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공부 - 치매 어머니와 시장터에서 느리게 살기
이동현 지음 / 필로소픽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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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외할머니는 그 많은 자식들을 두고 막내딸네 집으로 오셨다.  친가의 조부모님이 안계셨기에 문제 될것도 없었지만, 살아생전 시부모님께 하셨던 어머니의 극진함에 아버지는 당연히 외할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셨단다.  일흔이 갓 넘어 오신 외 할머니는 그렇게 십수년을 막내딸과 함께 지내셨다. 여든여덟에 할머니가 소천하시기 몇달전에 치매가 찾아온것을 알았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큰 아이를 가졌을 그 무렵 할머니는 매일 가스를 켜고, 껍질째 은행을 드시고, 사발가득 커피를 타서 드셨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문고리에 열쇠를 거는 거였다.  그날 내가 본 열쇠를 달면서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후, 할머니는 소천 하셨다.  그날...그날... 열쇠를 달기위해 문에 경첩을 다셨던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 두고 후회하신다.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머니 공부』는 그런 책이다.  아이들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어머니를 오로지 어머니로 보기 위해 하는 공부가 어머니 공부다.  치매가 찾아온 어머니를 알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하고 그것을 '어머니 공부'라 명명하고 있는 작가. 그와 그의 사랑하는 연인, 어머니의 이야기. 『어머니 공부』. “어머니가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생전 처음 잊어버렸다.”(p.82)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시던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을 잊어버리시면서 평생 해오던 빨래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밥 짓는 법도 잊어버리고, 어머니가 화장실을 넘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똥을 흘리셨단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단다. 이제 아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결혼도 하지 않고 중년이 되어버린 아들은 어머니가 할머니를 봉양한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어머니 노후를 돌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사물도 아닌 말벗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2008년 11월부터 어머니와 매일 출퇴근하고 늘 함께 이동했으니까 치매 노인의 순 이동거리만도 7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  어머니의 이 일상적인 7만 킬로미터 주행거리를 나는 ‘간병’으로 간주한다. 이 주행거리가 10만 킬로미터를 넘어 20만 킬로미터가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p.96)  24시간 어머니의 전속 기사가되었다. 아들은 이야기 한다. '살아오면서 그나마 제일 잘한 일이 늦게 배운 운전이다.'(p.197) 라고 말이다.  처음 어머니의 대리 운전 기사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아들은 이렇게 오래 가리라 생각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하면 그 애틋함도 는다고 했던가.  이제 아들은 7만 킬로를 넘은 이동거리보다 더 먼 이동거리를 기원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정신적인 시간뿐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길어지길 바라고 있다.  아들의 말처럼 치매 환자에게 치매 판정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인간극장 '고마워요 엄마'편 캡쳐

 

 개인사업을 하는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출근을 한다. 어머니와 함께 출근을 한 사무실은 딱 어머니의 놀이터다.  만원짜리 지폐 헤아리기를 하시고, 퍼즐을 맞추시고, 변을 보시면 그걸 닦아드리는 놀이터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또 다시 어머니의 일과가 끝나면 아들은 어머니와 함꼐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의 일과로 어머니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일과에 맞춰서 아들이 움직이고 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이러이러한 것이 옳은 것이예요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에 맞게 아들은 움직이고 있다.  아들은 이야기한다.  한방과 양방을 병행해서 치매 증세는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일반 노인 수준에서 평안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와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간병하기에 따라 치매 환자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따라한다.  '무한 책임자식'이었다는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아들은 어미니 처럼 행동을 한다. “효는 자기계발로 독학으로 깨치는 것이라기보다 선대의 계보를 이어받는 것이다.”(p.21)

 

 16년간 하숙생들의 속옷에 이름을 새기면 빨래를 하셨다는 어머니.  아픈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를 20년간 번갈아 모셨던 어머니. 남편의 환갑날 풍으로 쓰러지셨음에도 끝끝내 일어나셨던 어머니. 혹시 자신이 아프면 요양원에 보내라며 아들에게 통장을 넘기던 어머니. 해정씨.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를 넘어서 연인이 되어있었다. <어머니 공부>의 연인이 TV 화면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인간극장 <고마워요, 엄마>를 통해서 동현씨와 해정씨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두 연인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버린다.  부모자식간의 사랑만큼 뜨겁고 변치않는 것이 있을까?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다 태어버리는 엄마. 그 엄마를 위해 자식은 자신을 태우고 있다.  당연하다 할지 모르지만, 읽는 이들은 알고 있다. 이것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끝나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에게 매일 전화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 지금, 늙은 노모와 함께 천천히 걷기를 하고 있는 이동현 작가는 그래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작가는 어머니가 끊임없이 자기성찰의 동기를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걸 아는 것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늙어가는 노모께 전화 한통 해야겠다. 건강하심에 감사드린다고..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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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밴던 어밴던 시리즈
멕 캐봇 지음, 이주혜 옮김 / 에르디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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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모른다.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유명한 작품인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앤 헤서웨이 주연의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원작자 멕 캐봇의 화제작이라고 <어벤던>이 소개 되어지는 걸 보니,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작품보다 전작이 훨씬 유명했나보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전작을 읽어본적이 없으니 이야기 하긴 힘들지만, 꽤나 달콤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성인, 청소년 분야에서 38주간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다고 하니 말이다.  그녀의 전작을 모르니 그이야기는 넘기련다.  이제 <어밴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스무살에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만났던 것이 <그리스 신화>였다.  원서로 만난 신화 이야기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었다.  인물들 이름이 어찌나 많이 나오고 하는 행동들은 상식을 벗어났지만, 죽어라 읽다보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게 읽었던 책이 아이를 낳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만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신화를 머리쥐어짜면서 읽었다니... 원통했지만, 덕분에 아이는 신화를 읽고 또 읽고 나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자세히 알고 있다.  신들의 세계, 특히 그리스 신들의 세계는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모른다.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와 곡물을 관장하는 땅의 여신 데메테르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페르세포네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제우스의 형제인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가 자신의 비를 삼겠다면서 페르세포네를 납치해갔다.  딸 바보 데메테르는 난리가 났고, 딸이 사라지는 순간 지상은 겨울이 되어버렸다.  곡물을 관장하는 데메테르의 파업. 방법을 찾던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주는 석류를 받는데, 석류3알을 먹어버린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먹은 만큼 지하세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페르세포네.  덕분에 페르세포네는 1년 중 3개월은 지하세계에서 살아야만 했고, 딸이 지하세계에서 사는 동안 또다시 데메테르의 파업으로 겨울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의 요지다.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와 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가 21세기에는 어떻게 바낄 수 있을까?  제목이 <어밴던, Abandon>이다.  버리다, 포기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어밴던.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것을 얻었을까?  '나는 죽은 적이 있다.'(p.6)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부 잭 올리비에라의 딸 올리비에라 피어스.  저체온증에 빠져 죽은 피어스가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피어스가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  죽음을 맞이한 후 사후세계에서 만난 존. 죽은 자의 영혼을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는 그 남자를 사후 세계에서 처음 만난 건 아니었다. 7살,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새를 살려주었던 존을 피어스는 열다섯에 사후세계에서 다시 만났다.  그가 함께 하자고 하는 말은 어둠고 음침한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말인줄로만 알았다.  그가 내민 목걸이는 너무나 예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지금, 모든 것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름다운 엄마와 석유회사를 갖고 있는 백만장자 아버지의 외동딸, 피어스는 사고 후 모범생이었던 것도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것도 모두 다 사라져 버렸고, 어디를 가든 피어스 주위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를 않았다. 그와 함께 피어스의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직감이었는지 목걸이의 힘이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말이다.  피어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해나의 죽음에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뮐러 선생님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피어스는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뮐러 선생님이 피어스 옆에 올때마다 그녀의 목거리가 검은색으로 변화는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해나의 죽음은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해나의 죽음을 밝혀내기 전에 피어스가 위험한 순간에 처하는 순간마다 존이 나타나서 그녀를 위협하는 모든것을 해결해 준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  누군가 그녀대신 뮐러 선생을 보석상 주인을 손을 봐줬는데, 사람들은 그녀만을 지목한다.  존이 어떻게 어디서 나타나는지는 알수 없지는 피어스에겐 존을 보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두개의 마음이 공존하기 시작한다.  

 

 어린시절 엄마가 살던 곳, 우에소스 섬으로 오면 해결이 되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곳이 피어스가 존을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는 것을 엄마는 몰랐으니까 말이다.  사촌인 알렉스와 함꼐 할수 있는 이곳은 그리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스는 다시 존을 만난다. 처음 존을 만났던 우에소스 묘지에서.  존에게 목걸이를 주면 좋아할거라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존은 화를 내면서 목걸이를 내버렸는지 피어스는 알수가 없었다. 아직 그녀는 열일곱 소녀니까. 묘지 지기 스미스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보석은 그리스의 사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주려고 캐낸 거라는 애기가 있어. 페르세포네를 분노의 신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p.196). 스미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목걸이의 전설. 하데스를 싫어하는 영혼들을 분노의 신이라 부르고, 분노의 신들은 하데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쓴다는 것. 하데스는 자신의 신부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목걸이를 줬다는 것이다.  존을 거부한 피어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페르세포네의 목걸이와 관련이 있을까?

 

 피어스처럼 존을 볼 수 있는 사람. 스미스 할아버지의 출현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의 살을 붙여준다. 피어스 스스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인간이었던 존이 사신이 될 수 밖에 없게 된 전설과, 우에소스 고등학교 행사에 나오는 '관의 밤'이 무엇인지 존이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스미스 할아버지는 너무나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주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주니 피어스는 이해를 할수 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가 말하는 분노의 신은 무엇이란 말일까?  분노의 신으로 부터 피어스를 지키기 위해 존이 준 목걸이.  중반부 이후로 넘어가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하이틴 로맨스에 어울릴 것 같은 삽화가 눈길을 끈다.  내 경우엔 책에서 만나는 이렇게 고운 삽화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고정시켜 주기 때문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곱지 않은가?  피어스도 존도 만화 주인공처럼 너무 곱게 그려져 있다.  몇장의 삽화 만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 지는 알수가 있다.  게다가 <어밴던>은 끝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페르세포네의 또 다른 이야기를 작가는 들려주려고 하고 있다.

2편인 <언더 월드>는 벌써 출간을 한 상태라고 하니,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마지막 편인 <어웨이큰> 역시 지필중이란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어버린 '분노의 신'이 누구인지는 책 말미에 나와있다.  피어스가 하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검은 색으로 변할 때마다, 다이아몬드는 피어스가 인지하기 전에 알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열일곱, 죽었다 살아난 소녀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산자와 죽은자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곳. 뼈의 섬이라는 우에소스 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피어스가 보았던 죽음의 그림자 속에 비쳐졌던 '흔들리는 머플러의 술' 처럼 모든 것은 하나씩 딱딱 떨어지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그리스 신화속 인물과 현실의 인물들은 그림 맞추기 처럼 이어져 있다.  제우스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피어스의 아빠 잭 올리비에라도, 땅을 권장하는 데메테르처럼 새들을 돌보는 데보라도 하나의 퍼즐조각 처럼 이야기를 맞춰 나간다.  이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통해서 알아내야 한다.  이야기는 던져졌고, 물속에서 흔들리던 머플러 술의 비밀은 밝혀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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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이야기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스티븐 영 지음,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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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렇게 많은 벌레에 감염되어 있는지 몰랐다.  어느 것 하나 빗나가는 것 없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것 처럼 무수히 많은 벌레가 나를 감염시켜 버리고 있었다니.  이건 어쩌면 음모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부터였는지도 알수 없는 그 시절부터 이런 녀석들이 존재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이 책은 내가 만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더 지독한 녀석들이 포진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첫장을 펼쳐서 끝장을 덮을 때까지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독서 중독을 일으키는 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전 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보게 되니, 이걸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니, 사실은 별로 치료하고 싶지 않다.

 

 

어떤 종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생명체. 무생물이라는 설도 있고, 매우 작아서 광학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단다.  사람이 이 벌레에 감염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로지 책에만 매달리는 증세를 보인다.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불가능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책벌레는 책을 갉아먹는 작은 해충인 좀벌레와 행동이나 생태가 전혀 다르고, 특히 중요한 점은 책벌레는 책을 사랑하여 절대 책을 먹어치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p.5

 

 2001년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슈나이더가 책벌레(bookworm)를 발견했단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책벌레라니... 마리우스의 발견으로 '마리우스 벌레'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발견자가 별다른 명예나 영광을 느끼지 못해서 '책벌레'라는 이름으로 학회에 보고되어 세계에 알려졌단다. 이 벌레의 발견은 책벌레가 인간에 미치는 희귀병인 '서적병'의 연구에 새로운 빛이 찾아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책을 읽는 것과 쓴느 것에 집착하는 기묘한 증후군은 문자의 발생과 함께 '서적병'이라는 이름으로 먼 예살부터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했단다.  책이 없는 장소에서의 생활이 곤란해지고, 현재까지도 완치가 불가능한 서적병.  고백하건데, 나도 '서적병'환자 중 한명이다.  물론,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은 건 아니다.   '서적병'에 걸린 사람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만저만 힘든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병을 전문적으로 진료를 해주는 의사도 없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책 <책벌레 이야기>에는 '서적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병에 원인과 치료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 한권이 다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는 책벌레의 종류는 257종이다. 계통수로 보자면 책벌레는 크게 읽기 벌레와 쓰기벌레로 나뉘어 진다. 양 갈래로 갈라진 계통은 소설벌레, 논픽션 벌레, 시벌레, 희곡벌레 등으로 갈라지면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종이나 왕복하는 존재도 확인되고 있는데, 각각이 동시에 다른 경향을 공유하며 융합하기도 한다.  계통수는 나무 전체가 하나의 의식이 있는 생명체처럼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시간이 지나면 계통수 자체가 다른 가지와 합류하기도 하고 가지 하나가 여러 개로 갈라지거나 갑자기 소멸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책벌레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진시황이 언론 통제의 목적으로 분서를 감행하고, 히틀러 또한 분서를 했다. 그 시대의 권력자는 격동의 시대를 선동한 것이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그 당시의 책벌레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여러가지 설들이 있긴 하지만, 아마, 그들이 역설적으로 책벌레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책벌레는 '분서'중에도 살아남았고, 변태와 의태를 반복하면서 살아남았다. 책벌레의 의태는 계통수의 다양함 만큼 변화 무쌍하단다. 책을 꽉 집을수 있는 손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책벌레인지조차 알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도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무생물인도 모른다면서 의태를 하고, 변화 무쌍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 잘 보이지도 않는 녀석들이 무지막지하게 감염을 시키고 있다.

 

 이 책속에서는 일반적인 인간은 인간(human)으로 표기를 한다. 인간이 책벌레에 감염된 경우에는 사람(HUMAN)이라고 표기해서 구별한다.  책벌레의 유일한 천적은 인간이지만, 책벨레에 감염된 '사람'은 적이 아니다.  감염되지 않은 '인간'만이 위협의 대상이란다.  '사람'은 모두 책이나 활자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더 많은 책을 찾아 분주히 뛰어다니고, '사람'의 시선은 책벌레를 육성하고 더 많은 책을 책벌레의 서식처로 만들어 버린다.  비감염자는 책 앞에서 떠나가고 서점에서 멀어지고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책벌레의 번식엔 책에게 보내는 '인간'의 뜨거운 시선이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감염자는 어떻게 돌봐야 할까?  손에 책이 없을때 안절 부절했던 경험들이 있다면 당신은 책벌레다.  물론 나 역시 그렇다.  지하철을 타고 휴대폰을 꺼내는 것보다 책을 읽는게 편하고, 가방속에 몇권에 책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읽을 책이 쌓여있음에도 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하루에 책 한권 읽는 것이 내겐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 리뷰를 쓴다.  이 모든것은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의 보통의 증상이다.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을 돌볼수 있는 방법은 책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감염자와의 대화도 가능하지만, 그 대화의 대부분도 책에 대한 것일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책이 뭐예요?' 나 '요즘 나오는 책중 어떤 책을 읽었니?'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던지면 감염자가 치유가 된단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 눈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때는 역시 책과 관련되는 경우다.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어떤 사람한테 책을 선물하려고 하는데,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많다. 그럴때는 심하게 반짝거린다.  책을 찾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계속책읽기벌레'를 시작으로 '중고책구입벌레'와도 함께 했었고, '도서관벌레'와 '장편읽기벌레''책꽂이벌레'에도 감염이 되었었던것 같다. 그뿐인가? '독서습관벌레'중에서는 책모서리접기증후군에 걸렸던 적도 있고, 밑줄긋기증후군과 포스트잇.책갈피 증후군에 걸린적도 있다. 지금은 '쓰기벌레'로 전이되어서 리뷰를 쓰지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어쩜 스티브잡스가 생전에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로 아이패드용 책벌레를 개발 탑재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건, 내 이성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책벌레'가 은연중에 조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책벌레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치료를 원하지는 않는다.  중증의 '책벌레'감염자에 치료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냥 돌봐만 주기 바란다.  하루에 한권씩 책을 주고, 저자와 책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하면 되니, 간병법으로는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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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앤의 꿈 일공일삼 78
캐더린 스터 지음, 마조리앤 와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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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간혹가다 일정시간 이상을 잘땐 꿈을 꾸기도 하지만 금새 잊어버린다.  보통은 잠잘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니, 꿈꿀시간 조차도 아깝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때는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나는 건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높은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키가 큰다고 하셨었다.  그러고 싶었었다.  그런데, 내 꿈은 높은곳에서 떨어질때마다 날개가 생겨 다시 날아오르는 꿈만 꿨었다.  꿈 덕분에 키가 작은 건지, 작아서 그런 꿈만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가능한 꿈은 별로 꿔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여러 차례 재탄생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영국 아동 문학의 고전이라는 환상적인 이야기, 『매리앤의 꿈』은 제목 처럼 매리앤이 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매리앤에게 열 살이 되는 생일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었다. 열 살이 되면 엄마, 아빠가 승마 수업을 받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손목시계와 마술 도구 상자, 새책과 승마 장갑을 선물로 받았으니 완벽한 날이 되어야 하는데, 정말 특별하게도 병명도 말해주지 않는 병에 걸려 버렸다.  생일날 심하게 앓기 시작한 그날 부터 매리앤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엄마의 마호가니 바느질 상자 속에서 발견한 연필은 대번에 좋은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짤막해도 쥐기 불편하지 않았고, 연필깎이가 아닌 칼로 깍여 있는 심이 부러지는 일 없이 또렷하고 진하게 잘 쓰일 것 같은 연필.  매리앤에 눈에 쏙 들어온 연필로 매리앤이 처음 한것은 울타리가 쳐져있고 창문이 네개 있는 휘청거리는 것 같은 집이었다. 그리고 그날 매리앤은 그 집앞에 있는 꿈을 꾸게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그 집앞에 소리없는 대답들이 매리앤에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집에 사람을 집어 넣어'(p.26) 매리앤도 들어가지 못하는 집에 어떻게 사람을 집어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매리앤은 집안으로 꼭 들어갸야만 할것 같았다.  침대에만 누워있는 매리앤에게 가정교사 선생님이 생기셨다. 동화책을 보고 상상하던 가정교사가 아닌 젊고 예쁜 선생님.  난생처음 만난 가정교사 선생님에겐 알고 싶은게 많았다.  매리앤 말고 또 누구를 가르치는지, 그 애들은 어떤 애들인지 말이다. 여섯 자매 이야기도, 열세살된 이블린 이야기도 몸의 일부가 마비되어 심한 병을 앓고 있다는 마크의 이야기도.  마크는 매리앤과 정반대의 아이같았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하기 싫어하는 마크와 얌전히 누워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싫어하는 매리앤.  둘을 섞을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다. 

 

 바느질 상자에서 발견한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면 매리앤은 꼭 꿈을 꾸었다.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매리앤이 창가에 아이를 그려넣었던 날, 꿈속에선 창가에 아이가 있었다.  계단이 없어서 내려갈 수가 없다는 아이.  계단을 그려넣은 날, 매리앤은 드디어 아이를 만날 수 있었지만, 아이는 걸을 수가 없단다. 항상 창가에 앉아 있는 아이.  매리앤이 그 아이가 마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아이를 보자 마자 마크라는 것을 알았다.  왜 마크가 매리앤의 꿈에 나오는 걸까?  꿈속에서 매리앤을 만난 후 현실 세계의 마크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매리앤이 좋아하는 체스터필드 선생님의 관심이 마크에게 쏠리는 것이 매리앤은 싫었다.  꿈속에 있는 마크는 매리앤이 힘들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매리앤이 그린 그림이 마크를 힘들게 할 지는 몰랐다. 아직 매리앤은 10살 밖에 안된 아이니까 말이다.  꿈속에서 만난 마크.  마크가 미워서 그려넣은 눈달린 바위들이 마크를 위험에 빠지게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매리앤은 마크를 돕고 싶었고, 이제 마크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크가 원하는 침대와 책을 그려놓고, 일층 작은방에 자전거도 그려놓고, 달걀과 통닭도 그려놓고, 매리앤이 할수있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매리앤이 그려놓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눈달린 바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집주변으로 몰려든다. 이제 매리앤은 마크와 함께 이 집을 빠져나와야만 한다. 움직이기 힘든 마크가 자전거를 탈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마크와 함께 멀리 있는 등대넘어 바다로 나가야만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작년에 아이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던 책이 있었다.  마법처러 글이 쓰여지는 연필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빨강연필>.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연필하나>나 <요술 연필, 페니>처럼 연필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부담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필이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갑작스런 병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하는 매리앤에게 연필은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를 만들어 준다. 자신이 그린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꿈속에서 보고, 꿈속에 그려넣은 남자아이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매리앤.  어느 순간 꿈과 현실이 동일한 무게로 매리앤에게 다가오면서 매리앤은 꿈과 현실 모두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 제목처럼 <매리앤의 꿈>은 꿈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꿈은 마크와 매리앤이 그림 속 집을 빠져나와 등대로 간 후 일방적으로 'to be continued'로 끝내버리질 않는다.  그 곳이 끝이 아니라, 등대는 새로운 출발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매리앤이 마크에게 건낸 연필. 떠나 버렸을 것 같은 마크가 그린 헬리콥터.  마크가 매리앤보다 그림을 잘 그려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험난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것은 이 아이들 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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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 - 세계인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전하는 희망의 초대장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4
류태형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한동안 음악에 목말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음악을 모른다. 피아노를 칠줄도 모르고 흔한 악기하나 다룰줄도 모른다.  그래도 듣는건 좋아한다.  어쩌다 공연 사이트 스탭을 맡을 기회가 되어서 작년까지 아이들과 한달에 한번은 세종문화회관으로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었다.  초등학생인 딸아이와 음악회에서 플룻을 보았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구별하기 시작하고,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페이지터너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굉장히 비싼 자장가를 듣는 느낌으로 갔던 공연장이 어느 순간부터 감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 감동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가끔 책상에 앉아 공연장에서 듣던 음악을 다시 들을때 먹먹해오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음도 구별하지 못하는 내게 음악은 책읽을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친구 정도 였던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야 어려서 부터 피아노가 기본처럼 따라붙으니, 아이는 나보다 훨씬 많은 음악을 알고 있다.  작곡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명진 출판의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가 벌써 열 네번째 나왔다. 처음 표지를 봤을때는 롤모델 시리즈라고 생각도 못했다.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보다 세련된맛이 있었고 노란 띠지가 어른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었다.  표지 속 환희에 찬 표정으로 지휘를 하고 있는 사람는 지휘자 정.명.훈.이다.  마에스트로 명훈 정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건 극히 일부분이다.  가족들이 모두 음악가이며, 열성적인 어머니가 그 어려운 시기에 자녀들에게 음악을 배우게 했고 음악가인 자녀들이 모두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그가 서울시향을 맡고 있다는 정도였다.  어쨌든, 세계적이라는 그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것이 아닌, 조금 더 깊이 마에스트로 명.훈. 정을 알고 싶었다.

 

 책을 펼치고 마음을 잡아 당겼던 것은 처음엔 정명훈이 아니었다. '레코드판 속에 들어 있는 해설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이 주는 느낌을 어쩜 그리도 절묘하게 묘사했는지 그 글들을 읽으면서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p.5) 정명훈이 지휘하는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을 들으며 썼다는 류태형 편집자의 프롤로그였다.  음악을 이렇게 듣는 사람들.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인터뷰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는 지휘자 정명훈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를 쓴 류태형 편집자의 집념도 대단했고, 그를 통해서 듣는 정명훈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이야기들 듣고 싶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성공비결?  류태형 편집자는 첫 번째는 음악가로서의 한결같은 직업의식, 두 번째는 유연한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책은 그의 성공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매일 아침 악보를 검토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해석을 하는 남자. 피아니스트와 다른 길을 가고 있음에도 솜씨가 전혀 녹슬지 않은 남자. 꾸준함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천부적인 재능에 꾸준함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두번째로 이야기하는 리더십은 '나는 끌고 가는 지휘보다 따라가는 지휘가 좋다'라고 하는 그의 말에 모든것이 포함되어 있다. 단원들을 존중하고 설득하고 이해시켜 참여형 리더십을 구현하는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스승에 대한 경의를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다.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어린시절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음악의 비밀을 찾아서>와 마에스트로 명.훈. 정으로 살아온 그의 생활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음악의 비밀을 알아낸 마에스트로>로 나뉘어져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첫번째 파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당연히 부모님과 가족들에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신여성이었던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이야기 중에서 피란길에 피아노를 싣고 갔다는 이야기는 극성 엄마의 수준을 넘어서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일곱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찾아내고, 철저하게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어머니가 몇명이나 될까?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었을까?  그녀에 아이들에게 한국땅이 좁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도, 그 시절 아이들의 유학길을 알아보고, 아이들을 위해 세계 박람회에 한국식당인력으로 지원을 하고 미국으로 함께 간 사람도 어머니. 이원숙 여사였다.  당시의 배화여고를 나온 잘나가는 신여성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어머니의 믿음과 아낌없는 사랑은 아이들을 엊나감이 없이 자라게 한것 처럼 보인다. 책을 통해서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는 알수가 없다. 흔한 사춘기도 없이 자란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알수가 없다. 일곱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는 형제들 모두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었다. 21살에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의 길을 택한 정명훈.  그의 이야기는 두번째 파트로 넘어가면서 바스티유 오페라 감독을 시작으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등 동양인이 진출하기 어려운 자리에 당당히 세계인의 앞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자리에서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단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는 모습을 말이다.

 

 정씨 남매들 이야기야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이렇게 유명한지는 책을 읽기 전까지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프레미오 아비아티 상,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 브루노 발터 상,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 프랑스 ‘올해의 아티스트 상’, 제1회 대원음악상 대상,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한국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고,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인물이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객원지휘자라는 수식어구가 붙어도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세계 음악계의 보석 같은 존재라는 명.훈. 정을 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 한다. "클래식은 한평생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p.289).라고 말이다. 클래식을 통해서 인간으로 음악인으로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마에스트로 명.훈. 정.  어느 러브스토리 못지않은 그의 사랑이야기도, 그가 지휘자에 길로 가는 여정도 드라마 같은 그의 인생과 음악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지만, 그것 보다 좋았던 것은, 책의 제목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의 열정이었다. 매운 고추처럼 화끈한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는 그 모습. 내가 결코 알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  이제 그가 펼치는 이야기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닐것이다.  그가 발을 딛고 손짓을 하는 모든것에 대한민국이 따라 다닐 것이고, 그로 인해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그리는 아이들이 더 많이 그와 같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나는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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