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문명 - 한 지구 시민의 생태 평화 순례기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경옥 옮김 / 책세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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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게 삶으로 036 나무심기



《나비 문명》

마사키 다카시

김경옥 옮김

책세상

2010.10.12.



두 해 앞서 대구 ‘김광석거리’ 가까이에 있는 〈직립보행〉이라는 마을책집에 간 적이 있다. 그날 마침 아는 분하고 함께 갔다. 나랑 함께 책집에 들른 분은, 나를 보면서 내가 엉뚱한 책 앞에서 헤맨다고 얘기하면서 《나비 문명》이라는 책을 뽑아서 건네었다. 다른 엉뚱한 책은 안 봐도 좋으니 이 책부터 읽어 보라고 하더라.


두 해 앞서 장만한 《나비 문명》이지만, 두 해 동안 펼칠 겨를이 없었다. 집안일도 바빴고, 가게일도 바빴고, 이래저래 온통 바쁨투성이였다. 두 해 앞서 장만한 책이니까, 두 해 만에 읽는 셈이다. 어쩐지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늘에서야 읽어야 한 뜻도 있겠구나 싶다. 바쁠 적에는 아무리 아름답거나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라도 못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나비 문명》을 쓴 분은 일본사람이다. 이분은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임진강까지 걸었단다. 놀랍다.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사람이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듯 걷다니. 이분은 천천히 이 땅을 걸어다니면서, 일제강점기를 비롯해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징용으로 시달린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고개숙여 눈물로 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다치고 아픈 푸른별(지구)한테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그야말로 놀랐다. 이런 사람이 있었고, 이런 책이 있었구나.


글쓴이는 짝꿍이 몸을 크게 앓는 터라 나무를 심으면서 집안을 돌보려고 했단다. 짝꿍이 아플 적에는 벚나무가 “나도 병들었어요” 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단다. 크게 깨닫고 뉘우치면서 나무를 심고 돌보려 했단다. 애벌레가 나비로 거듭나기까지 잎을 갉는 길을 돌아보았단다. 나비로 깨어나는 길이란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단다.


“아이는 우리 앞길”이라는 말을 나라에서도 둘레에서도 흔히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아이도 우리 앞길, 나무도 우리 앞길”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나무를 심으면 어느새 자그맣게 숲을 이룬다. 나무 한 그루는 처음에 작지만, 어느새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잎을 낸다. 나무가 있기에 숲이고, 아이들이 있기에 나라도 마을도 집도 있다.


나는 여태까지 일본을 그다지 안 좋게 보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못난 일본 정치인도 많을 테지만, 이웃나라 사람들 아픔과 고름을 참으로 함께 아파하면서 품으려는 이웃나라 사람도 있다고 비로소 돌아본다. 이 책을 쓴 분은 정치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지만, 같은 일본사람으로서 일본이 무엇을 저질렀는지 돌아보면서, 푸른별이 함께 나아갈 길을 맑게 그리려고 한다고 느꼈다.


숲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 더는 숲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며, 숲과 우리 몸과 해와 별과 땅과 바람과 비가 늘 한몸인 줄 느끼고 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지난날 숱한 여러 나라가 저지른 허물을 벗으려는 몸짓을, 숲 곁에 서서 나비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를 심는 마음을 닮고 싶다. 어린 날 시골에서 먹은 싱그러운 숲빛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이룬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숲은 바로 우리 앞날 아이들을 이루는 빛이 되겠지.


오늘날에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도시 잿빛을 닮아간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잿빛처럼 닮아가고, 우리 마음도 잿빛처럼 바뀔지 모른다. 옛날처럼 마당이 있고 등성이에서 뛰어놀던 때가 그립다. 그러나 나도 어릴 적에는 몰랐다. 나이가 들어도 몰랐다. 요새 조금씩 알아가면서 뉘우치고 배운다. 어릴 적에는 풀꽃나무하고 숲이 우리 집을 가득가득 둘러쌌어도 이 멧골마을이 나한테 얼마나 빛나는 숨결인지 잘 몰랐다. 어쩌면 나도 애벌레처럼 고치를 틀면서 다시 나비로 거듭나려는 때인지 모르겠다.



2023.09.2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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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 아이들 이야기글 모음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9
이오덕 엮음 / 양철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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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5 우리도 크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양철북

2018.2.2.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읽었다. 이 책에는 내가 태어날 무렵에 삼학년에서 육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 나온다. 나보다 열 살 또는 열세 살 위인 어린이였던 셈인데, 이제는 예순을 지나 일흔을 넘어가는 사람들인 셈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분들이 남긴 글을 읽자니, 내가 어릴 때 한 일이 낱낱이 보인다. 이 책을 엮은 이오덕 님은 ‘훌륭한 글을 쓰는 공부에 참고 하라고 하고 훌륭한 글이란 정직하게 쓴 글, 사람답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한 것을 쓴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얘기보다 일하고 괴로워한 글이 재밌고 감동을 주게 된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온통 풀꽃나무와 새와 벌레와 물고기와 올챙이와 콩싹과 함께한다. 어버이와 놀러 간 일은 소풍 때 살짝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오고서 서른 해가 지난 즈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고, 이때만 해도 아이들은 숲에서 제법 멀었다. 어느새 책이 처음 나온 지 예순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인데, 그야말로 오늘날 아이들은 삶이 아닌 책으로만 풀꽃나무나 숲이나 벌레나 동물을 만나겠다고 느낀다. 


요새 어떤 어린이가 숲에서 혼자 놀거나 동무하고 놀까? 요새 어떤 어린이가 집과 학교 사이에 있는 높다란 멧길을 넘을까? 나만 해도 멧길을 넘으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요새는 학교버스도 있고, 자가용으로 태우는 어버이가 많다. 내가 어릴 적이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가 처음 나오던 때를 돌아보면, 예전에는 학교 가는 길이 참 멀었어도 다들 걸었다. 요새는 학교 가는 길이 멀지도 않을 텐데 다들 자동차나 버스를 탄다.


걸어다니면서 들을 보고 숲을 보고 멧골을 본 아이들은 들과 숲과 멧골에서 본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학교버스나 어버이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다니는 요새 아이들은 손전화로 게임을 할 뿐 아닐까? 요새 아이들더러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까? 어쩐지 무섭다.


우리 집 세 아이가 어릴 적에 쓴 일기장을 버리지 않고 아직도 건사한다. 오늘 문득 떠올라서 큰아이 일기장을 펼쳤다. 아홉 살 적에 쓴 글에 ‘이모집’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이모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태성아파트로 갔다. 이모집에는 손님이 있었다. 병권이 오빠야 친구도 와 있었다. 박문수 책을 읽다가 집으로 이모와 함께 왔다. 이모와 함께 집에 오니까 심심하지 않고 좋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이때 나는 일을 하느라 바빴다.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가 없었다면 일을 다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쓴 일기에도 들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벌레나 동물이나 풀꽃나무 이야기는 거의 없다. 어쩌면 아예 없다고 해도 좋으리라. 나는 나대로, 짝은 짝대로, 다들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느라 바빴고, 나나 짝은 시골에서 나고자랐어도 우리 아이들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 아이들도 시골이나 숲을 느끼면서 스스로 품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글로 남길 틈이 없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 글이 남은 멧골마을 아이들이 나고자란 곳하고 내가 태어나서 자란 경북 의성하고 가깝다. 나한테 언니나 오빠가 멧골과 학교 사이에서 겪고 보고 느낀 하루는 내가 어릴 적에 보고 듣고 겪고 느낀 하루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하나일 테지. 이 책에 글이 남은 예전 어린이는 이오덕 님 같은 길잡이가 있어서 어릴 적에도 시골살림과 숲살림을 고스란히 스스로 남길 수 있었다. 나한테는 이오덕 님 같은 길잡이가 없었다.


비록 어릴 적에는 경북 의성 멧골살림을 글로 남길 생각조차 못 했지만, 쉰 살을 넘어선 아줌마가 된 오늘, 나는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면서 멧골과 숲과 풀꽃나무와 벌레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본다. 까마득하게 먼 어린 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릴 적 일을 떠올리려고 하면 반짝반짝 떠오르더라. 그 어릴 적에 글로 남기지 못 했던 멧살림인데, 내 몸에는 고스란히 새겨졌나 보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하고 느껴서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오려 했을까? 나는 농부가 되기 싫어서 안동으로 대구로 나가서 집을 얻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을까?



2023.09.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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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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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4 빼앗지도 빼앗기지도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어니스트 톰슨 시튼

이한음 옮김

지호

2002.12.20.



오늘 헌밥솥을 버리려고 안고 가다가 오르막 징검돌에서 돌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손바닥이 붓고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손바닥뼈에 금이 가서 판을 대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천까지 친친 감았다.


살짝 딴청을 하다가 넘어지고 손까지 크게 다치자 할 일이 까마득하다. 다른 손은 금은 가지 않지만 아직 얼얼하다. 내가 하는 일은 손을 많이 쓴다. 일도 그렇고 글을 쓸 적에도 두 손으로 글판을 두드린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판을 제대로 칠 수 없어 아주 버겁다. 글은 그렇다치고, 한가위 대목 밑에 손길이 닿아야 할 일이 잔뜩이다. 우리 가게에서 다듬어서 싱싱하게 내놓아야하는 살림이 잔뜩 밀렸는데,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 손이 제대로 나으려면 얼마나 묶어 두어야 할지 모른다. 조금 금이 가도 이렇게 일이 꼬인다.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를 읽었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를 들려준다. 글쓴이가 보고 듣고 겪고 만난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뿔양  참새 곰 쇠오리 강아지 캥거루쥐 코요태가 나온다. 이 가운데 내가 본 짐승은 참새와 강아지를 겨우 꼽지만, 가까이에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들여다보지는 못 했구나 싶다. 이름은 알고 보기는 했어도 정작 삶을 볼 생각을 안 한 셈이다.


이 책에서 뿔양 이야기가 가장 먹먹하게 와닿았다.​ 뿔양으로서는 늘 싸움이 이어지는 삶 같다. 작은 발굽으로 바위를 움켜쥐고, 돌처럼 뻣뻣이 버티고, 힘센 짐승이 지나가길 기다리거나 이쪽저쪽으로 뛰거나 넘거나 웅크리거나 숨거나 멈춘다. 숨고 또 숨고 자꾸 숨는 길을 알아가야 한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은 여러 짐승이 겪는 일을 차근차근 들려준다. 그런데 그냥 쓸 수 없는 글이다. 온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기에 가만히 바라보고 살펴보고 지켜보았을 테고, 이 눈길이 글길로 사랑스레 피어난다.


그렇다고 이분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목소리를 안 높이고, 그저 숱한 숲짐승 삶과 살림과 하루를 들려줄 뿐이다. 이 짐승은 숲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저 짐승은 들에서 저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옮긴다. 아, 글이란 이렇게 쓰기에 빛날까?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은 이렇게 담아낼 적에 눈물겹도록 아름다운가?


무리를 지어서 살아가는 숲짐승은 거의 수컷 아닌 암컷이 이끈다고 한다. 어질고 슬기로운 길잡이는 으레 암컷이라고 한다. 암짐승은 새끼를 낳아 돌보기에 숲을 더 어질고 환하게 읽을는지 모른다. 갓 태어난 새끼를 오롯이 돌보고 키우자면, 숲살림을 꿰뚫어야 할 테고, 무엇을 먹고 안 먹어야 하는지를 어린 짐승한테 찬찬히 알려주어야겠지. 숫짐승도 새끼일 적에는 어미한테서 모든 숲살림을 배울 텐데, 새로 어미 자리에 설 적에는 암짐승이 무리를 이끈다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우리 사람은 어떤 삶과 살림일까?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와 할머니야말로 어질고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데, 막상 우리는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오래도록 맡아 온 어머니와 할머니를 낮보거나 얕보지는 않았을까?


뿔양한테서 뿔을 빼앗으려는 사냥꾼이 조금씩 다가와서 총을 쏘려고 한다. 사람은 뿔을 노린다. 뿔 때문에 뿔양은 목숨을 빼앗기고 뿔도 빼앗기고 삶도 빼앗긴다. 사람들은 왜 뿔양을 죽여서 뿔을 빼앗아야 할까?


그러고 보면, 오늘날에는 뿔양한테서 뿔을 사냥해서 빼앗지 않는다지만, 찻길을 내고 도시를 세우면서 모든 숲짐승이 살아갈 터전을 빼앗는다. 숲짐승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모습이 바뀌었을 뿐, 예나 이제나 비슷하다. 아니, 똑같겠지.


아픈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나는 왜 이 손바닥이 아프다고 들여다볼까? 손이 아프면 쉬면 될 텐데, 쉬기보다는 가게장사를 할 수 없어서 속이 쓰린 핑계를 찾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맞다. 나는 장사를 앞세웠고, 내 몸은 뒤세웠다.


눈을 읽고 비를 읽고, 숲과 들을 읽는 짐승처럼, 나도 하늘을 읽고 마음을 읽고, 또 글을 읽고 싶다. 하루를 살찌우는 마음으로 읽고 쓰고 싶다. 빼앗지도 빼앗기지도 않을 하루를 그리고 싶다.



2023.09.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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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 / 진명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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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박영봉 

진명출판사

2010.4.15.



밥하고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에서 살려낸 형용사를 다룬 책을 사서 읽어 보았지만 어쩐지 허술했다. 지난해 어느 글을 읽다가 궁금해서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산 적이 있다. 지난해에 읽을 적에는, 요리책처럼 그림이 있어 슬쩍슬쩍 지나갔다. 올해에는 좀 다르게 읽어 본다. 올해에는 그림은 건너뛰고 글만 곰곰이 새겨 본다.


어제는 짝꿍이 복숭아를 한 꾸러미 갖고 왔다. 겉은 말짱한데 깎으면 안이 검다. 가게에서 손님한테 팔 수는 없는 복숭아이다. 그렇지만, 먹어 보면 무르지 않고 복숭아맛이 부드럽고 달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이미 썩어가는 빛깔 같아 입맛이 달아났다. 그냥 버리기에 아깝다고 여겨서 먹었다. 이튿날 배앓이를 했다.


복숭아 탓일까? 아니다. 복숭아 탓이 아니라, 탱주만 한 대추를 먹은 탓이라고 느낀다. 대추도 가게에서 시렁에 놓고 팔 수 없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에는 벌레알이 서렸다. 이 대추를 꽤 먹었다. 그리고 묵은나물도 손질을 해서 먹었다. 나물도 가게에서 팔 수 없다고 느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과일도 대추도 묵은나물도 조금 시들거나 썩어가는데 “아까워! 아까워!” 하면서 먹었다. 아무래도 이 말과 마음 탓에 배앓이를 했다고 느낀다.


배를 살살 달래고서 며칠 지난 이레 앞서를 생각해 본다. 벗님이랑 낮밥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데, 벗님이 도시락을 꺼내더라. 뭘 꺼내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잿빛 보자기를 풀자 유리그릇이 나온다. 뚜껑을 열자 바알갛게 물든 감잎으로 덮었다. 뭘까? 감잎을 자리에 하나씩 놓고서 포도를 꺼내 얹는다.


보기에도 예쁜 감잎이 포도를 담는 그릇이 된 셈이다. 포도를 많이 먹지 않고 몇 알만 먹었는데 어찌나 배가 부르고 상큼하던지. 포도빛과 감잎깔이 눈을 거쳐 온몸으로 스민 듯했다.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돌아본다. 이 책에 나오는 로산진은 ‘그릇은 요리의 반쪽’ 이라고 말했단다. 무엇을 먹든 제 숨결을 살려야 한다고 했단다. 맛있게 차린 밥이 아니라, 무엇이든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했단다. 이러면서 다달이 어느 밥이 싱그러운지 밝힌다. 1월에는 새우와 석이버섯, 2월에는 우렁이, 3월에는 송어와 유채, 4월에는 대싹(죽순), 5월에는 잉어, 6월에는 은어와 돔, 7월에는 장어, 8월에는 소면과 가지와 강낭콩, 9월에는 무화과, 10월에는 고등어와 토란, 11월에는 버섯과 시금치와 돔, 12월에는 게와 새우 요리를 들려준다. 저마다 다르게 자라나고 살아가는 숨결이라고 한다. 바다와 숲과 들에 다 다르게 깃든 숨결을 기쁘게 누릴 적에 몸에 이바지한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가 궁금했다. 집밥(가정요리)에는 참다운 삶과 마음이 있다고 말했고, 밥차림에는 멋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로산진은 짝맺기(결혼)하고 헤어지기(이혼)를 다섯 판을 했단다. 느긋이 이어가는 보금자리가 아닌 나날이었다면, 이분한테 집밥이란 무엇이었을까?


가난해도 먹고, 가난하지 않아도 먹는다. 잔칫밥을 차려야 혀로 맛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혀와 입과 몸을 품고서 태어났다. 나는 여태까지 어떤 밥을 먹었을까? 나는 이제까지 어떤 밥을 차려서 짝꿍하고 아이들하고 누렸을까? 나는 오늘까지 어떤 글을 읽고 썼을까? 더 좋은 밥을 넘보는 마음처럼,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굴레를 쓰지는 않았을까? 버리기 아깝다고 여겨 억지로 먹다가 배앓이를 하듯, 보기좋게 꾸미려다가 허울만 가득한 글을 쓰지는 않았을까?


벗님은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자리에 감잎을 몇 깔았을 뿐이고, 포도알도 조금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감잎 포도알은 눈도 마음도 몸도 틔워 주었다. 내 글은 감잎과 포도알을 닮아 갈 수 있을까? 내 글은 억지로 입에 욱여넣다가 배앓이를 하는 과일을 닮지는 않았을까?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과일과 나물은 스스럼없이 흙으로 돌려보내자. 나는 내 밥을 차려서 즐겁게 먹자. 나는 내 글에 내 삶을 사랑으로 담아서 즐겁게 하루를 누리자.



2023.09.2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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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 자유와 공화
문창극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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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2 글길



《문창극 칼럼》

문창극 

을유문화사

2009.10.25.



사흘 앞서 《문창극 칼럼》을 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신문에 올린 글을 모았다. 열다섯 해가 지난 묵은 글일 텐데, 내가 쓰고 싶은 시나 글이 얼마나 깊거나 넓은지 잘 모르겠기에, 글길을 배우고 싶어서 샀다.


누구는 왜 이런 책을 사읽느냐고 할 수 있고, 누구는 이런 책을 사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싶고, 여러 가지를 두루 파는 가게를 꾸려가다 보니, 자꾸자꾸 둘레에서 하는 말에 휘둘리기도 하고, 이것이 좋다면 이쪽을 보고 저것이 좋다면 저쪽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신문에 실린 묵은 글을 오늘 되읽어 보면서 뭔가 배우자고 생각했다.


한참 《문창극 칼럼》을 읽다가 소금을 떠올렸다. 팔이나 다리에 긁히거나 다친 데에 소금이 닿으면 되게 쓰라리다. 그런데 이 소금으로 재워야 먹을거리가 오래간다. 소금이 없으면 절임을 못 한다. 바닷물이 품은 소금처럼, 글도 소금을 품을 노릇일까?


그렇지만 소금은 아무 데나 쓸 수 없다.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비가 되어 뿌리는데, 빗물에는 소금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바다 같은 글이 쓰일 데가 있고, 빗물 같은 글이 쓰일 데가 있겠지.


거의 스무 해쯤 지난 2000년 무렵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본다. 그즈음 나는 셋째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 열 몇 해를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었다. 이윽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뒤늦게 배움터를 다녔다. 일터를 그만두면 가장 하고 싶던 일은 ‘그날그날 나오는 신문을 몽땅 읽기’였다. 어쩐지 날마다 신문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신문글 가운데 ‘칼럼’을 꼭 읽고 싶었다.


우리 짝이 집에 신문을 들고 오면, 칼럼이란 이름이 붙은 글은 두고두고 또 보려고 오려서 모았다. 그렇지만 스무 해쯤 앞선 2003년 무렵에는 막상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집에 있으면 짬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이가 셋이라서 집안일에 살림살이에, 또 아이들 먹이려고 빵을 굽거나 김밥을 싸주고 데리러 다니면 너무 바빴다. 하루가 아주 빨리 지나갔다.


곰곰이 보면, 지난 2003년부터 여러 해는, 내 삶에서 아이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 빛날(황금기)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2023년 오늘 돌아보니, 그때가 빛나는 날이었다. 엄마로서 힘이 있던 때이다. 집안도 이끌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뭔가 하나하나 새롭게 이루던 때이다. 좀 부끄럽기도 한데, 그즈음에 아이들한테 큰소리로 꾸중하면, 아이들은 얌전하게 말을 잘 들었다. 그때에는 이따금 매를 들기도 했고, 아이들이 무슨 말썽을 저지르면 팔을 들라고 시키기도 했다. 참 고약한 엄마로 바뀌던 때이기도 하다. 아이 셋을 다스리기도 벅찼다는 핑계인데, 다시 생각해 보자니 그저 창피하다.


나는 세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싶었지만, 자꾸 매를 들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러면, 나라를 돌본다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대통령이란 자리에서 바라보는 나라살림은 어떠할까.


《문창극 칼럼》에 나오는 줄거리를 되새기자니, 이명박에 노무현 같은 이름이 나온다. 그때 우리 집 살림살이를 돌아보자면, 월급이 적었지만 오히려 요즘보다 다들 살 만했다고 여겼고, 거리도 북적거렸지 싶다. IMF를 겪으면서 사라진 일터가 많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았고, 뒤앓이를 얼추 열 해 남짓 했다고 느낀다. 좀 나아질 줄 알았지만, 열 해가 지나고 열다섯 해를 지나는 동안 물건값은 그저 오르기만 했다. 뭔가 번듯번듯 높은 건물은 많이 오르는 듯싶지만, 어쩐지 팍팍하고 속으로 곪거나 뒤틀리는 일도 많았다고 느낀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는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아프간 인질 사태가 있었다. KAL기 폭파사건도 떠오른다. 황우석 줄기세포 인간배아를 놓고서 참이냐 거짓이냐 시끄러웠다. IMF 뒤끝으로 가시밭길이 꼬리를 물었다. 눈앞에는 밥줄 걱정이 잔뜩인데, 누가 나라를 걱정하는지 몰랐다. 이런 때에 누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문창극이라는 분은 그무렵 신문에 싣는 글로, 노무현 정권이 왜 터무니없는 길을 갔는지 따지려고 한다. 어디서 실랑이가 비롯했는지 따진다. 무엇을 고치기를 바라는지 따진다. 보수라는 이름이든 진보라는 이름이든 허울을 씌우지 말아야 한다고 따진다. 두 쪽 가운데 어느 길을 고르기보다는, 나라를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우리 집 세 아이는 벌써 다 커서 따로따로 산다. 둘째 딸은 짝을 만나서 엄마아빠랑 멀리 떨어져서 살아간다. 세 아이는 어릴 적에 엄마한테서 으레 꾸중을 들었지만,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살림을 잘 지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살림이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일까? 앞에서 이끄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고, 바른길이란 무엇일까?


정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이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대구에서 조그맣게 글을 쓰는 아주머니로 살면서도 문단(문학단체) 실랑이를 으레 지켜보지만, 글길을 참하게 다스리고 싶다. 글이 가는 길을 착하게 지어 보고 싶다.




2023.09.2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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