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는] 


이렇게 살아가는1 2026.08.03.


1. 놀린다고 하더라도


미루나무 사라지고 너른길 사그라들고 너는 사라지지 않고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두 고개 넘어오는데 한 손에 든 낱말책 자전거를 쭉쭉 굴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달아오르던. 스물다섯 해 만에 처음 만나 넌지시 털어놓는 말에 큰눈에 내 마음을 들인다. 혼자만 간직한 마음 어디서 무엇을 보면 아득하던 너른길이 보여 가슴 가득 벅차게 속에 둔. 하루쯤 만나주지 그랬어 이 마음을 알리던 분이가 너를 가로챌 줄이야.


2 콧구멍 


그곳에서만큼은 깃털처럼 가볍다. 잘 뛰지 못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팔로 헤엄쳐서 갈 수 있다. 바닥에 살짝 가라앉는다. 숨을 참다가 떠오른다. 물방울이 콧구멍으로 다 빠져나올 때쯤이면 가슴을 찢던 일도 잊을 수 있을까. 그곳은 걷지 않아도 나아가는 곳이다. 바람이 콧구멍으로 살갗으로 살랑인다. 그곳에 없는 바람은 뭘까. 여태껏 가장 쉬웠지만 힘들던 일. 파란하늘을 눈으로 마셨거나 물에 뜬 별을 따거나. 아니면 난 처음부터 날개를 폈는지도.


3 안는 품도 모르고


끌어당겨야 안길 때가 있다. 너는 물소리보다 먼저 뛰어든다. 너를 숨죽이며 지켜보다가는 안지 못 한다. 바위에 앉아 가슴을 졸이며 물속으로 뛰어들 때에는 머리카락만 물낯에 말풀처럼 퍼진다. 얼마나 길고 숨막히게 안았나. 이대로 가라앉으면 죽음 문턱이다. 물거품을 천천히 다 뱉고 가라앉는다. 오빠는 팔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당기고 물낯으로 안고 오며 살려주고도 좋은말을 듣지 못 했다. 열다섯 오빠는 그냥 끌어안았는데.


4 아기칸 공책을 읽고


아기칸 공책을 읽는다. 내 몸을 빌리지 못 한 채 떠나버린 어린 목숨이 떠오른다. 버림받은 첫날도 아니고 질경이도 아닌데 나는 두 목숨을 뭉갰다. 몸을 판 적이 없는데, 9주가 된 어린 목숨을 떼어냈고, 태어난 모습을 본 적 없는 어린 목숨이 서른 해 지나서 꿈에 나왔다. 눈빛이 으스스했다. 꿈에서 두 어린 목숨을 아기칸 한켠에서 처음 만나서 처음 보는 얼굴로 토닥토닥한다. 어느새 눈빛이 돌아온다. 처음은 벌어야 해서 지웠다. 다음은 아들이 아니라서 지웠다. 한집안을 이어주어야 한다는는 짐이 무거워서 너희를 보내고 말았다. 서른 해 넘게 내 곁에서 그림자로 살다가 간 너희인데, 꿈에서 보며 반가웠다. 다음 삶에서는 꼭 내 몸을 받아서 천천히 이곳으로 오라고 속삭인다.


20260803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작은삶 데리고 범어 뒷산에 갔다.

은행잎하고 풀빛하고 넘 넘 잘 어울린다.

이쁘게 태어나서 고마워



2025.11.25.






총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총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 [작은삶 - 표4 추천글]

  •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에 말이고 마음입니다. 나를 꾸미거나 감추면 허울이고 겉치레입니다. 누구나 ‘나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짓는 삶이니, 언제나 바로 내가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말씨가 태어나고, 이 말씨를 고스란히 그려서 글씨라고 느낍니다. ‘작은삶’을 짓는 글씨는 곧 작은숲을 이루는 푸른씨가 될 테지요. 






총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읽고 쓰고 가꾸고- 책으로 배운 하루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6년 7월
17,800원 → 16,020원(10%할인) / 마일리지 8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6년 08월 03일에 저장

작은삶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5년 11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5년 11월 23일에 저장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5년 11월 23일에 저장



총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표4 추천글]

  • 숲하루 님이 그동안에 누리그물 새뜸인 〈배달겨레소리〉에 올린 글을 모아 책을 펴낸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습니다. 메와 들에 절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따뜻한 눈길로 보고 쓴 글이에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누리러 온다고 생각하여 우리 한아비들은 삶터를 ‘누리’라고 지었지요. 이 누리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짐승, 온갖 벌레, 푸짐한 푸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한껏 목숨을 누립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도 따뜻한 눈길로 보고 쓴 글은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총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5년 11월 23일에 저장



총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형 이야기 ㅣ 비룡소 클래식 58
루머 고든 지음, 폴린 베인스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92 바라는 대로



《인형 이야기》

루머 고든

햇살과 나무꾼 옮김

비룡소

2023.9.28.



인형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지만, 인형은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 전에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아니랍니다. (65쪽)


여름에 《인형 이야기》를 장만하고서, 대구에서 시골로 오갈 적마다 꾸러미에 담고 다녔다. 으레 책상 한쪽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은 느낌을 글로 적어 보는데, 깜빡 잊고 갈무리를 안 한 탓에 그만 글이 날아갔다. 어째 글도 갈무리를 안 해 놓고서 날린담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마 처음부터 새로 쓰라는 뜻이지 않을까.


《인형 이야기》는 여러 ‘인형’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형끼리 주고받는 마음을 마치 누가 옆에서 귀담아들은 듯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바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가슴에 폭 안고서 스스로 바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이곤 한다. 아이들한테 ‘인형’이란 꿈을 비는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는 알뜰한 동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앞둔다. 여섯 달 동안 《인형 이야기》를 책상맡에 놓고서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도 우리 집 세 아이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 집 막내도 머잖아 서른 살로 다가가는 나이에 이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인형을 아이들한테 베풀었는지 돌아본다. 우리 아이들은 인형을 품을 적에 무슨 속마음을 빌었을까? 나는 의성 멧골마을에서 어린 나날을 보낼 적에 인형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인형을 품어 볼 수 있었다면 어떤 속마음을 빌었을까?


고등학교 다닐 적에 뒤에 앉은 아이가 보육원에서 다녔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하고 어울리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도 보육원 애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보육원에서 오던 두 아이는 늘 같이 다녔는데 한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났다. 못생기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 같기도 한 겉모습이기도 하지만 늘 풀이 죽었다. 말도 적고 눈치를 살핀다. 보육원 얘기는 밖에서 못하게 하는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남한테 기대지 않으려는 마음이 셌다. 도움받는데 익숙한 얘들과 달리, 안 받고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이 아이하고 가끔 글월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로 끊겼다. 이제 이 아이는 어떤 얼굴일까. 어디에서 잘 살까. 집은 어디일까. 짝은 맺었을까. 아이가 있다면 밝게 키웠겠지. 


아이들이 있어 인형이 살아간다. 바람은 씨앗 같아서, 바람으로 훅 날려 주는 말씨도 마음씨도 함부로 뿌리지는 안 되겠지.


크리스마스에 인형을 받는 오늘날 여러 아이들은 어떻게 마주할까? 인형한테도 마음이 있는 줄을, 인형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줄을, 인형이 우리 꿈을 가만히 귀담아듣고서 살며시 빛을 뿌려서 잘 이룰 수 있도록 이어 주는 줄을,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2024.12.25.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