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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페우스의 영역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수현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모르페우스 그리스어로 ‘형태’ 또는 ‘모양’을 뜻하는 ‘모르파이(morphai)’에서 파생한 말로 ‘모양을 빚는 자’라는 뜻이다. 잠의 신 힙노스와 카리스의 하나인 파시테아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신 닉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이켈로스(또는 포베토르)와 판타소스의 형제이다. (출처:두산백과)

눈뜬 순간, 내가 알던 세계는 사라졌다. 인공 동면 문제를 정면에서 파헤친 화제의 메디컬 드라마. 은색 관 안에서 5년의 잠에 빠진 소년, 잠에서 깬 그의 눈앞에 펼쳐질 풍경은? 이라며 대담하게 독자를 끌어당기는 책을 만났다. 처음엔 이 묵직하면서도 오싹한 주제를 보면서 공포물인 줄 알았다. 한여름에 만난 책이었으니까. '콜드 슬립'을 읽으면서도 '블라인드'를 생각했으니 당연히 공포물로 생각을 했었고, 책장을 몇 장 펼친 후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에 <데몰리션 맨>이 떠올랐었다. 1960년대에 살던 경찰이 냉동감옥에 있다가 2032년에 깨어난다는 이야기였었는데,1993년도 작품이었으니 먼 미래에 일이라고 생각했었은데, 그 먼미래의 일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되어 수면위로 나오고 있다.
현재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5년간의 완전한 잠을 보장하는 '콜드 슬립.' 안구에 생긴 이상을 5년 뒤 치료하기 위해 잠든 소년, 사사키 아쓰시와 소년이 동면하는 동안 소년을 돌보던 센터 직원 히비노 료코에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아이는 누워있고, 그아이를 위해서 료코는 매일 매일 새로운 정보를 CD로 틀어준다. <데몰리션 맨>을 보면 인간의 기억을 바꾸는 부분이 나온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도 동면상태에서 기억 조작으로 알게 만드는 부분이었는데, 실현 가능성을 알지 못하지만, 료코는 그녀가 모르페우스라고 부르는 아이, 사사키에게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하루 하루를 아이와 함꼐 한다.
사키는 어떻게 모르페우스가 되었을까? '히프노스 사의 사명은 여러분을 눈뜨고 싶은 시대로 모시는 것입니다. 영원히 동면하고 싶은 분께는 상조 회사 주소를. 다시 일어나고 싶은 분께는 회프노스 사 전화번호를'(p.33) 이라는 대담한 광고 문구는 최장 5년의 동면 실시법이라는 한시법과 함께 존재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4학년, 아홉 살에 사사키 아쓰이는 콜드 슬립 외에는 눈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시행 초기에 최초로 콜드 슬립을 원했던 아이. 아이의 의견과 부모의 의견이 일치되어 '콜드 슬립'이라는 모르페우스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대사관 이발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을 외국에서 홀로 보냈던 료코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대사관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료코는 많은 언어들을 익히고 기본적인 의료기술까지 익혔음에도 료코는 자신감을 잃은 채, 수면아래로 숨어 들으려고만 한다.
면 실시법에 2항, 동면 중에는 동면 선택자의 참정권, 시민권을 정지한다. 살아있는 생명이면서도 생명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모르페우스. 이제 모르페우스를 걱정하는 인물은 료코뿐이다. 사사키가 잠이 든 5년 동안 아이의 부모는 이혼을 하고, 아이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해 버린 상태. 아이가 눈을 뜰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 함께 한 5년. 이제 모르페우스는 료코에게 그냥 그런 지나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료코에 모든것이 되어 버린 아이. 이 아이가 눈을 뜨면 이 아이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영화가 현실이 되어가듯이 언젠간 '콜드 슬립'이 현실이 될 시대가 올 것이다. 이때 나오는 문제들, 저자가 이야기 하고있는 '동면하는 동안의 인간 - 즉, 사고가 정지된 상태의- 의 시민권은 정지되어야 하는가? 동면 전과 동면 후, 인간의 삶은 연속체로 이해해야 하는가? 동면이라는 희귀한 의료 케이스에 대한 의학적 자료 공개는 어디까지가 인권 침해인가?' '삶의 연속성'이라는 문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레티노사우르스에게 두 눈을 잃기 싫어서 '콜드 슬립'을 원했던 아이는 5년 후 세상이 똑같이 이어질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의 부재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5년에 시간동안 아이가 커가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니까. 9살이 14살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아이니까.
1994년에 만들어 졌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은 B급 영화의 고전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싸구려 장르 소설을 펄프 픽션이라고 칭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책은 민음사에서 장르 불명, 규정 불가, 순수 100%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내새우면서 B급 소설의 부활을 외치면서 만든어낸 <펄드>에서 야심차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요즘 흔하게 접하게 되는 책들과는 다르다. 책 날개가 없는 표지, 양장본을 과감하게 엎어버리고 중저가 본문용지를 사용해서 7800~8800원대의 가벼운 책을 보여주고 있다. 책 값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책도 가볍다. 아이들 책보다도 아담한 사이즈의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읽어봐~ 후회하지 않을꺼야. 재밌거든.'을 외치는 것 같은 그런 책이다.
모르페우스를 사랑하는 료코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읽어 봐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야 표지속 얼음 속에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남녀간에 사랑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정이 사랑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현대 과학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삶의 연속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모르페우스의 영역>. 이번에 읽었던 <펄프>에 다른 책들보다는 가독성이 조금은 떨어졌지만, '콜드 슬립'에 대해서 확실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책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