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장사를 하면서 겪게 된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최진영의 <일주일>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 ‘고객은 왕이다’란 고리타분한 명제를 폐기 처분했다는 거. 다른 하나는, 내가 뽑은 근무자들을 내 동료이자 내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 사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은 존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문장을 20대 때 적어놓은 걸 보면, 이미 비슷한 개념을 깨달은 상태긴 했다. 다만 장사를 시작할 땐 그 개념을 근무자들에게 적용하지 못했을 뿐이었지.


그 인식을 촉발한 가장 일반적인 예는, 느닷없는 결근이나 퇴사다. 대체 또는 보완 인력이 전혀 없는 소규모 자영업 특성상 그 공백의 여파는 고스란히 나 아니면 남아 있는 근무자에게 전가된다. 다른 예라면, 성격상 문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덕에 다른 근무자들과 화합이 안 되거나 상대방의 말이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조직을 아예 와해시키는 경우다. 이럴 때마다 더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 건 내가 알면서도 그 사람을 뽑았다는 점이다. 비논리적인 얘기이지만, 다양한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되면 어떤 사람을 볼 때 감이라고 해야 할까, 느낌 같은 게 있다. 이 사람은 같이 일하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런데도 뽑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아주 많다. 일하는 사람의 공백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견뎌낼 수 없을 때가.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알게 됐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도래할 텐데,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경제적 문제도, 진상 손님도 아닌 내 손으로 뽑은 근무자일 거라고. 장사를 시작하고 16년쯤 지났을 때 그 일은 현실이 됐다.


살면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선택을 한다. 다만, 그 선택의 대부분은 삶의 연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우리가 집안의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여닫고 지내는 것처럼. 하지만 흐름을 깨고 변화해야 할 순간이 닥치면, 우린 그 선택의 순간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바뀔 것인가, 그냥 흘러갈 것인가. 변화를 택했다면 삶은 전과 다른 방향을 잡을 테고,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린 다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만 더. 오래 같이 일하던 근무자들과 매장에서 수다를 떨 때가 있곤 했다.


“진짜 신기한 게 점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가 있어요? 난 절대 나중에 편의점은 안 할 거야.”

“너도 장사해 봐. 네 일이면 너도 이러고 있을걸?”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한 녀석이,

“나는 더 신기한 게 점장님 어떻게 안 죽고 살아있어요?”

“... 이 자슥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 근무자들 덕에 16년이 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언제나 희망은 사람에게, 절망도 사람에게 있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자각도 내 선택 중 하나였을 것이고, 지금은 딱히 일부러 인식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삶의 일부일 뿐.


AI가 제시한 문장 : 문을 나서면, 그 문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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