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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남자들이 흔하게 입는 잠옷이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정도에 큰 글씨로 'BED'라는 글씨에 볼트를 가해서 굵게 표시되어 있다. 침대에 관한 이야기는 꽤나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와 배명훈 작가가 쓴 <안녕, 인공존재>속 '마리오의 침대'가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에로틱한 공간이고, 또 다른 면으로 보면 가장 편안한 공간이 '침대'이니까 말이다. 책 표지만 스치듯 보고는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나지 않았었는데, 이 책이 계속 인터넷 책방 사이트에 상단을 차지하는 걸 보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렇듯 많은 이들이 읽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집어 들었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가 7483일을 가리키던 날의 아침이다.' (p.9)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 같은 소리를 내고 자는 형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세문단을 넘어서자 마자 숨죽이게 만들어 버린다. '형의 체중은 어림잡아 630킬로그램쯤 된다고 한다. 1톤의 절반이 넘으니 정말이지 엄청난 무게다.'라고 말이다. 어마어마한 거구의 형, 그리고 전자시계가 가리키는 7483일. 일수로만도 어마어마하지만 년수로만 따져봐도 20년이 넘는 세월이다. 동생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긴 세월 함께 한 형에 대해서..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네가 맬컴의 동생이지?"라고 불리던 '나'는 평범하지 않은 소년, 맬컴의 동생이다. 맬컴은 주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 뭐든 최초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지붕 위에 알몸으로 올라가 안테나만 잡고 서 있거나, 어디서든 거침없이 옷을 벗어 버린다. 가족들은 맬컴 때문에 한 번도 제대로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공항에서도 옷을 벗고 기어다니는 바람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독특한 형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엄마는 늘 주의가 필요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맬컴을 싸고도느라 바빴고, 아빠는 오래 전 광산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족과 점점 멀어지기가 했다. 요상한 행동을 일삼는 형을 '나'는 어린시절엔 동경에 마지 않았다. 잘생긴 외모에 공부도 잘했고, 자신의 첫사랑 '루'가 형에 여자친구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관계때문인지 '나'는 형을 미워하면서도 형과 '루'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면, 굳이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p.182,183)
평범을 두려워하던 맬컴은 나이가 들수록 평범해지고 남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워, 직장을 다니고 루와 동거를 하면서도 삶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루가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를 떠나고, 스물다섯 번째 생일 다음 날 잔뜩 취해 침대로 들어간 후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가족들이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지만 그는 그곳에 드러누워 먹고 자는 생활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저 몇일간에 투정이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1년이 지나고 아빠가 벽에 전자시계를 걸어두면서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엄마는 온종일 맬컴의 수발을 들고, 아빠는 그런 엄마와 싸우다 다락방에 틀어박힌다. 침대에 누워 엄청나게 먹어 대기만 하던 맬컴은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남자가 되었고, 그가 누워있는 침대가 몸무게와 함께 커져가면서 그들의 집을 잠식해 버린다.
단 일 년 만에 가족의 삶은 놀랄 만큼 바뀌어 버렸다. 맬컴은 가족의 태양이 되었고, 그 궤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따라가야 하는 고리는 점점 더 안으로 당겨져 태양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리면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맬컴. 600kg이 넘는 사람이 흔한건 아니니 말이다. 맬컴의 주위를 멤도는 인물엔 '루'도 포함이 되어있다. '루'를 사랑하는 '나'에겐 그건 고문이었을 것이다. 분명 이대로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그래도 언젠간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십오년을 넘어서면서 맬컴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것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부모를 제외한 '루'와 '나'는 맬컴 가족에게 콘테이너박스를 보낸 노마 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맬컴이 있는 곳은. 하지만, 그들은 돌아와야만 했다.
형이 죽어야만 가족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고 '나'는 이야기를 하지만, 작가의 지문처럼 맬컴은 가족에 태양이었다. 그리고 그에 가족은 태양계를 도는 행성들이었다. 태양이 없이 행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긴 세월이었기에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이야기. <침대(BED)>는 우리가 해외 토픽으로나 만날 수 있던 인물을 바로 옆에서 만난 것 처럼 보여주고 있다. 가족들에 삶과 600kg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사는 이야기. 노마 비나 맬컴으 어머니가 쏟는 사랑은 우리가 보기엔 '독'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사랑이다. 마흔이 넘은 자식을 위해 지붕을 떼어내고 벽을 허무는 아버지에게선 빛이 난다고 작가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루'와 '나'사이에 있는 사내아이로 엔딩을 잡고 있다. 맬컴이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맬컴에 말처럼 '사랑'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는것 같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지만, 이해가 안되도 사랑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형이 우리 가족을 망가뜨렸어." " 아니야. 내가 구원한 거야." ..."나는 엄마에게 누군가를 이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 있게 한거야"... "아버지에겐 새로운 사진을 드렸군." " 그리고 너에게는 루를 줬어." (p.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