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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평점 :
더글라스 케네디를 이야기하면 항상 '<빅 픽처>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 만큼 <빅 픽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런 이들 중 한명이다. <빅 픽처>를 읽고 한 동안 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더글라스 케네디의 또 다른 이야기 『템테이션』은 『빅 픽처』를 잊을 만큼 매혹 적인 이야기다. 『빅 픽처』만큼 스릴이 있고 반전이 강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템테이션』은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나 통속적이지만 그러기에 빠져드는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무려 10년동안 무명 작가 생활을 했던 데이비드 아미티지. 아내 루시와 딸 케이틀린과 함께 힘들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데이비드는 여전히 작가로의 꿈을 잊지 않고 있다. 어느날 그 앞에 찾아온 도약의 말판. FRT방송국에 보낸 시나리오가 채택되면서 그의 작품이 시트콤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던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손짓하기 시작하고, 갑자기 이룬 성공은 데이비드에게 쉴세없이 유혹의 눈길과 손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가난하게 살다가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던가? 눈덩이처럼 굴러들어오는 명성과 돈은 자신의 모든것이라 여겼던 가족마저도 등한시 하게 만들고, 아내보다 매력적인 방송사의 여인 샐리 버밍엄의 유혹은 떨쳐낼 수가 없다.
10년을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면 맘껏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자신만 그렇게 산것이 아닌데, 데이비드의 능력이 발휘될때까지 기다려 준 이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것은 눈을 가려버린 허상과 욕심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나리오가 <셀링유>라는 공전의 히트작으로 만들어 지고, 샐리 버밍엄과 함께 헐리웃의 셀러브리티로 명성을 높이면서 그에 곁엔 투자가 바비 바라가 다가오고, 수백만장자라는 필립 플렉이 자신의 글을 손 봐달라는 요청을 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에 가시처럼 케이틀린이 걱정되긴 하지만, 돈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어디있을까? 돈의 맛을 본 데이비드에게 모든 것은 돈으로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러기에 돈으로 자신을 부르는 플렉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행운이 한순간에 찾아 오듯이 몰락의 순간도 너무나 쉽게 찾아왔다. 분명 자신이 쓴 글인데, 그가 쓴 <셀링유>의 시나리오가 표절시비에 말려들면서 그를 점점 나락으로 몰아놓기 시작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전이 표절로 둔갑하고 하나를 해결하면 더 큰 산이 데이비드의 앞을 가로막는다. FRT에서 계약 해지를 선언하면서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계약이 오가던 워너 브라더스와 FRT는 위약금을 이야기하고 표절을 이야기했던 테오 맥콜은 어디서 찾아냈는지 그의 모든 작품에 표절의 올가미를 씌우기 시작한다. 한순간의 놓쳐버린 이성은 설상가상으로 루시에게서 케이틀린의 면접권까지 박탈당하게 되어 버리고, 이제 그는 어디에도 기댈곳 조차 없어져 버렸다.
"야, 이 새끼야. 나는 투명하게 했어. 까놓고 따져 볼까? 네놈이 다른 작가 대사를 훔쳐다 쓰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쫓겨났잖아. 안 그랬으면... 내가 왜 전화해? 나도 낙오자는 상대 안 해." (p.331)
"데이비드, 다시 말할게. '잊고 있던 일만 달러가 있었어.' 알아들었어?" (p.435)
자신에게 투자를 해달라고 그렇게 아양을 떨던 바비 바라가 그에게 한 행동만으로도 세상사는 알 수가 있다. 오직 자신의 에이전시인 앨리슨밖에 믿을 곳이 없다. 1993년에 쓴 <세 불평꾼>이 플렉의 이름으로 <영화 텔레비전 작가 협회>에 등록이 되었단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그가 쓴 모든 작품이 필립 플렉의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다. 어디에도 그가 쓴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플렉이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플렉의 아내 마사. 사랑은 외롭고 힘들때 찾아오는지 에밀리 디킨스를 논할 수 있는 마사는 그에게 천군만마보다도 듬직하게 다가오고, 그녀를 통해 플렉이 데이비드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니, 그전에도 알수 있었다. 처음엔 가족을 등진 데이비드의 몰락을 바라지만, 위기와 몰락이 쓰나미처럼 덮쳐버린 데이비드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가해지면서 책을 읽는 독자는 어느새 데이비드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억만장자인 필립 플렉에게 맞서게 된다. 어느 누구도 데이비드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가정을 버리라고, 플렉의 섬에 가라고, 글을 쓰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모든것은 데이비드 스스로가 초래한 일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잊혀져 버린다. 단순하게 플렉에게 데이비드가 조롱당하고 말도 안되는 시험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지금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요? 당신이 모든 일을 꾸며서 나를...." " 아니죠. 댁이 스스로 초래한 일이죠." (p.426) 필립 플렉과 데이비드 아미티지의 대화처럼 말이다. 8백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영화,텔레비전 작가 협회를 매수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필립 플렉. 이야기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다시 그에게 등을 돌렸던 이들이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다. 알 수 없다. 그가 다시 그들과 손을 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가졌던 모든것을 잃은 후 그의 삶은 가족 조차도 없이 최저생활을 했지만, 그걸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그는 헐리우드에 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불가능한 질문들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모든 게 헛되다는 생각도 잊자.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상상하지도 말자. 과거를 짊어지자. 달리 어쩌겠는가? 치료약은 하나뿐이다. 다시 일에 열중하자.' (p.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