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정치인이 있었다. 특정 지역에 기반이 있다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지역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그 지역과 아무 관련이 없으니, 내가 모르는 어떤 기여가 있겠지 싶다가도 하는 행동이나 말이 전해져 올 때마다 낯을 찌푸렸다. 뭐,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모든 정치인의 적절치 못한 언행이 트럼프의 등장으로 매운맛에서 보통 맛으로 상대적 절하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점.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보기 싫은 거지만. 지난 선거에서 그 정치인은 선택받지 못했다. 한동안은 안 보겠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비뚤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무언가 낯을 찌푸릴 대상을 반드시 하나라도 찾아내고 말겠다는, 그런 마뜩잖은 심보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 둘이 사라지면 다음번엔 셋을 찾고, 그리고 나선 넷을 찾게 될까? 예전에 썼듯이 정치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정치인을 생각해 본다. 그들이 판단한 가장 잘 되는 장사는 조롱과 비하와 혐오와 선동. 다시 말해 그걸 소비해 줄 대상이 있단 얘기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지 아마. 내가 낯을 찌푸리는 그 둘을 향해 나 역시 혐오를 되돌리는 거 같아 맘이 안 좋다. 이 무한 증식, 무한루프에서 발을 빼야 하는데, 세상에 관심을 유지한 채 그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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