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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이야기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스티븐 영 지음,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이렇게 많은 벌레에 감염되어 있는지 몰랐다. 어느 것 하나 빗나가는 것 없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것 처럼 무수히 많은 벌레가 나를 감염시켜 버리고 있었다니. 이건 어쩌면 음모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부터였는지도 알수 없는 그 시절부터 이런 녀석들이 존재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이 책은 내가 만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더 지독한 녀석들이 포진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첫장을 펼쳐서 끝장을 덮을 때까지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독서 중독을 일으키는 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전 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보게 되니, 이걸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니, 사실은 별로 치료하고 싶지 않다.

어떤 종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생명체. 무생물이라는 설도 있고, 매우 작아서 광학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단다. 사람이 이 벌레에 감염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로지 책에만 매달리는 증세를 보인다.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불가능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책벌레는 책을 갉아먹는 작은 해충인 좀벌레와 행동이나 생태가 전혀 다르고, 특히 중요한 점은 책벌레는 책을 사랑하여 절대 책을 먹어치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p.5
2001년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슈나이더가 책벌레(bookworm)를 발견했단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책벌레라니... 마리우스의 발견으로 '마리우스 벌레'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발견자가 별다른 명예나 영광을 느끼지 못해서 '책벌레'라는 이름으로 학회에 보고되어 세계에 알려졌단다. 이 벌레의 발견은 책벌레가 인간에 미치는 희귀병인 '서적병'의 연구에 새로운 빛이 찾아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책을 읽는 것과 쓴느 것에 집착하는 기묘한 증후군은 문자의 발생과 함께 '서적병'이라는 이름으로 먼 예살부터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했단다. 책이 없는 장소에서의 생활이 곤란해지고, 현재까지도 완치가 불가능한 서적병. 고백하건데, 나도 '서적병'환자 중 한명이다. 물론,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은 건 아니다. '서적병'에 걸린 사람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만저만 힘든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병을 전문적으로 진료를 해주는 의사도 없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책 <책벌레 이야기>에는 '서적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병에 원인과 치료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 한권이 다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는 책벌레의 종류는 257종이다. 계통수로 보자면 책벌레는 크게 읽기 벌레와 쓰기벌레로 나뉘어 진다. 양 갈래로 갈라진 계통은 소설벌레, 논픽션 벌레, 시벌레, 희곡벌레 등으로 갈라지면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종이나 왕복하는 존재도 확인되고 있는데, 각각이 동시에 다른 경향을 공유하며 융합하기도 한다. 계통수는 나무 전체가 하나의 의식이 있는 생명체처럼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시간이 지나면 계통수 자체가 다른 가지와 합류하기도 하고 가지 하나가 여러 개로 갈라지거나 갑자기 소멸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책벌레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진시황이 언론 통제의 목적으로 분서를 감행하고, 히틀러 또한 분서를 했다. 그 시대의 권력자는 격동의 시대를 선동한 것이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그 당시의 책벌레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여러가지 설들이 있긴 하지만, 아마, 그들이 역설적으로 책벌레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책벌레는 '분서'중에도 살아남았고, 변태와 의태를 반복하면서 살아남았다. 책벌레의 의태는 계통수의 다양함 만큼 변화 무쌍하단다. 책을 꽉 집을수 있는 손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책벌레인지조차 알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도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무생물인도 모른다면서 의태를 하고, 변화 무쌍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 잘 보이지도 않는 녀석들이 무지막지하게 감염을 시키고 있다.
이 책속에서는 일반적인 인간은 인간(human)으로 표기를 한다. 인간이 책벌레에 감염된 경우에는 사람(HUMAN)이라고 표기해서 구별한다. 책벌레의 유일한 천적은 인간이지만, 책벨레에 감염된 '사람'은 적이 아니다. 감염되지 않은 '인간'만이 위협의 대상이란다. '사람'은 모두 책이나 활자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더 많은 책을 찾아 분주히 뛰어다니고, '사람'의 시선은 책벌레를 육성하고 더 많은 책을 책벌레의 서식처로 만들어 버린다. 비감염자는 책 앞에서 떠나가고 서점에서 멀어지고 도서관에도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책벌레의 번식엔 책에게 보내는 '인간'의 뜨거운 시선이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감염자는 어떻게 돌봐야 할까? 손에 책이 없을때 안절 부절했던 경험들이 있다면 당신은 책벌레다. 물론 나 역시 그렇다. 지하철을 타고 휴대폰을 꺼내는 것보다 책을 읽는게 편하고, 가방속에 몇권에 책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읽을 책이 쌓여있음에도 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하루에 책 한권 읽는 것이 내겐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 리뷰를 쓴다. 이 모든것은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의 보통의 증상이다.
책벌레에 감염된 사람들을 돌볼수 있는 방법은 책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감염자와의 대화도 가능하지만, 그 대화의 대부분도 책에 대한 것일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책이 뭐예요?' 나 '요즘 나오는 책중 어떤 책을 읽었니?'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던지면 감염자가 치유가 된단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 눈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때는 역시 책과 관련되는 경우다.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어떤 사람한테 책을 선물하려고 하는데,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많다. 그럴때는 심하게 반짝거린다. 책을 찾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계속책읽기벌레'를 시작으로 '중고책구입벌레'와도 함께 했었고, '도서관벌레'와 '장편읽기벌레''책꽂이벌레'에도 감염이 되었었던것 같다. 그뿐인가? '독서습관벌레'중에서는 책모서리접기증후군에 걸렸던 적도 있고, 밑줄긋기증후군과 포스트잇.책갈피 증후군에 걸린적도 있다. 지금은 '쓰기벌레'로 전이되어서 리뷰를 쓰지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어쩜 스티브잡스가 생전에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로 아이패드용 책벌레를 개발 탑재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건, 내 이성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책벌레'가 은연중에 조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책벌레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치료를 원하지는 않는다. 중증의 '책벌레'감염자에 치료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냥 돌봐만 주기 바란다. 하루에 한권씩 책을 주고, 저자와 책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하면 되니, 간병법으로는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