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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신장판 1~10 박스세트 - 전10권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7월
평점 :
작게 삶으로 024 이 나이에 만화를
《붓다 1》
테즈카 오사무 지음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1.4.25.
만화책 《붓다 1》를 읽는다. ‘붓다’라는 이름을 붙인 비슷한 책이 많지만, 이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나란하다. 어찌 보면, 그림이 덤으로 있으니 글에 나오는 ‘붓다’ 삶을 헤아리는 길을 살며서 돕는 듯하다.
《붓다 1》는 싯다르타 또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왕자를 다룬다. 히말리야산맥 기슭 인더스강 둘레에서 가뭄과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하루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브라만이 온나라를 다스린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겉치레로 헤프다고 한다.
신분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학벌로 나누고 직업으로 나눈다. 벌이도 틈이 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창작반을 나왔는지 따지고, 이름있는 잡지에 글을 실었는지 묻는다. 이름을 드날린 사람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문조차 좁다. 언론에서 책이나 글을 소개해 주어 힘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여러모로 인맥에 학맥에 여러 줄을 대더라. 다들 우루루 줄서기를 한다. 줄을 잘 서야 빨리 이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줄에 닿고 싶었고, 그런 모임에 이름을 끼워 보고 싶었다. 그런 줄에 닿는 사람들이 시키는 글을 쓰기도 했고, 그런 모임에서 내는 잡지에 글을 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참 힘들더라. 돈도 들고, 무엇보다 내 삶이 사라지더라. 글을 써 보고 싶은데, 내 삶을 내가 글로 써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데, 이래저래 헤매다가 ‘줄타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을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그곳에 기웃거리고 싶기도 했고, ‘저기에 그냥 얌전히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올려세우는 판인 줄 뻔히 아는데, 나만 다른 길을 가지 싶어 외롭다고 느꼈다. 이름을 얻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데, 돈으로 얻은 이름으로 쓰는 글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없겠다고 느꼈다.
《붓다 1》를 보면, 아시타 스승 이야기가 나온다. 모닥불에 제 몸을 던진 토끼가 아시타 스승을 살린 이야기인데, 사람이라는 몸이 더 뛰어나거나 빼어나지 않다고, 모든 목숨은 그대로 하느님(신)이라고 느낀 이야기이다. 사람도 짐승도 뱀도 서로 동무이고, 동무이자 이웃은 서로 도울 줄 알고 돌아볼 줄 알기에 빛난다고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노예 아들인 차프란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떠돌이 타타 이야기도 놀랍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사람만 신분차별을 하지 않더라. 돈과 이름과 힘이 없는 사람도 서로 신분차별을 한다. 나란히 가난한데, 나보다 더 가난하거나 못사는 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글판, 이른바 문단에서는 힘이 없거나 아는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지 않으면 크지를 못 한다고 여긴다. 나 같은 아줌마는 힘이 처음부터 없고, 돈도 그다지 없고, 나를 강사로 써 줄 대학교도 없을 테니, 아무래도 ‘문단 줄세우기’에 기웃거릴 수밖에 없겠다고 여겨 몇 해 동안 어슬렁어슬렁했다.
그렇지만, 글판에서 시큰둥하게 여기는 글을 천천히 하나씩 써 보는 동안, 오히려 한 발짝씩 나아가더라. 한 해를 걷고, 두 해를 걷고 보니, 내가 쓴 내 이야기로 책을 묶을 수 있겠더라. ‘아! 이게 스스로 걷는 길인가?’ 하고 보람을 느꼈다.
온누리에서 신분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신분을 노리지 않으면 되겠더라. 뛰어난 글을 남기려 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글을 천천히 쓰면 되겠더라. ‘신분차별이 판치는 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똑같이 울타리 안쪽에 남기’를 한다면, 나도 똑같이 동무와 이웃을 따돌리는 사람이 되겠지만, ‘내가 나로 서는 곳에 있기’를 한다면, 걸음걸이가 더디어도 하루하루 새길을 가겠지.
불행을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자고, 고통을 싫어하지 말자고, 운명은 따로 없다고, 고요히 나를 바라볼 때에 깨닫는다고, 이런 줄거리를 《붓다 1》를 읽으면서 배운다. 《붓다 2》은 또 어떤 줄거리일까? 쉰 살을 훌쩍 넘기고서 만화책을 볼 줄이야. 어쩌면 나는 만화를 얕보았다. 아니, 참으로 나는 만화를 깔보며 살았다. ‘문단’이라는 허울에 갇히려던 눈이었기에 만화를 만화로 바라보려는 마음이 없었다.
2023.09.0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