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소리 아닌 새소리

[푸른하루 9] 꿩



  귀뚜라미 울음이 여리게 퍼지는 사이로 앓는 소리처럼 쇳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을 열고 소리나는 벼랑을 훑어봅니다. 이쪽이 아닙니다. 소리는 건너에서 들립니다. 건너숲에서 짧게 한마디로 울고 울며 또 웁니다. 누구일까. 무슨 뜻일까. 아침에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밥을 먹는가요. 이제 쇳소리는 사라지고 새소리만 맑게 들려옵니다.


  지난봄에 마당에 둘러앉아 떡을 먹는데, 이때에도 건너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랑잎이 부스럭거리고 후다닥 떠밀리듯 내려오는 소리가 크더군요. 소리가 나는 밭둑으로 얼른 가 보았습니다. 그때는 감자싹이 한창 오르던 무렵입니다. 밭고랑에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앉습니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고랑을 살핍니다. 한 고랑 두 고랑 세 고랑 네 고랑까지 살피자, 끝에 누가 웅크렸군요. 그쪽은 머리를 숨겼다고 다 숨은 줄 여기는 듯하지만, 나한테는 다 보입니다.


  살짝 웃었습니다. 꽤 크게 울리는 소리라서 큰짐승인가 싶어 처음에는 덜컥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멧골에 큰짐승은 없을 텐데 싶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까투리입니다. 조금씩 다가가는데, 내 발소리에 놀랐는지 어느새 솟아오릅니다. 날갯짓하는 까투리 소리에 외려 더 놀랐습니다. 힘차게 쏜살같이 날아오른 까투리는 소나무가 있는 숲 어디쯤에 내려앉은 듯합니다. 


  쇳소리를 닮은 듯한 꿩울음인데, 겨울에도 곧잘 듣습니다. 어느 때에는 꼭 앓는 소리 같습니다. 어디가 아프려나, 숲에서 아프면 어떡하려나, 한참 생각해 봅니다. 설마 겨울에 알을 낳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쪼록 그만 울고 잘 지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철마다 어떤 소리가 이 숲에 흐르는지 돌아봅니다. 봄이면 새소리가 노랫가락마냥 멧골에 아름다이 울려요. 이다음에는 개구리가 멧골이 떠나가도록 울고요. 뻐꾸기가 이어서 울어요. 그리고 꿩이 내 때가 되었다는 듯이 아침마다 쇳소리마냥 꽁꽁 껑껑 크게 소리내며 모습도 드러냅니다. 꿩은 언제나 혼자 우는 듯해요. 


  어릴때에는 꿩깃을 주워서 글씨를 적으며 놀았어요. 장끼 깃털은 아주 예쁘거든요. 의성 멧골에서는 장끼도 까투리도 곧잘 만났는데, 안동 멧골에서는 좀처럼 장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렁찬 목소리는 장끼 소리가 틀림없습니다. 장끼는 우리집 앞에 사는 듯합니다. 그저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살며시 다니며 까투리를 부르는 듯합니다. 


  나는 쇳소리라고 느끼지만, 꿩은 ‘쇠’가 아니라고, 서로 사랑으로 주고받는 소리라고 말할 테지요. 그래요, 새는 늘 ‘새소리’입니다. ‘쇠소리’가 아니지요. 새는 숲에 우거진 나무가 심심하지 말라면서 이 나무 저 나무로 찾아갑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한테도 철따라 ‘새노래’를 들려줍니다. 새가 들려주니 새로운 노래입니다.


  쇳소리라기보다 그냥 새소리인 꿩을 다시 곱씹습니다. 어린날 우리집에서 가까워 곧잘 놀러다닌 금성산 숲자락이 떠오릅니다. 그곳에 있던 옹달샘도 떠오릅니다. 안개가 끼면 뿌옇게 잠기는 멧골이었는데, 엄마아빠 밭일을 도우러 멧밭을 걸어다니던 일이 떠오릅니다.


  예나 이제나 멧골이 마을을 먹여살립니다. 우리는 멧골에서 나물도 열매도 얻고, 땅을 일구어 논도 밭도 짓습니다. 공장이 없어도 우리가 손수 지어서 누리고 나눕니다. 땔감도 베푸는 멧숲이고, 쌀도 콩도 고구마도 딸기도 머루도 고루 베푸는 멧숲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멧숲 어디에서나 토끼가 흔했지만, 이 시골에 고양이가 늘면서 토끼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멧골은 겨울이 더 일찍 옵니다. 곧 서리가 내릴 텐데, 꿩은 겨우내 어떻게 지내려나요. 부디 겨우내 포근히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쇳소리라고 여기지 말고, 우리 밭자락 귀퉁이에라도, 멧짐승과 멧새가 겨우살이를 할 밥을 조금은 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에는 까치밥을, 밭에는 새밥을, 조금조금 두려고 합니다. 오래오래 우렁찬 새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2026.10.1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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