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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이야기 ㅣ 비룡소 클래식 58
루머 고든 지음, 폴린 베인스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23년 9월
평점 :
작게 삶으로 92 바라는 대로
《인형 이야기》
루머 고든
햇살과 나무꾼 옮김
비룡소
2023.9.28.
인형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지만, 인형은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 전에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아니랍니다. (65쪽)
여름에 《인형 이야기》를 장만하고서, 대구에서 시골로 오갈 적마다 꾸러미에 담고 다녔다. 으레 책상 한쪽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은 느낌을 글로 적어 보는데, 깜빡 잊고 갈무리를 안 한 탓에 그만 글이 날아갔다. 어째 글도 갈무리를 안 해 놓고서 날린담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마 처음부터 새로 쓰라는 뜻이지 않을까.
《인형 이야기》는 여러 ‘인형’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형끼리 주고받는 마음을 마치 누가 옆에서 귀담아들은 듯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바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가슴에 폭 안고서 스스로 바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이곤 한다. 아이들한테 ‘인형’이란 꿈을 비는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는 알뜰한 동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앞둔다. 여섯 달 동안 《인형 이야기》를 책상맡에 놓고서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도 우리 집 세 아이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 집 막내도 머잖아 서른 살로 다가가는 나이에 이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인형을 아이들한테 베풀었는지 돌아본다. 우리 아이들은 인형을 품을 적에 무슨 속마음을 빌었을까? 나는 의성 멧골마을에서 어린 나날을 보낼 적에 인형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인형을 품어 볼 수 있었다면 어떤 속마음을 빌었을까?
고등학교 다닐 적에 뒤에 앉은 아이가 보육원에서 다녔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하고 어울리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도 보육원 애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보육원에서 오던 두 아이는 늘 같이 다녔는데 한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났다. 못생기기도 하고 다른 나라 사람 같기도 한 겉모습이기도 하지만 늘 풀이 죽었다. 말도 적고 눈치를 살핀다. 보육원 얘기는 밖에서 못하게 하는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남한테 기대지 않으려는 마음이 셌다. 도움받는데 익숙한 얘들과 달리, 안 받고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이 아이하고 가끔 글월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로 끊겼다. 이제 이 아이는 어떤 얼굴일까. 어디에서 잘 살까. 집은 어디일까. 짝은 맺었을까. 아이가 있다면 밝게 키웠겠지.
아이들이 있어 인형이 살아간다. 바람은 씨앗 같아서, 바람으로 훅 날려 주는 말씨도 마음씨도 함부로 뿌리지는 안 되겠지.
크리스마스에 인형을 받는 오늘날 여러 아이들은 어떻게 마주할까? 인형한테도 마음이 있는 줄을, 인형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줄을, 인형이 우리 꿈을 가만히 귀담아듣고서 살며시 빛을 뿌려서 잘 이룰 수 있도록 이어 주는 줄을,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2024.12.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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