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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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26 한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노혜숙·유영일 옮김

양문

2018.10.30.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늘 앞길을 걱정했다. 스물다섯에 이미 마흔을 챙기려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날이 오면 다 이룰 듯한 생각에 버티기도 했다. 한 푼을 더 모아야 우리 아이 하나 더 가르친다는 생각뿐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가 이 돈을 아껴서 우리 아이 가르쳐야지 하고 마음을 돌렸다. 꽃꽂이를 하다가도 이 돈 아껴서 우리 아이들 한 달 학원을 보내야지 하면서 그만두었다. 흙을 빚다가도 우리 아이 예쁜 옷 사줄 수 있는데 하고 멈추었다. 나는 돈을 모으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그냥 써버린 듯하다. 늘 모레에 모레에 모레만 챙기려던 셈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하루에 몇 가지 삶으로 쪼개며 달린다. 일 초도 오 초도 무턱대고 기다리지 않고 이쪽저쪽 몇 사람 몫으로 일을 하면서 틈새를 아끼는 사람도 있다. 이 몇 초로 한삶을 더 누린다는 마음인지 모른다.


나도 대구에 와서 처음 세 해는 일이 바빴다. 아주 바빴다.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바쁘다기보다는 낯선 일을 맡느라 일이 서툴러서 몇 곱절이나 바빴던 나날을 건너왔다. 벗한테조차 전화할 틈이 없을 만큼 마음은 토막토막 쫓겼다. 하루를 즐겁게 일할 줄을 모르고 하루를 어떻게 하면 버틸지, 그저 버티고 견디기만 했다. 몸이 힘들 때마다 우리 밥줄을 밀어낸 사람을 탓했다. 탓한들 힘든 일이 안 힘들지도 않고, 마음만 스스로 다치게 하는 셈인데, 이 탓질을 오래도록 못 버렸다. 아직 다 버리지 못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통은 고통을 먹고 산다는 말을 조금 알아 간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두 해 앞서 장만했다. 진작 사놓고 이제서야 차분히 읽는데, 괴로움은 괴로움을 먹고산다는 말을 조금쯤 알겠더라. 백 벌쯤 읽으면 저절로 잇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지금’이나 ‘순간’이라는 말을 안 쓴다. ‘한때’ 나 ‘이제’라는 말로 바꾸어서 쓴다. 여태까지 내 마음은 늘 지나온 일과 앞으로 닥칠 일에만 빼앗겨 왔지만, 이제는 달라지자고 생각한다. 먼먼 앞날도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바로 오늘 하루부터 잘 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바꾸어 간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어떠한 일도 과거 속에서 일어날 수는 없고 과거 일도 지금 속에 일어난 것”이라고 들려준다. 곰곰이 돌아보자면, 내가 여태 품은 걱정이란, 오랜 ‘고름(질병)’인 셈이다. 다가올 날이 조마조마해서 못 견디고, 하루를 왕창 깨트리면서 더 다그치고 부리고 몰아세우느라 스스로 앓았다. 이 책을 읽으면, “시간은 귀중하지 않다”고도 들려준다. 나는 “시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지냈는데, 아 그렇구나 싶어 부끄럽더라. 달거리를 할 무렵이면 날카로워서 짜증을 부리던 일도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억누르며 살아온 굴레가 스스로 오히려 더 괴롭도록 부추긴 셈이다. 짜증을 부리던 굴레는 지나간 고름일 뿐이다. 고름은 ‘내’가 아니다. 


자잘한 말에도 얼굴을 붉혔다. 말은 건너가는 징검다리일 뿐인 줄 몰랐기에 으르렁거리며 살지 않았나 싶다. 가끔, 나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마음속에서 누가 말을 하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누가 나를 지켜보는구나 하고 느낀다. 누가 내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속에서 어떤 빛이 나를 지켜보면서 ‘속빛’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속빛’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면서 내 기운을 스스로 잊거나 잃지 않도록 다잡아 주는지 모른다.


사랑이라고 말을 하더라도, 서로 괴롭거나 지친다면, 참사랑이 아니다. 허울만 ‘사랑’이겠지. 다툼이 일어나면 ‘이 순간’이 아닌 어제 일을 끄집어내느라 모든 일이나 말썽이 눈덩이처럼 부푼다. 다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혼자 있고 싶고, 말도 하기 싫고, 고요히 있는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만나는 때이지 않을까.


사랑은 길이 아니리라. 사랑은 길을 거쳐 흐르리라. 사랑이 마음속에서 샘솟으면서 들어오는 길을 찾는 일은, 오직 이 한때에 마음을 모으며 나를 바라보려는 일인지 모른다. 해가 빛을 가리지 않고 고루 나누어 주듯, 해님 같은 사랑을 배우고 싶다. 숲에 깃든 풀꽃나무처럼 한때를 살아가면서 내 마음속부터 바꾸어 가는 길을 배우고 싶다.



2023.09.0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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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어린이와 생각하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숲노래 기획 / 철수와영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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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9 꽃처럼 피는 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23.9.5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2020년 12월 19일에 처음 읽었다. 벌써 여러 해 지났다. 그날은 큰딸한테 동생(나한테는 작은딸)이 언제부터 안경을 끼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기억할 일!”이란 대꾸를 듣고서 어쩐지 기운이 쭉 빠졌다. 엄마가 옛일이 가물가물해서 잊거나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엄마로서 여러 가지를 쉽게 잊어버렸다. 집안일이며 가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또 엄마가 집과 가게를 넘어 엄마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어쩐지 가볍게 지나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늘었다.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으레 집에서 가까운 멧골에 올라 숲빛을 느껴 보려 한다. 답답할 적에는 집에 그냥 있어도 답답하고, 가게일을 보아도 답답하지만, 좀 귀찮거나 춥거나 더운 날 억지로라도 숲에 깃들면, 조금 앞서까지 답답하던 숨통이 트인다. 아무래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말 한 마디를 숲에서 돌아보고 찾아보면서 스스로 숨통을 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외워서 쓸 말이 아닌, 스스로 숲인 줄 느끼면서 생각하는 말을 들려준다고 할까. “이 꽃은 이 이름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이 꽃은 어떤 이름일까요? 스스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 봐요!” 하고 속삭이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까,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책끝에 낱말모음하고 낱말풀이를 따로 붙이기는 하되, 이런 말이 예쁘거나 저런 말을 써 보자고 하는 줄거리는 없다. 이런 말은 나쁘니까 쓰지 말라고도 안 하고, 저런 말로 고치자는 줄거리도 아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숲으로 나들이를 가듯, 우리 마음을 가꾸는 생각을 이루는 말씨(말씨앗) 하나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품어 보자고 이끄는 듯하다.


이 책은 숲과 해와 흙과 물과 바람이 하는 말을 으뜸으로 삼아서 우리말을 풀어낸다고 본다. 햇볕을 먹고 비를 먹고 바람을 먹고 자라는 풀꽃나무라면, 우리가 풀이나 꽃을 나물로 삼을 적에, 또 나무열매를 즐길 적에, 저절로 햇볕과 비와 바람도 받아들이는 셈이겠지.


사람도 벌레도 짐승도 똑같이 햇볕과 비와 바람을 받아들이면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간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바다도 물도 한몸이고, 사람도 바다도 한몸이고, 사람도 하늘도 한몸인데, 사람도 숲도 한몸이구나 싶다.


우리가 누리는 이 뿌리를 꿈으로 그리고, 말밑 하나하고 삶을 차곡차곡 겹치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자라나고, 둘레를 맑게 보면서 보금자리도 스스로 싱그러이 가꾸는 슬기를 엿볼 수 있겠구나. 씨앗 하나가 천천히 자라 나무가 되듯, 땅에 안겨 잠자던 풀꽃 씨앗이 거듭나고 깨어나듯, 우리 말글도, 우리 마음도, 아이들하고 보내는 하루도, 곁님하고 이루는 살림도, 언제나 스스로 생각씨앗에 마음씨앗에 사랑씨앗으로 돌보면 스스로 피어나겠구나.


큰딸한테 다시 물어봐야겠다. “엄마가 툭하면 잊어버리네. 이 일을 우짤꼬? 우리 큰딸하고 작은딸 이야기를 글로 쓰다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너그 동생이 처음 안경 끼던 날 좀 얘기해 주라. 엄마 눈길이 아닌 네(큰딸) 눈길로 본 그날 하루를 들려주라. 응? 미안하고 고맙데이.”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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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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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25 귀청을 찢는 소리


《떨림과 울림》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2018.10.30.



지지난 십이월에 귀에 소리가 나서 애를 먹었다. 잠이 들려고 하면 귀에서 챙챙거리는 소리가 터지고 잠을 못 이루었다. 약을 먹고 좀 나아지는 듯하더니 요즘 들어 또 말썽이다. 귀에 바람이 꽉 차는 듯하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찌릿찌릿 흐르는 듯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귀가 터지려는 듯싶다. 하품을 하면 뭔가 확 뚫리고, 자면서 귓바퀴를 돌아가며 쭉쭉 잡아당기면 한결 낫다. 


바닥에 눕거나 자리에 누워 잠들려고 가만히 있으면 집이 흔들린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청이다가 제자리로 온 듯하다. 늦은밤에는 길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 집이 흔들린다. 어느 날은, 이렇게 흔들린다고 생각하면 집이 무너질까 걱정스러웠다. 짝한테 말을 하니 헛소리로 듣는다. 어떤 날은 글을 쓰는데 책상도 흔들린다. 아주 여리게 팔로 느낀다. 지하도 건너 기차가 달리거나 지하철이 세게 달려서 우리 집이 살짝 떨리는 줄 알았다. 


지난해 봄에 장만한 《떨림과 울림》을 다시 읽었다. 멈추었다고 여기지만, 알고 보면 다 떤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떨고, 집도 떨고, 사람도 떤다고 한다. 온누리가 떨림이고, 떨림은 소리이다. 빛도 떨림이고 우리가 말하는 동안 바람도 떨고 눈에 보이지 않는 떨림이 가득하다고 한다. 


보이는 빛이 있고, 보지 못하는 빛이 있겠지.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더라도 다가 아니듯, 아주 작게 떨기에 우리가 못 느낄 뿐이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작은 초음파가 있다. 이 떨림소리로 뱃속 아기가 콩콩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그야말로 모든 것은 떨림이라 여길 만하다. 떨림을 받아들이면 문득 크게 나아가면서 함께 울린다. 라디오 주파수도, 수신기도, 여러 채널도, 함께 울리는 셈이라고 하더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귀로 듣는 떨림이나 울림은 라디오 주파수 같다. 여러 갈래 소리가 차츰 세게 퍼지는가 싶으면, 찌릿찌릿 머리끝으로 파지직 일으켜 손끝으로 반짝이는 결이 빠져나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고요하다가 갑자기 소리가 세게 터져서 귀가 찢어질 듯하기도 하고, 귀청을 콕콕 찌르듯 아프기도 하다.


짜증스러운 일이 있으면 바로 드러난다. 병원에 가 보니, 귀도 머리도 마음도 잘못된 곳이 없다지만, 바람이 차는 느낌은 그대로이다. 바람이 밖에서 안으로 좁혀들듯, 막다른 자리에서 펑 터지는 듯하기도 하기에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누가 귀에 입을 대고 아주 크게 소리칠 때처럼 귀청이 아파서 몸을 움찔하기도 한다.


요즘은 밤에 잔잔한 노래를 틀어 놓고서 잔다. 하늘과 땅에 흐르는 온갖 소리가 밤마다 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여기면서, 귓가로 스미는 떨림하고 울림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겠지만, 어쩌면 저 먼 곳에 있는 다른 별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수 있을 텐데, 그저 받아들여 본다.


그나저나 《떨림과 울림》은 어렵다. 너무 어렵다. 책을 다 읽고도 떨림과 울림이 무엇인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영 안 들어와서 강의를 따로 듣기도 했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강의를 들으니, 좀 알아듣기 쉽더라. 잘 모르겠지만, 글쓴이도 아직 떨림과 울림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책을 너무 어렵게 쓰지 않았을까? 글쓴이가 나처럼 언제나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나 떨림이나 울림을 느껴 보는 삶이 아니라서, 너무 어렵게 책을 쓰지는 않았을까?


‘파동’이나 ‘진동’이나 ‘입자’나 ‘원자’ 같은 말을 쓰고서, 이 말을 다시 우리말로 풀어내는 듯하다. 과학책을 보면 다 그렇다. 처음부터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말을 안 쓴다. ‘양자물리학’이란 이름에서 ‘양자’는 뭘까? 왜 우리말로는 이름을 안 붙일까? 과학자들이 아직 떨림이나 울림을 귀나 머리나 마음으로 안 느꼈기에, 굳이 우리말로 이름을 붙일 까닭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


내 삶을 쪼개고 쪼개서 더 작게 작은 삶으로 작은 소리를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귀에 들어오는 소리와 떨림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그때에는 종소리처럼 멀리 맑게 울려퍼질까?


2023.09.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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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신장판 1~10 박스세트 - 전10권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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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24 이 나이에 만화를


《붓다 1》

테즈카 오사무 지음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1.4.25.



만화책 《붓다 1》를 읽는다. ‘붓다’라는 이름을 붙인 비슷한 책이 많지만, 이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나란하다. 어찌 보면, 그림이 덤으로 있으니 글에 나오는 ‘붓다’ 삶을 헤아리는 길을 살며서 돕는 듯하다.


《붓다 1》는 싯다르타 또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왕자를 다룬다. 히말리야산맥 기슭 인더스강 둘레에서 가뭄과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하루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브라만이 온나라를 다스린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겉치레로 헤프다고 한다.


신분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학벌로 나누고 직업으로 나눈다. 벌이도 틈이 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창작반을 나왔는지 따지고, 이름있는 잡지에 글을 실었는지 묻는다. 이름을 드날린 사람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문조차 좁다. 언론에서 책이나 글을 소개해 주어 힘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여러모로 인맥에 학맥에 여러 줄을 대더라. 다들 우루루 줄서기를 한다. 줄을 잘 서야 빨리 이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줄에 닿고 싶었고, 그런 모임에 이름을 끼워 보고 싶었다. 그런 줄에 닿는 사람들이 시키는 글을 쓰기도 했고, 그런 모임에서 내는 잡지에 글을 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참 힘들더라. 돈도 들고, 무엇보다 내 삶이 사라지더라. 글을 써 보고 싶은데, 내 삶을 내가 글로 써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데, 이래저래 헤매다가 ‘줄타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을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그곳에 기웃거리고 싶기도 했고, ‘저기에 그냥 얌전히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올려세우는 판인 줄 뻔히 아는데, 나만 다른 길을 가지 싶어 외롭다고 느꼈다. 이름을 얻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데, 돈으로 얻은 이름으로 쓰는 글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없겠다고 느꼈다.


《붓다 1》를 보면, 아시타 스승 이야기가 나온다. 모닥불에 제 몸을 던진 토끼가 아시타 스승을 살린 이야기인데, 사람이라는 몸이 더 뛰어나거나 빼어나지 않다고, 모든 목숨은 그대로 하느님(신)이라고 느낀 이야기이다. 사람도 짐승도 뱀도 서로 동무이고, 동무이자 이웃은 서로 도울 줄 알고 돌아볼 줄 알기에 빛난다고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노예 아들인 차프란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떠돌이 타타 이야기도 놀랍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사람만 신분차별을 하지 않더라. 돈과 이름과 힘이 없는 사람도 서로 신분차별을 한다. 나란히 가난한데, 나보다 더 가난하거나 못사는 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글판, 이른바 문단에서는 힘이 없거나 아는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지 않으면 크지를 못 한다고 여긴다. 나 같은 아줌마는 힘이 처음부터 없고, 돈도 그다지 없고, 나를 강사로 써 줄 대학교도 없을 테니, 아무래도 ‘문단 줄세우기’에 기웃거릴 수밖에 없겠다고 여겨 몇 해 동안 어슬렁어슬렁했다.


그렇지만, 글판에서 시큰둥하게 여기는 글을 천천히 하나씩 써 보는 동안, 오히려 한 발짝씩 나아가더라. 한 해를 걷고, 두 해를 걷고 보니, 내가 쓴 내 이야기로 책을 묶을 수 있겠더라. ‘아! 이게 스스로 걷는 길인가?’ 하고 보람을 느꼈다.


온누리에서 신분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신분을 노리지 않으면 되겠더라. 뛰어난 글을 남기려 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글을 천천히 쓰면 되겠더라. ‘신분차별이 판치는 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똑같이 울타리 안쪽에 남기’를 한다면, 나도 똑같이 동무와 이웃을 따돌리는 사람이 되겠지만, ‘내가 나로 서는 곳에 있기’를 한다면, 걸음걸이가 더디어도 하루하루 새길을 가겠지.


불행을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자고, 고통을 싫어하지 말자고, 운명은 따로 없다고, 고요히 나를 바라볼 때에 깨닫는다고, 이런 줄거리를 《붓다 1》를 읽으면서 배운다. 《붓다 2》은 또 어떤 줄거리일까? 쉰 살을 훌쩍 넘기고서 만화책을 볼 줄이야. 어쩌면 나는 만화를 얕보았다. 아니, 참으로 나는 만화를 깔보며 살았다. ‘문단’이라는 허울에 갇히려던 눈이었기에 만화를 만화로 바라보려는 마음이 없었다.



2023.09.0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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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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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못하면, 흙은 자꾸 벗겨지고 시들어가리라. 흙이 살고 벌레랑 지렁이랑 온갖 작은 숨결이 함께 어울려야, 흙도 사람도 모두 즐겁게 살아가리라.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은 2010년에 나온 책이다. 글쓴이는 이 푸른별을 덮은 흙이라는 곳(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은 으레 흙이 죽었고,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언제나 흙이 싱그럽다고 한다.


2021년 어느 여름날, 지렁이떼를 보았다. 불볕인 한낮 비렁길에 이리저리 뒤엉킨 채 말라죽은 지렁이가 떼로 있었다. 날씨가 뒤틀려서 괴로운 나머지 죽었는지, 땅속에서 살 수 없어서 죽었는지, 어디로 옮겨가다가 죽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지렁이가 떼로 죽는다면, 우리 삶도 멀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랑잎을 갉고 돌을 잘게 부수어 흙으로 바꾸는 지렁이인걸. 지렁이는 사람들처럼 자동차를 몰지도 않고, 아파트를 세우지도 않고,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지만, 오래오래 이 별을 가꾸어 왔는걸.


곰곰이 보면, 언제나 작은 것(숨결·생명)이 큰일을 하더라. 흙을 찾기 어려운 도시이고, 도시에서는 흙이 곁에 없어도 걱정(불편)이 없는 듯싶지만, 우리가 도시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흙이 없으면 논도 밭도 없는 셈 아닌가. 논밭이 없으면 밥이 없고, 논밭이 없으면 푸른바람도 없을 텐데.


자동차로 아스팔트를 달리면 빠르다. 바쁘니까 자동차로 빨리 달린다. 우리는 흙을 보거나 만지거나 디딜 일이 없다시피 하다. 나무는 겨우 흙에 뿌리를 뻗지만, 아주 조그마한 구멍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꼴이다. 지렁이뿐 아니라 나무도 숨을 쉬기 어렵다. 답답하겠지.


사람도 살갗에 햇볕을 넉넉히 쬐어 주어야 튼튼할 수 있다지만, 햇볕을 느긋이 쬐려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햇볕을 안 쬐더라도 자라는 토마토에 딸기에 수박에 참외가 쏟아진다. 머잖아 햇볕을 안 쬐고 자라는 나락이 나올는지 모른다.


한 줌 흙덩이를 알 수 있다면, 흙으로 빚은 모두를 알 수 있겠지. 흙에서 자란 밥을 먹으니, 흙을 알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먹는 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먹는 밥이 흙에서 온 줄 안다면, 우리 몸도 흙에서 돌고도는 줄 알 수 있겠지. 우리 몸이 흙에서 오는 줄 안다면, 마을도 나라도 흙이 고르게 덮고 풀꽃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푸르게 펼 수 있겠지. 누구나 스스로 살리는 바탕인 흙을 다시 바라본다.  




2023.08.3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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