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몇 개월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부모님의 근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분위기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지만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애만 태우는 어머니가 내겐 가장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시니 그나마 내 시야에서 벗어나 계실 때가 많아서 어머니보다 덜 걱정스러웠고. 아니면 단순하게 어머니를 더 좋아했던 걸 수도 있겠다. 어쨌든 어린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 당시 알고 있던 모든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제우스신, 삼신할머니... 문제가 해결돼서 우리 엄마 걱정 그만하게 해 주세요. 자기 전에 빌었고, 눈을 뜨면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용꿈을 꿨고 그 꿈의 내용이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부모님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기도부터 현실까지 길어야 한두 달인 단기 이벤트였으나 이 일은 내게 엄청나게 영향을 미쳤다. 무지 낮은 확률의 이벤트들이 공교롭게 한 시기에 몰린 걸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난 너무 간절했고 내 손을 누군가 잡아줬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그 결과, 내가 아는 세계, 내가 아는 지식,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이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난 불확신의 아이였다.


어렸을 때 난 과학자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가장 좋아하며 잘하는 과목은 수학이었고, 공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살면서 종교는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삶은 역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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