾸만 뒤로 후진을 해서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얼마나 더 우리가 한 선택들, 나라가 한 틀어진 틀을 맞춰야 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과도한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 자본주의 시대에서 누구와 함께 마음의 점을 찍는 것이 하나의 행복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의 좌표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테두리라고 생각하는 나라의 본 모습을 생각하고, 사기 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 어렵지만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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