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6시 30분이라 출근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강남에 도착하면 얼추 붐비기 시작할 시점이라 걸음을 서둘렀다.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역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가드레일 바로 옆 찻길 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으니 아주 짧은 순간 시야를 스치듯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으로 강력한 효과음 하나가 아주 명징하게 울려 퍼졌다. 빠각. 그 언젠가 바로 눈앞에서 버스 바퀴에 깔리며 비둘기가 내뱉었던 소리. 아니, 비둘기였던 존재가 자신의 실존을 형체 없는 흔적으로 변환하며 그 대가로 세상에 내놓은 파열음. 다른 때 같으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내려갔겠지만, 그저 가만히 서서 그 느린 흐름에 몸을 맡겼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들려오는 덜컥덜컥하는 소리가 무언가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지도 앱 덕에 모르는 곳도 단번에 찾아갈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지하 공간에서만큼은 무용지물이다. 3차원에 약한 건가? 오르락내리락 서너 번을 반복하다 그냥 지하상가 벽에 있는 약도를 보고 나서야 약속 장소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지인과 아침을 먹고 다음으로 향할 곳은 극장. <전자오락수호대>라는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볼 예정이다. 지상으로 나와 길을 걷는데 옆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높이 솟구쳐 있다. 목을 꺾어 빌딩을 올려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한 방향으로 희미한 선이 그어진 듯하면서 그 선을 경계로 양쪽 하늘의 색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뭐지? 건물 외벽 유리에 햇빛이 일정 방향으로 반사되어 그러는 건가? 공간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 서울 촌놈 아니냐는 지인의 식상한 표현에 얼른 걸음을 다시 옮긴다. 오늘, 이상하다.
애니메이션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성우든, 배우든 더빙이 들어간 작품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외국말의 경우는 상관없는 걸 보면, 우리말 더빙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괴리감을 느끼지 않나 싶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비현실 세상 속으로 몰두해야 했지만, 이번엔 거꾸로 그 괴리감 때문에 자꾸 현실로 패대기치듯 끌려 나왔다. 현실에 서 있을 땐 비현실을 감지하고, 비현실에 몸을 맡겨야 할 땐 현실을 놓지 못하다니.
돌아오는 길. 아침에 들어갔던 지하철역 입구를 이번엔 거꾸로 빠져나왔다. ‘빠각’하는, 딱딱한 것이 한순간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굳이 차도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상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소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 감각에 금을 낸 건 이번엔 청각이 아니라 시각이었으니까. 아침에 비둘기의 흔적 옆에는 하나의 존재가 더 있었다. 아주 까만, 덩치가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 몸을 숙였다 들었다 하는, 쪼는 듯한 몸동작과 부리 끝에 매달린 비둘기 깃털. 그 잿빛 깃털은 까마귀의 까만 몸 색깔과 대비되어 뜬금없이 하얗게 도드라져 보였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상당한 거리라 아무것도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그곳엔 존재의 비명을 집어삼킨 무감각이 새까맣게 도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