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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우주 - 인간 삶의 깊은 곳에 관여하는 물리학의 모든 것
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을 접목해 책을 쓴 경우가 많다. 막상 그런 책들을 읽으면 인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의아해 진다. 제목만 인문학...일 뿐 내용은 별로 상관이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명 인물들을 몇 몇 등장시켜놓았거나 들으면 흔히 알 법한 세계문학 작가들의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고 이 작품은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저자의 감상이 들어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인문학이니 어쩌니 호들갑인것 같다. 물리관련 서적인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서평을 쓰면서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인문학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인데 이런 책이 인문학의 탈을 쓴 과학서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닐 투룩이라는 작가의 이름부터 낯설었다. 책의 도입부엔 저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저자의 부모가 민주화 투쟁을 하느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여러나라를 전전한 끝에 영국에 망명해 과학 박사가 된 얘기가 나온다. 그런 이력때문일까 저자가 과학을 보는 시선엔 인간이 들어있었다.
물리학을 다룬 교양 서적들이 그러하듯 책은 물리학이 걸어온 자취를 더듬는다. 인간의 이성이 꽃 피웠던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대를 지나 중세의 쉬어가기 시대. 중세를 일깨운 르네상스와 연이어 찾아온 과학혁명. 산업화를 지나 문명의 발달은 가속화 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 과학의 세계에 혁명이 찾아오고 하이젠 베르크를 필두로한 양자역학의 시대가 된 오늘날. 우주의 기원을 밝히려는 시도는 대통합이론이니 끈이론이니 여러 복잡한 이론을 탄생시키며 끊임없이 우주 머나먼 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그런 흔한 애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내용들이 특별하게 여겨지는건 저자가 갖고있는 인류에 대한 순수함과 따뜻함이다.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그런 전환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의 삶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지 저자는 고민하며 의견을 들려준다. 한마디 한마디 저자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쉽게 알려주기 위해 고민한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의 dna에 수록된 유전정보는 디지털에 가까운 방식으로 저장된다고 한다. 4개의 문자로 표현되는 조합의 방식으로 각 종의 유전정보가 결합되어 후대로 이어지는데 이런 방식은 디지털과 가깝고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한편 이런 유전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에 가깝다고 한다. 세포마다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외의 부분들은 영양활동과 자기 복제등 유기체의 존속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데 이런 활동이 아날로그적이라 저자는 말한다. 세계는 점점 디지털화 되면서 분절되는데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활동은 디지털 뿐만이 아닌 아날로그에도 기반을 두고 있으니 인간적인 면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한다. 신선한 해석이었다. 유전자에 대해 다룬 이야기들은 대개 진화와 연결된다. 현재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진화적 측면에서 수십만년 전부터 이어져 온 생존전략일 뿐이라는 해석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에 대한 측면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본 해석은 독특했다. 책의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물리학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들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책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