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엔 서늘하고 낮엔 살짝 덥고. 일교차가 벌어지며 환절기 느낌의 계절로 들어서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이 많은 집 밖에선 아는 체도 하지 않지만, 집 안에선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들러붙어 간질이듯 얼쩡대다가, 불현듯 존재감을 폭발시킨 후 눈물 콧물 쏙 뺄 만큼 매콤하게 내 온몸을 휘감는다. 어찌나 영악한지 먹을 때와 잘 때는 잠시 뒤로 물러난다. 먹고 자게는 해 줘야 맘껏 괴롭힐 수 있으니까.
알레르기 비염이 찾아왔다. 반갑지도 않은 것이 꼭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덮치곤 한다. 재채기와 콧물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종일 시달리다 보면 어깻죽지에 머리까지 지끈거릴 정도로 아프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코를 간질이는 재채기 전조 증상에 어쩔 줄 몰라 하면 고양이도 저만치 도망을 간다. 못된 녀석 같으니. 언제 기침만 해 봐. 그땐 나도 저만치 도망가 버릴 거야! 5일째 시달리는 중인데, 어제는 일하고 들어와서 오늘 아침까지 무려 12시간을 잤다. 쌓이는 건 신경질과 무력감과 코를 푼 휴지 무더기.
다행히 최악은 아니다. 최악이라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를 파괴하고 싶을 만큼 좌절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덕택에 인간의 이성이 이토록 나약한 것이었던가를 깨닫기는 했지만. 오늘은 병원에 가봐야겠다. 코를 풀 때마다, 재채기할 때마다 한 꺼풀씩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날것의 내가 나타나면…. 흠, 브루스 배너도 알레르기 비염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