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6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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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우리 집 근처엔 재래시장이 있다. 그 안에 정육점이 몇 개 있는데 아마도 내장을 제거한 돼지를 통째로 받아서 직접 부위별로 잘라 판매하는 듯하다. 어느 날 시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지나다가 차량의 열려있는 짐칸 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배가 갈린 채 사지를 쭉 뻗고서 짐칸에 실려있는 돼지를. 트라우마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정육점 앞을 지나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문밖으로 튀어나와 있던 돼지 뒷다리 한쪽. 하지만 누군가에겐 트라우마가 될 장면이라면, 그 사람은 정육점을 지나칠 때마다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 소설은 사람들이 건강 검진을 받으려 대기하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시작한다. 신오는 이곳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뒤이어 암 확진 판정을 받는다. 그는 생각한다.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았고, 헬스는 주 삼 회씩 벌써 오 년째 다니고 있었다. 주말에는 등산도 가끔 했다. 주중 점심은 한식 위주로 나오는 구내식당에서 먹었고 저녁은 주로 닭가슴살 샐러드를 사 먹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신오는 자기 인생이 엇나가기 시작한 시점을 원경과의 이별이라 생각한다. 함께 할 미래를 계획할 정도였는데 원경 집안에 유방암 내력이 있단 얘기를 듣고 신오는 이별을 결심한다. 그는 그렇게 사랑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암에 걸린 현재, 원경을 떠올리며 연락을 취한다. "나 운주에 있어." 신오는 바로 운주로 향한다.
 
운주는 원경의 이모님이 물려받은 산이 있는 곳이다. 이모님은 그곳에 직접 집을 짓고 산다. 이곳은 회복의 공간이다. "원경은 허리가 아플 때 버섯 방에 누워 있다 오면 몸이 가뿐해진다고 말하곤 했다." 신오 역시 다리에 수시로 올라오는 쥐 때문에 고생했지만, "거짓말처럼 신오는 그 버섯 방에서 자는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이 변해 있었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이모님의 집과, 같은 산에 있던 암자가 홀라당 탔고, 암자의 비구니 스님도 화마에 휩쓸렸다. 다행히 이모님과 암자의 유일한 신도였던 보살님의 존재가 이 공간에 여전히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원경이 있다. 원경은 이제 신오의 사랑이 아니라 희망이다. 미래를 부탁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희망일 테고, 과거의 자신을 고백하고 사죄를 구함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려는 이기적인 희망. 하지만 신오는 거짓말을 한다. “나 사실 좀 아팠거든. 말기 암이었어. 오 년 생존율이 십 퍼센트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보다시피 살아남았어. 어제 정기검진 다녀왔어. 깨끗하대. 네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고. 그때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통보하고 연락을 끊었잖아. 꼭 다시 제대로 만나서 사과하고 싶었어.”
 
이유가 무엇이든 신오가 한 이 거짓말 이후로 회복의 공간이 무너져 내린다. 사정없이 밀려드는 현실로 인해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구덩이를 파던 그들 앞에 쏟아져 내린 하얀 그 무엇. 그것을 보며 신오는 군대에서 경험했던 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신오는 이 여자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신오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신오는 모두로부터 분리된다.
 
지금 이 글이 이 소설을 말해주기엔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돼서 무언가를 덧붙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때론 설명보단 감정이 훨씬 가치가 있으니까.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마지막 부분에서 신오와 함께 구덩이에 나뒹굴기를 바란다.
 
<꼬리말> 인용부호 안의 문장은 모두 본문 인용 글.


<최애의 아이>

집착 :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계속해서 매달리는 것
 
집착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있다. 당시엔 몰랐고 다 자라서 돌이켜보니 '아, 그랬었구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광적인 어떤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착하는 쪽이 품은 기대와 쏟아붓는 그 모든 것들은 내게 고스란히 압박감으로 되돌아왔다. 그 시절의 난 input에 비례해 output이 꽤 좋은 편이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끝이 없는 것이라서. 다행히 상황을 알아챈 누군가에 의해 그 집착은 제동이 걸렸다. 그 누군가는 집착의 소유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 아이에게 자유를 주면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할 거라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아이라고. 그 이후 상황이 변했다. 기대는 여전했지만 내겐 어떤 여지가 생겼다. 숨을 쉴 수 있는 여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지, 실수할 수 있는 여지. 그리고 어쩌면 기대를 저버려도 괜찮을 여지까지.
 
이 소설은 아이돌 팬덤을 기반으로 한 얘기다. 지금과 크게 다를 거 없는, 가까운 미래의 대한민국인 듯하지만, 정말 큰 차이가 하나 있다. 팬들이 덕질할 수 있는 상품 중에 남성 아이돌의 공여된 정자가 있다는 거. 그래서 가임 여성은 심사를 거쳐 그 정자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물론 비싸고, 해당 여성은 그 아이돌의 팬이다. 뜨악한 설정에 혀를 내두를 수 있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더 경악할 테니 시작부터 놀랄 필요는 없겠다.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단순히 개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서 아이돌 팬덤에 이미 사회적 해석이 첨부되는 데다가 이 소설에선 아이돌의 지나친 상품화, 출산에 대한 인식, 성에 대한 고정된 사고방식 등 시스템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넓은 시각으로 소설을 대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이지 싶다. 예전이라면 분명 나도 그랬을 거다. 시스템과 개인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생각이 바뀐 건 아니고... 태도의 변화랄까.
 
기왕 덧붙이는 거 딱 하나만 더 처음에 썼던 이야기에 추가하자. 나 이전에 한 명 더 있었다. 집착의 대상이. 그런데 내가 등장하면서 집착의 정도와 흐름이 바뀌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그 변화를, 특히 그 흐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등장했다고 해서 이걸 꼭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을 뿐 이 바탕엔 아주 다른 많은 것들이 깔려있다. 이건 가부장에 관한 이야기고, 전통적이고 편향적인 성 인식에 관한 이야기며, 무엇보다 그 시대상과 시스템에 갈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장면.
 
보자마자 우미는 남자의 뇌 속 극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오 분의 시술이 강간 포르노로 뒤바뀌어 상영되는 걸 알았다. 그가 우미를 정복했다고 여기는 걸 알았다. 뒤이은 상영작은 가난한 정부가 아이를 내세워 동정을 구하는 삼류 멜로일 것이다. 당신 아이예요. 한 번만 안아주세요. 꺼져! 그런 더러운 아일! 우미는 이어질 영화를 무대예술로 바꾸기로 했다. 무대예술의 진정한 묘미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발생한다. 우미는 손을 높이 들었다. -<본문 중>
 
우미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인 유리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은 인물이다. 그런데 우미는 아이를 낳은 후, 공여된 정자가 어떤 이들의 농간 탓에 다른 사람의 정자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그 농간을 부린 자 중 한 명이다. 우미의 높이 든 손엔 무엇인가 들려 있다. 그리고 일종의 복수를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랄 수도 있다. 극단으로 밀어붙인 아이돌 팬덤의 폐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눈엔 무엇보다 시스템에 갈려버린 한 명의 개인이 보인다. 아, 한 명이 아니구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여기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자신을 부랑자로 불러달라고 고집하는 손님. 또 한 명은 아르바이트생 K. 부랑자는 자신이 '지구'에 빙의되었다며 하나의 얘기를 꺼낸다.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이어진 질긴 목숨이 영 낯설어서. 이상해서. 징그러워서. 이게 내 것 같지 않아서. 그걸 가졌단 수치심도 내 것 같지 않아서. 도무지 내가 내 몸이 내 마음이 어느 것 하나 내 것 같지 않아서 믿어지지 않아서. 그 모든 일을 겪은 뒤 여전히 여기 있다는 게 내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게 내가 이렇게 외롭게 이렇게 아프게 슬프게 배고프게 내가 계속 여기 있다는 게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있는 게 다름 아닌 나라는 게…… -<본문 중>
 
이런 식의, 마치 구전 설화 같은 얘기를. '지구'의 얘기다. 먼 미래의 '지구'일 수도, 다른 차원의 '지구'일 수도 있다. 발 디딜 땅이 모두 물에 잠겨버려 물의 행성이 되어버린 곳에서 여기 이렇게 남은 자들의 심정이 저렇단다. 여기 있다는 게, 여기 이렇게 있는 게 다름 아닌 나라는 게...
 
글이 너어무 길어질 거 같으니까 '지구'의 얘기는 여기서 그만두자. K? K는 '지구'의 탄생 설화와 비슷한 설정을 지닌 인물이다. 무엇보다 K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K도 여기까지. 이제 여느 때처럼 내 얘기를 해야겠다.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던 시절, 그러니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에 떠내려가던 시절,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엘리베이터에 타곤 했다. 엘리베이터 양쪽 벽에 커다란 거울이 붙어있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수많은 내가 그 안에 존재했다. 세어볼까 하다가 포기한 적도 있고, 괜히 손을 한 번 흔들어본 적도 있다. 다 난데... 저 많은 나를 내가, 내 안에 다 가질 수 있을까? 저건 분노하는 나, 저건 침울한 나, 저건 이기적인 나, 기뻐하는 나, 약삭빠른 나, 양심적인 나. 그리고 또... 땡. 집이 있는 층에 도달한 소리. 무심코 하품하며 내리다가 깨달았다. 지금은 저 모든 나를 압도하는 건 일에 시달려 피곤한 나구나. 사회가 요구한 이런저런 역할들에 시달리다 생각할 겨를 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그냥 여기 이렇게 있는 나.
 
'나'에 대한 생각은 '나' 말고 다른 이가 해줄 수 없다. 그러니 '지구'와 K의 이야기를 저기서 끊어버렸다고 내 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직접 읽어보자. 내가 왜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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