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마음>을 리뷰해주세요.
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파릇파릇한 나이였을 때는 느림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여러모로 급한 성격과 느긋한 성격이 반반 섞여 있지만 어릴때는 급한 성격과 '삐릿빠릿'한 성격이 더 생활에 이로움을 준다고 생각했었다. 빨리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빨리 잡는다는 옛 속담도 있듯이.느리다와 게으르다를 같은 뜻으로 생각하며 나쁜 의미로 받아들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느림보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나의 친구들은 성격이 나와 달리 '느릿한' 성격들이 많았다. 시간 관념도 그렇지만 책을 읽는 것도 달랐다. 그 친구가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 2000) 였다. 느리다는 것을 혐오할 정도는 아니지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역동성을 좋아했던 나는 책 제목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지만 지금은 느림의 의미가 게으름도 될 수 있지만 '여유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연륜이 붙어서 그런 마음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삶 속에서 속도 보다는 '정도'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맑은 가을 하늘 날, 아침에 등교길에 핀 보라색 나팔꽃이 활짝 핀 것처럼 맑은 선함이 있는 <느림보 마음>은 글 하나, 하나가 애정이고 사랑이다. 따뜻한 시선, 따뜻한 말 한마디, 따스한 몸짓.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애정이 이 책에 담겨져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릴 때는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면이 멋지게 보였다. 뾰족한 첨탑,  큰 빌딩, 큰 건축물등 사람의 손으로 만든 화려함이 눈에 가득 담겼다면 지금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좋다.

얼마전 외갓집을 다녀오는 길에 시원스럽게 뚫려진 고속도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년마다 한번씩 발걸음을 옮기지만 매 해마다 점점 더 길이 좋아진다. 시간이 점점 더 단축되어 목적지까지 가지만 그만큼 우리가 걸었던 산과 바다는 점점 그 비중이 작아진다. 몇 년전만 해도 길이 너무 멀어 언제 거기를 가지? 했던 고민은 이제 시원스런 고속도로가 말끔하게 해결을 해준다. 요즘들어 기다림의 미학이 점점 더 줄어들고, 점점 더 빨리라는 속도감만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러다보니 이제 나의 성격은 점점 더 느림보 마음을 갖게 된다. 디지탈 시대에 아날로그식 감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이 아닐까. 날카로운 송곳이 아닌 유하고 정이 듬뿍 담긴 이 책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이다. 각박한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나보다는 남을, 아니 가까운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이 책에서 닮고 싶을 정도로 느림보 마음을 가진 그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느리다는 것은 퇴보되는 것이 아닌 빠르게 지나쳐가는 창가의 풍경을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다. 삶의 가치를 어느 것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나는 마음속에 달팽이 하나를 넣어두고 천천히, 느릿느릿 여유롭게, 다정하게, 햇살의 포근함으로 세상을 포용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아카시아의 향긋한 꽃내음이 느껴지는 나무의 숲 처럼 편하고 그윽한 한 권의 책을 만난 것 같아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청량한 나무같은 풀내음이 느껴져 오래도록 마주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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