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곰 왑의 삶 -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72 숲사랑으로


《회색곰 왑의 삶》

어니스트 톰슨 시튼

장석봉 옮김

지호

2002.12.27.



《회색곰 왑의 삶》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흐르면서 맞물리는데 무엇보다도 왑이라는 이름인 곰 이야기가 도드라진다. 잿빛곰인 왑은 처음에는 어미 품에서 자란다. 개미와 땅벌레를 핥아먹고, 물고기를 잡고, 딸기를 훑으면서, 또래와 장난을 치며 잘 지낸다. 이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키우는 소가 새끼 곰을 괴롭히려 한다. 어미 곰은 얼른 새끼 곰을 지키려고 소한테 덤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따지거나 살피지 않는다. 무턱대고 커다란 곰부터 쏘아죽이려 한다.


새끼 곰이던 왑은 하루아침에 어미를 잃는다. 그만 외톨이까지 된다.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때에 사랑은커녕 끔찍한 죽음만 보고 만 나머지, 그만 이때부터 모두 미워한다. 숲짐승도 사람도 다 밉다. 더구나 왑은 어느 날 덫에 걸려 발가락까지 잃는다. 왑은 더욱 미움이 자라고, 쇠붙이 냄새만 나도 으르렁거린다.


왑은 살아간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봄에는 겨우내 얼어 죽은 짐승을 먹는다. 여름에는 나리와 튤립과 산딸기를 멧기슭에서 먹는다. 가을에는 소나무숲에서 나는 열매를 먹는다. 겨울을 날 만큼 살을 찌우면 비로소 겨울잠에 든다.


왑은 늘 쫓긴다. 혼자 허둥지둥 다치고 달아나는 나날이다. 숲에서 마주치는 다른 짐승을 멀리하고, 누구보다도 사람을 멀리한다.


어느새 어른으로 자란 곰한테는 어떤 마음이 흐를까 하고 돌아본다. 제대로 사랑받는 길을 놓친 채 혼자 살아남는 하루를 보낸 곰은 어떤 마음을 키웠나 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곰이 살 만한 숲이 드물거나 없다. 곰 이야기는 이렇게 책으로 만난다.


사람만 가득한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하루인지 되새긴다. 도시라는 곳은 오로지 사람만 북적이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도 사랑을 못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사랑이 없이 자라서 나이만 먹는다면, 그만 왑처럼 미움으로 둘레를 바라볼는지 모른다. 혼자 살아남느라 바쁘고 힘겨워, 그만 둘레를 바라볼 틈조차 없을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오늘 어떤 하루일까? 내가 어릴 적부터 받아온 사랑을 떠올리고, 내가 낳은 세 아이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해 본다.


 숲이 있어 숲내음을 맡고 숲바람을 마시던 무렵에는 모두 이웃이었겠지. 맑게 흐르는 바람으로 어우러지던 무렵에는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살았겠지. 숲이 베푸는 숨결을 잊기에 미움이 싹트는지 모른다. 푸르게 또 푸르게 또 푸르게, 이 마음을 돌보아야겠다.



2024.01.11.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새가 좋아요 크레용 그림책 36
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71 새소리 붕붕소리


《작은 새가 좋아요》

나카가와 치히로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2002.8.1.



《작은 새가 좋아요》를 읽었다. 우리 발은 땅을 밟고 있어도 몸은 하늘에 있는 셈이다. 바닥을 버티는 발이 우리가 폴짝 뛸 때처럼 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발을 잡아당기는 힘을 이기고 땅을 벗어나는 새처럼 날까.


새는 가벼운 몸에 마음은 얼마나 가벼워서 날까. 마음이 무거울 때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날고 싶은 생각을 으레 꿈꾸었다.


그림책 《작은 새가 좋아요》를 돌아본다. 작은 아이는 작은 새처럼, 스스로 새가 되어 노래하는 꿈을 그린다. 그리고 작은 아이 곁을 온통 새밭으로 바꾸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우리 집 창가에 물을 떠놓고 모이도 놓는다. 이 그림책을 알기 앞서부터 새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지낸다. 어느 날은 까치가 짝을 지어 오고, 어느 날은 어린 까치가 오고, 어느 날은 까마귀가 오고, 어느 날은 비둘기가 온다. 요즘은 직박구리가 자주 찾아온다. 직박구리는 곁에 비둘기가 내려앉아서 물을 먹어도 꼭 노래를 부르더라. 직박구리는 한참 앉아서 두리번두리번한다. 물 한 모금 먹고서 또 둘러본다. 모이를 찍고서 또 갸웃거린다.


지난여름에 박곡마을로 매실을 따러 간 적이 있다. 잔디가 있는 시골집에 영국사람이 살더라. 이분은 바깥마루에 놓은 걸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낮밥을 먹으며, 볕이 들어도 나와서 앉고, 비가 와도 우산을 펼친 채 한나절을 앉아서 바깥 모습을 마치 그림을 보듯 누린다고 한다. 마당 위로 전깃줄이 지나가는데, 이 전깃줄에는 참새가 옹기종기 앉아 지저귀는 소리를 늘 듣는다고 한다.


철마다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는 멧골을 보고 들녘에 사과가 주렁주렁 영글어 가는 구경을 한다더라. 하루를 거의 밖에서 보내는 셈이다. 마당에 있는 나무에는 살구가 주렁주렁, 자두가 주렁주렁, 매실이 주렁주렁, 다들 발갛게 익어도 따먹지 않는단다. 담벼락에 고추나 상추도 심지 않는다. 오로지 꽃으로 심고 바라보고, 온갖 새를 맞이한단다.


내가 사는 대구로 돌아오며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도시에 살고, 아파트에 많이 산다. 먼 영국에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더구나 시골에서 사는 영국사람은 높다란 잿더미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자동차도 안 다니는 시골에서 바람을 맑게 마시면서 지낸다. 온마음으로 숲을 읽는 하루를 누린다고 한다. 그분 집으로 찾아오는 새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면서 즐겁다고 한다.


《작은 새가 좋아요》에 나오는 아이는 뭔가 대단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작은 새 곁에서 같이 노래하고 놀면서 지내기를 꿈꾸고, 사납고 커다란 새가 갑자기 달려들면 씩씩하게 나서서 작은 새를 지키겠노라고 꿈을 그린다.


내 마음에 심은 꿈은 무엇이지? 나는 무엇을 바라보지? 내가 듣는 소리는 뭐지? 내 말소리는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닮았을까? 아니면 이 대구에 가득한, 또 우리나라에 넘치는 자동차가 내는 붕붕붕 소리를 닮았을까?



2024.01.10.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웅진 세계그림책 102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70 그림책 읽기어주기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볼프 에를브루흐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2006.11.15.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보는 짝한테 “그림책 읽어 줄까?” 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떡한다. 짝한테 다가간다. 바닥에 그림책을 셋 내려놓는다. “자, 하나 골라 보소.” 짝은 《생쥐와 고래》하고 《작은 새가 좋아요》하고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보더니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손짓한다.


티브이를 끈다. 그림책은 그림을 함께 보아야 하니 나란히 앉아야 한다. 짝 곁에 앉아서 천천히 넘긴다.


첫 쪽을 펼쳤다. 자리 등받이에 검은 지빠귀가 앉았다. 다음 쪽을 보니, 아주머니는 다림질을 하고, 사다리에 올라가고, 차를 마신다. 이윽고 딸기코 아저씨가 나온다. 천천히 그림을 살피라고 첫 쪽보다 오래 펼친다.


그런데, 그림을 보던 짝이 하품을 한다. 아직 소리내어 읽지도 않고 그림만 보여주었는데 벌써 하품을 하다니. 아이쿠나, 빨리 읽어야겠구나.


짝은 그림을 보고, 나는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 예전에 아이한테 읽어 줄 적처럼 재미있게 말씨를 섞어서 읽어 주고 싶은데, 쑥스럽기도 하고, 따분해서 안 듣는다고 할까 싶어 그냥 읽는다. 


짝은 슬그머니 왼쪽 팔을 빼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머리를 내 머리에 맞댄다. 쭉쭉 글을 읽는다. 짝은 끝까지 얌전하게 듣는다. 이제 책을 덮는다. 


“그림책 처음 읽죠? 어땠어요?”

“그래. 처음 읽지.”

“책에 나오는 딸기코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나요?”

“뭐라고 했는데?”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구려’ 하는 말이 몇 번 나오잖아요.”

“……. 내가 동화책 읽을 군번이가? ‘동물농장’이나 보거르 티브이나 틀어라.”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잘못 물었나. 싱긋 웃기만 하는 짝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짝한테 책을 읽어 주고, 짝이 처음으로 그림책을 읽고, 둘이 함께 책을 읽으니 그냥 좋다.


첫걸음을 뗐으니, 남은 두 책은 흉내를 내며 재밌게 읽어 주면 재밌는 대꾸를 들으려나. 우리가 함께 책을 읽는 날도 있구나. 책을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실실 웃는다.


곰곰이 돌아오면, 짝이 여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짝이 일하던 곳에서 ‘업무평가 시험’ 이 있을 적에만 ‘업무평가하고 얽힌 책’만 펼쳤다. 그때 일하며 살필 법규만 읽었다.


어제 〈실비아〉라는 영화를 보고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짝하고 같이 노래를 부른 뒤로 아픈 몸이 다 나았단다. 노래하는 부부처럼 우리도 부부가 함께 할 놀이가 있을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쭉 하게 두다가, 오늘처럼 책도 함께 읽고,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 주면 되나. 내가 너무 바라는 셈일까.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보면, 그림책에 나오는 아줌마는 어느 날 마당에 홀로 떨어진 새끼 지빠귀를 보았고, 이리저리 걱정만 하다가 끝까지 돌보았고, 마침내 새끼 지빠귀가 어른으로 큰 뒤, 같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았다. 새가 날려면 아줌마 스스로 어미 새처럼 하늘을 날아야 할 텐데, 뚱뚱한 몸집인 아주머니는 그저 걱정만 가득했다. 이동안 아저씨는 바깥일만 하다가, 집에서는 신문만 펼 뿐이었다.


그런데 아줌마가 나뭇가지에서 스르르 몸을 내리더니 가볍게 날았다. 새끼 지빠귀는 이 모습을 보고는 매우 놀라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시큰둥하다. 아줌마는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날 뒤로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고서, 마음에서 걱정을 치우고, 오직 하늘날기만 바랐다.


이리하여 드디어 하늘을 가볍게 나는 ‘꼬마 새 같은’ 아줌마로 거듭났고, ‘다 자란 지빠귀’는 아줌마가 하는 날갯짓을 지켜보면서 나란히 하늘을 난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아줌마가 하늘을 날아도 무덤덤하다. 아무래도 꿈이 없는 사람은 놀랄 일도, 기뻐할 일도, 새롭게 바꿀 일도 없구나 싶다. 나도 작은 새하고 물끄러미 노을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때를 그려 본다.


2024.01.07.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전집 중단편 1
정채봉 지음, 김동성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69 느티나무



《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지음

샘터

2006.9.15.



《물에서 나온 새》를 읽었다. ‘어린새’ 이야기는 봉황과 허수아비를 다룬다. 짚으로 여민 몸에 마음이 들어와서 참말로 숨결이 있기를 바라는 허수아비는 들새를 불러서 쉬라 하고, 배를 채우라 하고 싶다. 그렇지만 스스로 들판에 선 허수아비가 아닌 터라,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들새를 훠이훠이 쫓아야 한다.


예전에 안동 도산면에서 일하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 내가 살던 집에서 일터 사이는 오십사 킬로미터 길이었다. 오가는 길이 꽤 멀었는데, 오히려 길이 멀기에 철마다 다른 들빛과 꽃빛을 누리기도 했다. 도라지꽃을 보고, 허수아비를 만나고, 낯선 들꽃을 보면 이름이 뭘까 하고 한참 헤아리던 나날이다.


기차가 다니는 북후면 쪽으로 오갈 적에는 으레 일찍 기차역으로 나왔다. 혼자 논두렁길을 걸으며 벼냄새를 맡았다. 봄에는 매화를 보고, 꽃이 지면 시냇물을 보고, 철길을 건너 멧비탈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터에서는 낮밥 즈음에 슬쩍 냇가로 가서 꽃을 보았고, 저물녘에는 별바라기를 했다. 곁에 있는 느티나무한테 가서 차도 마시고 빗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티나무가 잘렸다. 나무가 크게 선 곳에 정자를 지어야 한다면서,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리니 나무를 잘라야 한다더라.


여러 일꾼은 전기톱으로 굵다란 나무를 베어 넘기고 잘랐다. 왜 나무를 베고서 정자를 세워야 할까? 나무 곁에 알맞게 정자를 세울 수 없을까? 전기톱에 줄기가 잘리고 가지가 잘리는 느티나무는 톱밥을 잔뜩 내놓았다. 수북하게 쌓이는 톱밥은 느티나무가 흘리는 피 같았다.


다 잘린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일꾼 아저씨한테 말을 여쭈었다. 앉은걸상 크기만 한 둥치를 하나 얻었다. 어쩐지 느티나무를 곁에 두고 싶었다.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둥치를 집으로 실어 날랐다.


《물에서 나온 새》에는 ‘나무를 때리는 아저씨’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도 사람처럼 아플 텐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는 듯하다. 나무하고 마음을 나누고 말을 섞던 눈망울을 잊어버린 탓일까. 나뭇가지에 앉던 새는 어떤 마음일까. 우리는 새한테 물어보고서 나무를 베는가? 나무한테도 새한테도 땅한테도 아무 말을 묻지 않고서 자꾸자꾸 높다란 건물만 올리는 우리들, 사람이지 않을까?


2023.11.07.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싸우는 식물 - 속이고 이용하고 동맹을 통해 생존하는 식물들의 놀라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1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선숙 옮김 / 더숲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68 싸우는 곳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김선숙 옮김

더숲

2018.10.29.



《싸우는 식물》은 풀꽃이 풀꽃 나름대로 싸우면서 목숨을 이어간다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그런데 참말로 풀꽃은 싸우면서 살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풀꽃을 바라볼 적마다, 또 풀잎과 꽃송이를 쓰다듬을 적마다 온마음이 녹고 느긋한데, 싸우는 풀꽃이라면 내 마음도 사람들 마음도 달랠 수 없는 셈 아닐까?


“싸우는 풀꽃”이 아닌 “어울리는 풀꽃”이라고 생각한다. 풀꽃과 나무로서는 언제나 어울리는 길일 테지만, 사람은 마치 싸운다고 잘못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엉키거나 얽히는 뿌리는 마치 싸움질 같아 보일 수 있겠지. 그러나 서로 만나고 아끼고 돌보려고 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어도, 대구 한복판 곳곳에서 돋는 풀꽃을 보면서 시름을 달래고 힘을 얻는다. 아무리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덮어도 풀싹은 어김없이 돋는다. 아무리 자동차가 끝없이 달려도 나무는 새잎을 내고 푸르다.


《싸우는 식물》은 이래저래 풀꽃 마음으로 이야기를 여미려고 했으리라 보지만, 조금 더 풀꽃한테 다가가서, 풀꽃하고 녹아들면서 바라보았으면 꽤 다르게 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보다 큰 풀꽃이나 나무한테 기대기도 하는 풀꽃이고, 저보다 작은 풀꽃을 훅 덮는 듯하지만, 어느새 꽃을 피우고 씨를 맺으면 시들면서 다른 풀꽃한테 자리를 내준다.


풀꽃은 서로 기대고 돌아보기도 하지만, 해와 바람과 비를 나누어 누린다. 혼자만 누리지 않는다. 돌고돌듯 자라면서 함께 비를 마시고, 함께 햇볕을 누리고, 함께 땅에 뿌리를 뻗는다.


덩굴도, 나팔꽃도, 메꽃도, 오이와 수세미도, 겨우살이도, 호두나무도, 소나무도, 다 다르게 살아가면서 이곳에 어우러진다. 곰곰이 보면, 풀꽃은 다 다르게 풀꽃냄새를 내놓는다. 달콤한 열매가 아니어도, 나물로 삼지 않아도, 우리가 굳이 안 먹는다는 풀꽃이어도, 풀내음과 잎내음은 온누리 바람을 푸르게 달래는 구실을 맡는다.


《싸우는 식물》을 덮고서 사람살이를 생각해 본다. 나쁘거나 모질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어쩌면 풀꽃하고 등진 채 살아가기에 나쁘거나 모질어 보일는지 모른다. 늘 풀꽃을 품는 사람이라면 나쁠 수도 모질 수도 없다고 본다. 우리가 서로 아끼지 않거나 돌아보지 않는다면, 풀꽃을 잊은 채 싸우기 때문이 아닐까? “싸우는 풀꽃”이 아닌 “어울리는 풀꽃”인데, 우리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싸우는 사람”으로 치닫는 듯하다.




2024.1.2.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