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논에서 고요히

[푸른하루 10] 왜가리 



  들녘에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오월에는 모가 물에 잠겨 살아날까 싶더니, 어느새 진흙을 잡고 무럭무럭 자라고는 벼꽃이 여물어 고개를 숙입니다. 이제는 논바닥에 물이 없습니다. 손으로 논바닥을 눌러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밟으면 빨려들거나 쭉 미끄러질 듯하지만, 꾸덕꾸덕 마릅니다. 볏잎과 논바닥은 가을볕에 마르고, 벼는 가을볕에 익습니다.


  논삶이를 할 무렵부터 논을 찾아오는 새가 있습니다. 깃이 온통 하얀 새가 있고, 얼룩이 진 듯 무늬가 있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눈이 덜 녹은 겨울에도 빈논에 앉곤 합니다. 으레 혼자 있습니다. 봄을 지나고 여름이 와서 논에 물을 댈 때부터는 아주 논에 삽니다.


  논에 모를 옮겨심는 일이며, 모가 자라는 날이며, 이제 벼가 익고 논바닥이 말라가는 모습이며, 하얀새와 왜가리는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논에 농약을 뿌려도 아직 개구리는 살아갑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논에서 살며 개구리를 잡습니다. 냇가나 물가에서 살아갈 새일 텐데, 이 멧골에도 논이 있다 보니, 하얀새와 왜가리는 이곳까지 찾아오는구나 싶습니다.


  새여름에 파릇하게 한 뼘쯤 자란 무논에 하얀새나 왜가리가 내려앉거나 선 모습을 보면, 꼭 한 폭 그림과 같습니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한결같이 그림으로 서는 새를 지켜봅니다. 새는 논을 지켜보고, 나는 새를 지켜봅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낚시꾼 같습니다. 오래 기다리고 서고 걷다가 해질녘에서야 훨훨 날아서 저희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얀새와 왜가리는 고요히 기다리는 듯합니다. 문득문득 보아도, 창밖으로 한참 바라보아도, 늘 몸짓이 반듯합니다. 바닥이 온통 흙빛인 논에서 살아가더라도 깃털은 늘 하얗습니다. 긴다리로 사뿐히 다니는 걸음걸이는 멋있기까지 합니다.


  함께 다니는 모습도 드물게 보지만, 어쩐지 하얀새와 왜가리는 혼자 다니는 듯합니다. 하나가 다니면 하나는 둥지를 지킬까요? 하나가 개구리를 사냥하고서 둥지로 돌아가면, 다른 하나가 개구리를 찾으러 논으로 날아올까요?


  나는 오며가며 하얀새와 왜가리를 지켜보는데, 마을에 계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새를 못 느끼는 듯합니다. 아니, 새가 무슨 이름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논일을 하며 으레 만났을 테지만, 무슨 새이름인지 모를 수 있어요.


  새를 보려고 하면 새가 언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논을 짓고 논을 돌보면 벼에 언제 꽃이 피고, 벼를 언제 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자가용을 몰면, 고속도로 나들목을 하나하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기에, 더 알고 싶습니다. 하얀새와 왜가리가 혼자 다니는 듯한 뜻도 알고 싶고, 겨울에는 어떻게 추위를 견디는지 알고 싶습니다. 개구리가 다 겨울잠에 들면 겨우내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말없이 논에 고요히 선 듯한 새입니다. 한참 지켜보아도 우는 소리 하나 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면서도 말 한 마디가 없는 새인데, 조용히 논과 하나가 되는 새인데, 나는 어디에서 무엇과 살아가는지, 무슨 말을 떠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잡으려고 이렇게 오래 말없이 서서 기다리는 새인데, 나는 글 하나가 잘 나오지 않는 날에는 너무 투정을 부리는 듯합니다.



2026.10.18.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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