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읽거나 시청할 때, 일할 때, 지쳐서 멍때릴 때, 하나의 문제에 골몰할 때를 제외하면 생각이 아무렇게나 흐르게 둔다. 심각하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그냥 말 같지도 않은 공상일 수도 있다. 방향성도 없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뛰놀게 둔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뭐. 상호작용 할 게 많은 산에선 특히 더 그런 편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한 여행에서 많은 걸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워낙 새로운 탓에 감각과 생각은 그 지점에만 집중된다. 나를 벗어난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시각에. 그래도 특별한 것만이 꼭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 옛날 그 어떤 시절, 일상이 일상처럼 이어지길 바라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잘 알고 있다.


고양이와 산으로 너무 많은 글을 우려먹는 것에 대한 변명이자 핑계를 적어봤다. 내일부터 삽을 들고 나가서 아파트 앞 화단을 파볼까? 생물의 다양성은 지상보다 지하가 더 풍부하다고 하던데. 현미경도 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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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 대한 개념은 꾸준히 변해왔다. 70대 이상, 어쩌면 60대까지도 투자라면 부동산뿐이었다. 돈이 많아 정보가 남달랐던 사람들은 제외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훨씬 다양한 범위에서 다양한 수단을 통해 돈을 불려 왔으니까. 보통 사람에겐 절약과 적금, 예금을 통해 목돈을 만들고 인생 중반을 훌쩍 넘겨 내 집을 갖는 것. 그게 투자의 완성이었다. 한 마디로 부동산 몰빵.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겐 부동산은 애증의 대상이다. 집값이 올라야 재산이 늘어나는데 그러면 당연히 세금이 많아질 테니 그건 싫고, 집값이 하향 안정돼야 자식들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텐데 그러면 내 재산이 줄어드니 또 그것도 싫고. 공급이 늘어야 하는 건 맞는데 공공 보급은 집값도 안 오를 테고 내 재산권 행사도 제한될 테니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심지어 부동산을 망국의 지름길이라 여기는 생각은 자신들의 삶 자체가 부정되는 듯한 느낌까지 받아서 그건 더욱 싫다.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갔는데….


그러다 50대부터 투자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위치는 여전히 굳건했지만 틈이 생겨났다. 부동산은 투자가 아니어야 한다. 보험은 투자가 아니다. 예적금은 투자에 적합하지 않다. 부동산에 묶여 말년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하우스푸어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 주식 기반 상품들이 대중화됐고, 연금 상품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각종 파생 상품이 수시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저 이후로 외적인 변화는 코인의 등장과 미국 증시 투자 정도. 오히려 가장 큰 변화는 관념 쪽에서 일어났다. 50대들은(어쩌면 40대들도) 젊은 시절에 돈을 벌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욕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벤처를 하든 주식을 하든 성공과 실패, 그를 통한 경험에 집중했고, 당연히 뒤따랐을 경제적 보상이나 피해는 언급을 피했다. 그렇지 않으면 속물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거 같다. 인스타를 통해 수익을 내고, 증시나 코인은 물론 부동산 경매, 심지어 부동산 직접 투자까지. 자신의 경제 활동을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고 내세운다. 그 사고방식도 놀랍지만, 그 적극성과 섭렵 범위도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다시 부동산이 전면에 등장했다. 뭐, 따지고 보면 언제 뒤로 물러난 적이 있었나 싶다.


무언가 선택할 때마다 세상이 분기한다는 말이 있다. 1개가 2개로, 2개가 4개로, 다시 8개로. 한없이 분기하다 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안다 해도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부동산에 얽힌 이해관계가 꼭 저렇다. ‘해결’이란 단어를 써도 되는 문제일까? 우린 돈으로 쌓아 올린 지뢰밭에 살고 있다. 전사의 심장을 가졌단 말은 꼭 증시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꼬리말) 정확한 분류를 원했다면 세대가 아닌 연도 같은 시간대에 따라 구분해야 했다. 그냥 내가 느꼈던 흐름의 변화를 적다 보니, 편의상 저렇게 썼다. 지금은 50대도 같은 흐름에 올라탔다. 물론 올라탔다고 똑같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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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 선생님아, 그만 좀 찔러라! 왜 나만 보면 자꾸 찌르고 쑤시고 그러는 건데? 내가 선생님 때문에 구멍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느라 바람 잘 날이 없어!


(선생님) 음, 오늘 건강 검진에 치아 스케일링까지 할 거면...


삐쩍 마른 아저씨 어디 있는데? 나 집에 가고 싶다앗!


(선생님)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이봐, 선생님아, 내 말은 듣고 있는 거냐?!


(선생님) 그런데... 왜 마취가 안 되지? 잠이 들 때가 됐는데.


내가 선생님 앞에서 잠들 순 없지! (부릅) 두 눈 똑바로 뜨고 다 지켜볼 거야!


(선생님) 진돗개도 아니고…. 너, 정신력 하난 진짜 끝내주는구나?


예민한 아저씨 감시하려면 얼마나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부릅) 절대 잠들 수 없다!


(선생님) 얘 봐라...


까까를 얻어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부릅) 애를 쓰는데... 선생님아, 나 (부릅) 절대 안 잔다! 내 몸에 구멍은 더 이상 안 된다. (부릅 부릅) 아 씨, 배 너무 고픈데... (부릅) 집에 가서 목도 찾아 끼워야 하는데...


(선생님) 푹 자고 일어나면 아저씨랑 집에 갈 거야, 그러니까 코 자자.


하찮은 고양이를 무시하지 마라... (끔뻑) 고양이가 다 지켜볼 거다... (부릅) ... 가치가 있는지... 배고픈데... (끔뻑)


(선생님) 아휴….


*** 월이는 선생님을 아주 많이 무서워한다. 사실 나 빼곤 다 무서워하는 거 같다. 이날 잠이 들지 않아 마취제를 추가로 조금 더 맞고서 검사와 스케일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여름에 귓속이 너무 많이 더러워져 주사를 두 방 맞을 일이 생겼는데, 욱하면 지랄냥이가 된다는 러시안블루의 소문을 몸소 확인시켜 주었다. 그 뒤로 병원 가는 건 최대한 자제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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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내 얘기를 할 때가 많다. 특히 소설을 읽고 나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변화, 가치관을 바탕으로 개인적 경험을 풀어내는 방식이라 책 자체에 대한 직접적 정보 전달은 소홀해지기 쉽다. 이런 방식이 사실 하루이틀 일은 아니라서 책이나 영화 등 감상의 본체보다 글쓴이를 더 돋보이게 하는 글쓰기 방식이란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칭찬 같기도 하고 비난 같기도 하고. 나 역시 인식은 하고 있던 터라 크게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것 또한 단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작은 걱정거리 정도는 남겨둔 상태였다.


누군가의 글을 좋아했다. 위에서 말한 단점이 해결된 글쓰기였다. 난 소설이 열어준 문을 통해 들어가 그 환경에 머리끝까지 잠긴 채 이야기를 흡수한 후 한숨을 쉬듯이 쏟아낸다. 그런데 그 사람은 두 발을 담그고서 관조하듯 이야기를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을 통해 편안하게 뱉어낸다. 그래서 그 글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묘하게 끌렸다. 첫 만남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3년쯤 됐나? 그보다 더 오래 전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아, 지금도 좋아한다. 푹 빠져드는 수준에선 벗어났지만. 무슨 일인지 그 사람의 글이 건조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방식은 여전한데, 내부에 집중하던 시선이 외부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발을 뒤로 물린 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조절하는 듯한 느낌.


며칠 전 무엇을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다 미니카 하나를 발견했다. 이거... 작년에 집수리하기 전 짐 정리하면서 안 버렸어? 어렸을 때 참 아끼던 미니카였다. 분류를 잘못해서 다시 살아남았든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맘이 바뀌었든지. 지금은 추억만 묻어있을 뿐 애정은 남지 않은 대상.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 중얼거렸다. 얘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네. 그 사람의 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내 태도가 바뀐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동시에 한결같고 싶다는 욕망이 맘 한 귀퉁이에서 불끈 솟아오르며 미니카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본다.


고양이, 아저씨 집에 귀신 있나 보다. 이거 분명히 버렸는데 다시 서랍에 넣어놨어. 귀신 보거든 아저씨한테 얘기 좀 해줘라.


잠깐 생각해 보니, 귀신을 보면 무서울 거 같다.


그냥, 아저씨 물건 만지지 말라고 전해줘. 알겠지?


호기심에 바짝 따라왔던 고양이가 말소리에 반응한다. 알기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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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아니면 몇 달 전일 수도 있다. 마루에 있는데 보일러가 설치된 베란다 쪽에서 ‘쩡’하는 금속성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간혹 새들이 연통에 앉았다 날아갈 때면 비슷한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엔 좀 과하게 컸다. 가서 살펴봤지만 내 눈엔 특별히 잘못된 건 없어 보였다. 같이 들어온 고양이에게 의견을 묻듯 쳐다봤지만 녀석이라고 별다른 게 있겠나.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놀란 표정만 지을 뿐.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고, 시간이 흘렀다.


며칠 전, 1년에 두 번 있는 도시가스 점검이 있었다. 점검하시던 분이 나를 부르더니 보일러 연통이 어긋나 있다면서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 연통을 바로 맞추고 그 주변에 내열 실리콘을 바르셔야 할 거라고 했다. 처음엔 내가 직접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연통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얼마 전 그 금속성 소리의 정체가 이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AS를 신청. 그 후 도착한 AS 기사분 말씀하시기를, 연통 자체의 어긋남도 문제지만 연통의 방향도 잘못되어 있어서 일산화탄소 유출뿐 아니라 누전의 위험까지 있단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국지성 집중 호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결론은? 보일러와 연통을 새로 다시 설치했다. 보일러도 수명이 거의 다 된 상태여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던 터였다. 아우, 작년 집수리할 때 한꺼번에 할 걸. 연통 주변 창문이 열리지 않아 외부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그쪽으로 또 비 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다음 날 아침,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다가 참 용감하게 잘도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일산화탄소 유출에 누전이라. 소설 <1984>에 ‘무지가 힘’이란 구호가 있었는데, 딱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확 다가왔다. 50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내 삶의 위험 요소는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시원함보단 눅눅함이 훅 덮쳐온다. 얼른 창문을 닫았는데 몸을 휘감았던 습기로 인해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인상을 찌푸린다. 제습기를 산다고 돈을 썼고, 내년 1월 예정인 일본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구매했고, 어제는 보일러까지. 갑자기 흥분해서 방언이 터지듯 고양이에게 주절거린다.


고양이, 아저씨가 요즘 돈을 저렇게 쓰거든. 국지성 폭우가 내리듯 큰돈을 펑펑. 요 몇 달 카드 대금이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안 해요! 저 비야 자연이 제공하는 빵빵한 습기를 등에 업고 인정사정없이 뿌려대지만, 이 아저씨 돈은 뭐를 등에 업어야 하냐?! 고양이, 너 확신의 유튜버가 돼라! 요즘은 그게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더라.


고양이가 말할 수 있었다면, 대번에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 무지렁뱅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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