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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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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권을 이렇게 오랜 시간 읽은적이 있었던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감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뷰를 쓰려하니 써지지 않아 몇일을 이러고 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의도는 작가의 글을 통해 이미 읽었음에도 내 평범한 범주안에 그들의 '덩.어.리'된 이야기를 풀어낼 수가 없다.  『은교』속 사랑이 그렇게 다가왔었고, 『소금』속 사랑도 그렇게 다가왔건만,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있는 『소소한 풍경』의 사랑은 또 다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괴기스럽다 여겼던 책표지가 끝장을 넘기면서 분명 이해가 되었다 생각을 했지만, 그 역시 머릿속 이해일 뿐 그들에게 완전히 녹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영영 그들의 '덩.어.리'로서의 표현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p.11)라는 강한 문장으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과거의 데스마스크야 기록과 그리움의 차원이었지만, 현대의 데스마스크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뿐인가?  재료가 시멘트라니 '데스마스크'의 목적보다는 매장이나 음폐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설 속 '나'는 자신을 닮은 듯한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로 인해 귓속 곰팡이의 움직임을 느낀다.  '데스마스크'가 귓구멍 속의 곰팡이들을 깨운 게 틀림없다고, 작가로서의 감수성의 게이지가 비등한 순간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라고 되어있지만, 화자는 아닌 '나'. '"소소한 풍경'의 화자는 ㄱ이다.  ㄴ과 ㄷ의 이야기를 화자인 ㄱ에게서 듣는다'(p.9) 라고 작품 속 '나'가 아니, 작가는 이야기를 한다. 인물들의 이름에 익숙해 있었던터라 처음은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프롤로그가 끝나기 전에 ㄱ,ㄴ,ㄷ이라는 인물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것을 보면, 작가의 말대로 독자의 동의가 필요 없는, 작가 생활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내공에 독자라는 이름에 나는 10페이도 안되는 글밥들 속에서 작가에게 이미 굴복하고 말았나 보다.

 

  한 여자가 있다. 푸릇한 나이에 결혼을 한 후, 이상 속 결혼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혼자가 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이야기 한다. '혼자 사니 참 좋아'라고 말이다.  여자의 기억 속 흰 손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은 흰 운동화를 신은 남자 1의 존재로 인해 기억에서 밀려나지만, 사라진것은 아니었다. 남자 1을 떼어버리고 소소로 온 여자에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또 다른 남자 ㄱ. 남자 1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 "둘이 사니 더 좋네!". 그 둘앞에 나타난 파릇한 조선족 처녀 ㄷ. 이렇게 그들은 "셋이 사니 진짜 좋아"를 알게된다.  혼자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셋이 좋지만, 둘이 싫어 혼자가 된 'ㄱ'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아 하고 말하고 싶지만, 인과가 꼭 맞아야 세상사는 삶은 아닐것이다.  ㄱ이 이야기를 하고 ㄴ이 이야기를 하고 멀찍이 떨여저 ㄷ이 다시 이야기를 한다. '어떤게 그렇게 좋아요?'라는 나의 의문에.  '셋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더 좋았다고 나는 기억해요.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었어요.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우리가 마침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역동적이고 다정한 강강술래 같은 거요.  둘이선 절대로 원형을 만들 수 없잖아요.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원형이지요.'(p.209) ㄴ의 이야기지만, ㄱ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 죽음 이후에 이야기임에도 나는 오롯이 ㄴ의 이야기임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분명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사랑이야기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 남자와 두 여자 아니,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또 한 여자. 통속적인 이야기로는 이들은 연적이어야 하고, 질투로 몸을 불살라야 하건만, ㄱ은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ㄴ도 ㄷ도 남자였다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들려주지만, 이 또한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가슴 속 응어리는 하나씩 있겠지만, 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응어리는 참 단단하게 뭉쳐있기도 하다.  오빠의 죽음, 형과 아버지의 죽음, 가방과 함께 휩쓸려간 아버지와 살기위해 조선족인 된 소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일까?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으면서 첫 만나에서 부터 각작 죽음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던 것일까? 두렵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기 위해서.  평범하지 않기에 가능한 이야기들.  오롯이 행복을 영위하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  "난 오로지... 혼자서... 결정했어!" "언니랑 아저씨랑, 우리, 지금 함께, 한 순간에 죽는게 가장 행복한 거, 맞잖아!" 일종의 비명이다.'(p.118) 행복의 순간을 인지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이들의 꿈틀거림.

 

  베이킹을 하다 보면 밀가루를 체치고, 여러 종류의 향신료와 버터, 우유, 소금과 설탕을 넣은 후 반죽을 해야만 한다.  어떤 빵도 날 가루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반죽을 하면서 개개의 날가루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휴지를 시킨 후, 오븐으로 들어가야 비로서 하나의 빵이 만들어 진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섹스는 그래서 '덩.어.리'일지도 모르겠다.  "'덩어리라는 말에선 '상처의 주머니'가 아니라 '순수의 집합체'같은 광채가 느껴져서 좋아요." (p.200)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세사람은 개개인이 아닌 하나로 섞여 다시는 분리할 수 없는 상태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ㄷ의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p.202)라는 말은 혼자 분리되어 버린 혼합되기 전 날가루만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이야기다.  데스마스크가 만들어진 과정은 벌써 밝혀졌지만, 작가가 플롯을 다루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 과정이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세탁기 버튼을 꾹 누르고, 그녀-그의 등 날개를 꾹 누르고, 그-활강을 시작한 그 찰나에, 나-그녀-그가 불멸의 부동심으로 가장 완전한 덩어리를 이루게 되리라는 것을.' (p.287)

 

  플롯을 다루지 않는 흰 손의 선생님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ㄱ. 그녀의 「우물」이 우물을 파는 ㄴ으로 인해 오버랩 되면서 세상은 어쩜 내 작은 생각이 돌고 돌아 내게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게 이야기하지만 ㄱ은 자신의 첫소설과 ㄴ으로부터 받은 '벽조목'을 배롱나무 밑에 묻으면서 자신의 지난 생의 묘지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는게 다 이렇지.', ' 별것 아니야', '이런 사랑도, 저런 사랑도 가능하잖아.'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하지만, 어느 누구의 삶도 가벼운 삶은 없다. 다만 이야기하지 못할 뿐이다.  작가는 플롯에 메어있고,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p.39) 라고 하면서 문장에 메어있다.  그러기에 귓속 곰팡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메어있는 것을 풀어보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무엇에 메어있을까?  『소소한 풍경』속에서 『은교』와 『소금』을 찾고 있는 나는 작가가 말하는 사랑을 이해하고는 있는걸까?  모르겠다.  내가 나를 모르는것.  그게 인생이다.  그러기에 한낱 몸짓같은 ㄱ,ㄴ,ㄷ의 이런 사랑도 가능한것이 아닐까?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그들의 인생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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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 우씨 왕후는 두 번 왕후가 되었을까? - 발기 왕자 vs 우씨 왕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6
김용만 지음, 이동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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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조선왕조 500년이라 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그리 긴 역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국가가 조선이었고, 암암리에 조선시대의 성리학 교리는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을 빗대어 암탉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보면 고구려에서 두 번이나 왕후 자리에 오른 우씨 왕후는 조선시대였다면 행실이 불량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다.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의 부인이자, 그 동생인 산상왕의 부인이었던 우씨 왕후.  우씨 왕후는 어떻게 두 번이나 왕후가 될 수 있었을까?  

 

  조선 시대 성리학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 왕후는 남편이 죽자 왕의 동생인 자신의 시동생을 왕위에 앉히고 다시 왕후가 되었다.  고구려에는 '형사취수혼'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부인인 형수를 아내로 삼는 결혼 풍습으로, 이 결혼 풍습은 고구려의 어머니 나라인 부여는 물론, 흉노를 비롯한 유목 민족의 나라에 널리 퍼져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하지 않는 풍습이지만, 이런 풍습이 있다고 해서 고구려를 이상한 나라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시대와는 달랐을 뿐이니까 말이다.  고구려는 전쟁이 많은 나라였던 만큼,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형사취수혼'에 의해 남편의 형제와 함께 사는 경우는 고구려 사회상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후기에는 새로운 사람과 쉽게 재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여성들과 달리 자유롭게 외출했고, 제천행사인 동맹이 열릴 때면 남자들과 자유롭게 연애도 할 수 있었다.

 

 

  연애가 자유로운 나라였다고 해도 왕족은 일반백성과는 달랐을 것이다.  왕권이 걸려있으니 그 힘을 겨루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 였을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와 백제에도 부가 존재했는데, 여러 부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부에서 왕이 나왔다.  왕비는 왕 다음으로 큰 세력을 가진 부에서 나왔고, 왕부와 왕비부는 서로 협조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우씨 왕후는 연나부 출싱으로 강력한 연나부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고, 고국천왕의 죽음 이후 발기왕자가 아닌 연우 왕자를 다음 왕이자 남편으로 선택하고 고국천왕의 유언을 조작했다.  우씨왕후는 자신과 연나부를 위해 고국천왕의 죽임이후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서열 2순위였던 발기 왕자는 우씨 왕후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걸까?  현명하기로 소문난 재상인 을파소가 연우왕자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발기왕자보다 연우 왕자가 더 왕에 적합한 인물이었지 않았을까?  발기 왕자가 왕이 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군사를 이끌어 우씨 왕후와 연우 왕자가 있는 궁성을 공격하였을 때, 고구려 사람들은 발기 왕자를 따르지 않았다. 

 

 

  신라시대 여왕을 비롯해서 왕비의 여왕들의 이야기는 야사처럼 전해져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조선의 영향이 클 것이다.  강력한 고구려에서 두번이나 왕후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금 우씨 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유는 가쉽을 위함이 아닌, 강대한 나라 고구려의 '형사취수혼'이 왜 유지될 수 밖에 없었는지, 어째서 지금 우리는 이런 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기 위함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수백년전의 역사는 잊혀져 버린다.  기록에 없는 역사는 거짓으로 치부되기 일수이고, 배우지 않았기에 '말도 안된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에서 나온 제도였고, 그 제도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이 아닌 당시의 사회와 국제관을 알아보는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시각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역사를 알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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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제의 칠지도가 일본에 있을까? - 백제인 vs 야마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
이희진 지음, 박종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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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속에서 백제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나라로 우리는 백제를 꼽는다.  백제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는 찾기 힘든다.  역사학자들 조차도 백제에 대한 역사적 서술이 상이하기에 백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뿐인가?  한국의 역사를 근대적인 방법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에 '식민 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역사는 백제를 '늦게 세워져 별로 큰 힘도 못 써보고 움츠러들다가 황당하게 망한 나라' 로 만들어 버렸다.  백제의 역사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계기 중 하나가 '칠지도의 발견'이었다.  문제는 일본이 칠지도에 새겨진 글자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백제를 마치 왜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나라처럼 역사를 정리해버렸고,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중 상당수가 그런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여전히 칠지도에 대한 이견이 있기에 교과에서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제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칠지도에 대한 시비는 칠지도에 새겨진 내용이 무엇인가를 가리는 차원만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를 알아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백제의 전성기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때이다.  달달 외우다시피 한 내용은 4세기 후반 근초고왕은때 백제는 국제적 지위가 한층 높어졌고, 중국의 동진, 가야, 왜와 외교 관계를 맺고 중국의 요서, 산둥 지방과 일본의 규수 지방에 진출하였다.  삼국중 일본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백제는 4~7세기에 이르기까지 유교, 의학, 천문, 역법을 일본에 전해주었고,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칠지도는 4세기 백제 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이다라는 것이다.  백제 왕이 일본 왜왕에게 하사한 칼. 무엇이 문제인가?  

 
 
   칠지도에 새겨진 글중에 '의공공후왕(宜供供候王)'이라는 문구가 있다.  전문가들도 서로 해석이 다른 이 문구는 '후왕에게 줄 만하다' vs '후왕에게 바칠만 하다'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데, 문구만 봐도 누가 이야기하는지 알것이다.  전자는 백제의 입장이고 후자는 일본의 일장이다.  하지만 의문을 품어보자.  당시는 윗사람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시대였는데, 만약 왜 왕이 백제 왕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다면 과연 저렇게 이름을 함부로 써서 새겨 놓았을까?  백제 근초고왕이 진구 황후에게 칠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일본서기』는 어떨까?  서기에 거짓을 적어 놓을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의 기본 상식으로는 당연히 거짓이 들어가면 안되는데,  지금 일본은  '일본서기'에 120년 이라는 시간적인 오차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백제가 일본에게 전해 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본의 국보 제1호인 반가사유상도 기술로 보나 재료로 보나 백제에서 만들어 보내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히미코 여왕과 120년이나 차이나는 진구황후를 동일인물로 만들고, 진구황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칠지도에 대한 내용을 조작을 한것이다.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또 다른 증거 하나.  후황제. 황제가 모든 지역을 혼자서 직접 다스릴 수 없자 지역을 나누어서 각 지역마다 후왕을 두어 다스리는 제도를 말하는데, '삼국사기'기록을 보면 '근초고왕 24년 겨울 11월에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는데 깃발은 모두 누른색을 사용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누른색, 즉 노란색이 황제를 상징하는 색으로 한자로 황제의 황자와 노란색이라는 뜻의 황이 통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황제라고 칭했으니 후황제도 있었을 것이다. '마땅히 후왕에게 줄만하다'는 '칠지도'의 명문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우리 역사엔 이런 내용이 없을까?  『삼국사기』의 김부식은 확인된 사실만 써야 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을 지켜 직접듣고,본 이야기만을 실었다고 한다. 그러기에부식은 백제 멸망 이후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등의 책은 참고하지 않았고, 주로 신라가 남긴 기록과 중국의 기록을 참고하여 저술하게 되었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가 남긴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근초고왕 2년에서 21년까지 거의 20년정도의 기록이『삼국사기』에 실리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역사가들조차 아직까지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서가 신라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백제의 기록이 축소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자신의 기득권이 허물어지니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역사를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이대로 두면 결국 힘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맘대로 바꾸거나 자신들을 미화하는 도구로 삼을 테고, 역사는 지나간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니말이다.  일본은 '독도'를 끊임없이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를 바꾸는 것도 서슴치 않고 있다.  누군가 한두번 거짓을 이야기하면 흥하고 웃고 넘어가지만, 계속하면 귀가 솔깃하게 된다.  내 나라 땅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기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역사를 알고 책장을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고, 이 땅의 역사는 우리 아이들의 역사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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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꽃신 2 - 완결
윤이수 지음 / 동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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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한낮의 온도가 35도를 가리키고 있단다.  이렇게 더운날 달달한 로맨스가 왠말이냐 싶지만, 로맨스가 급 땡길때가 있다.  요즘들어 로맨스 소설이 어찌나 좋은지, 몇권씩 쌓아놓고 읽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약간은 '므흣'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로맨스들은 달달함의 극을 달리는 브라우니와 블랙커피를 한잔 마시는 기분이랄까...   달콤 쌉싸름함이란 말이다.  게다가 이 로맨스 소설은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눈이 따라가지 못할정도로 빠르다.  심각하지 않기에 어쩌면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4월의 아픔이 여전히 세상에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을때 현실 도피라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도피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책속에 빠지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남장을 한 은서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어찌나 달달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지, 남자로 살아오면서 사랑한번 못해 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다.  무슨 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겸 역시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자신의 아픔보다 위겸의 아픔이 더 아리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랑일 것이다. "제가 바람이라면 오직 위장님의 땀을 식혀 줄 미풍일 것입니다.  저는 이미 위장님의 사람입니다.  위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 마음 속을 채우고 있던 분노와 증오, 원망과 좌절을 모두 비워내고 그 대신 위장님을 담으라 하시질 않으셨습니까?" (p.34) 이리 예쁘게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위겸은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 해야 할텐데, 참 쉽지가 않다. "너는 내가 왕이라도, 내가 이 나라의 왕세자라 하여도 당당히 어깨 견주고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여인이다.  아니, 그리 되도록 내가 만들 것이야." (p.40).  이런다 한들 누가 위겸을 왕세자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냥 그러려니, 흔한 연인들의 이야기거니 했겠지.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어야하고, 인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비인 홍상덕의 자제는 어찌나 안하무인인지 아비의 후광을 업고는 자신 위에 있는 이가 없는것 처럼 보이니, 자신을 무시한 우림위의 여자처럼 야리한 은서가 너무나 못마땅하다.  어떻게든 은서를 헤하고 싶은데, 그럴때마다 나타나는 우림위장은 왜 이리 얄미운지.  금군에서 남자간의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일.  아무리 보아도 우림위장과 은서의 관계가 묘하다.  둘을 한번에 잡아들이는일에 홍상덕의 아들이 가담을 하면서 위겸과 은서는 위기에 처하지만, 위겸이 누구인가?  한나라의 왕세자가 아니던가?  둘의 관계가 들통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젠 은서를 설득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네 같은 미천한 인생에게 삶이란 살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선택의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 잡초 같은 우리네삶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살아질 것입니다." (p.124).  그렇게 믿으라 했는데, 이렇게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하니 위겸 난리났다.

"상사지몽. 내 여인이 내 검에 붙여준 이름이라네. 내게도 소중한 시절이 있었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지. 하지만..." (p.280)

"무영검이란 말 그대로 그림자가 없는 검.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허나, 무영의 진실한 뜻은 그림자조차 없는 신세. 즉, 육신이 없음을 뜻하니. 그림자기 없는 육신은 온통 공허할 뿐이요. 공허는 고독과 무상을 가져오니 이는 곧 모든것이 덧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사의 허무함을 말하는 것이거늘.." (p.340)

  왜 홍상덕의 머리에 대침이 그의 기억을 차단시켰는지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위겸의 어미는 어째서 왕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아니, 사랑하지 않은것이 사실이었을까?  드라마라면 막장의 끝을 보여 줄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무술의 도를 깨쳤다는 용우관의 한용우.  그가 왕비의 배다른 오라비였단다.  문제는 그의 사랑이 여동생이었다는 것.  사랑하는 여동생을 왕에게 보내버린 홍상덕을 자신보다 가슴아프게 만들고 싶었고, 자신이 아닌 왕을 사랑했던 여동생을 자신만의 사랑으로 만들고 싶어 죽였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  그뿐인가?  복수의 칼날은 자신의 연인이라 우기는 여동생의 죽음과 함께 날을 세웠단다.  이건 뭐야?  지가 죽여놓고는 왜 날을 세워?  어찌되었던지 본격적인 무협액션로맨스의 시작이다.  칼날이 몸의 기와 함께 싸우면서 소리를 내는 무협지를 따라햐하니 무협액션로맨스라 불러도 문제 없다.

​  무연적무염 시시소요인(無戀赤無厭 始是逍遙人)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으니, 이제야 자유를 얻게 되었구나'라고 말은 근사하게 하는데, 결국 한용우는 사랑에 미친이일뿐.  그나저나 홍상덕은 기억이 돌아오고 난후에 화령이 죽음을 당하고 이제 은서까지 죽게 생겼다.  그나마 홍상덕의 부인인 진부인이 통정을 했다는 사실이 들어나고, 그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까지 밝혀졌으니 은서 신분 상승하게 생겼다.  급속도로 결말을 향해 달리는 이야기.  챙챙챙 신나는 칼 싸움이 일어나고, 윤이수 작가가 위겸과 은서를 맺어주어야 할텐데, 어떻게 맺어줄까?  너무 많이 알려준 것 같다.  대부분의 로맨스는 해피앤딩이다.  누군가의 시점에서 봐야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상덕과 화령을 본다면야 가슴아프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비단꽃신'인지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고, 어찌되었던 소설은 해피앤딩이다.  패랭이꽃 수놓아진 비단꽃신 한켤레가 곱게 빛나는 그런 소담하면서 화려한『비단꽃신』이다.

"언제까지고 내 사람이라는 징표이다.  이 꽃신 신고 걷는 걸음은 언제나 나만을 향해야만 한다. 오직 내 곁에서 나의 여인으로만 머물러야 한다."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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