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구려 우씨 왕후는 두 번 왕후가 되었을까? - 발기 왕자 vs 우씨 왕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6
김용만 지음, 이동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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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조선왕조 500년이라 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그리 긴 역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국가가 조선이었고, 암암리에 조선시대의 성리학 교리는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을 빗대어 암탉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보면 고구려에서 두 번이나 왕후 자리에 오른 우씨 왕후는 조선시대였다면 행실이 불량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다.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의 부인이자, 그 동생인 산상왕의 부인이었던 우씨 왕후.  우씨 왕후는 어떻게 두 번이나 왕후가 될 수 있었을까?  

 

  조선 시대 성리학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 왕후는 남편이 죽자 왕의 동생인 자신의 시동생을 왕위에 앉히고 다시 왕후가 되었다.  고구려에는 '형사취수혼'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부인인 형수를 아내로 삼는 결혼 풍습으로, 이 결혼 풍습은 고구려의 어머니 나라인 부여는 물론, 흉노를 비롯한 유목 민족의 나라에 널리 퍼져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하지 않는 풍습이지만, 이런 풍습이 있다고 해서 고구려를 이상한 나라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시대와는 달랐을 뿐이니까 말이다.  고구려는 전쟁이 많은 나라였던 만큼,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형사취수혼'에 의해 남편의 형제와 함께 사는 경우는 고구려 사회상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후기에는 새로운 사람과 쉽게 재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여성들과 달리 자유롭게 외출했고, 제천행사인 동맹이 열릴 때면 남자들과 자유롭게 연애도 할 수 있었다.

 

 

  연애가 자유로운 나라였다고 해도 왕족은 일반백성과는 달랐을 것이다.  왕권이 걸려있으니 그 힘을 겨루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 였을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와 백제에도 부가 존재했는데, 여러 부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부에서 왕이 나왔다.  왕비는 왕 다음으로 큰 세력을 가진 부에서 나왔고, 왕부와 왕비부는 서로 협조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우씨 왕후는 연나부 출싱으로 강력한 연나부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고, 고국천왕의 죽음 이후 발기왕자가 아닌 연우 왕자를 다음 왕이자 남편으로 선택하고 고국천왕의 유언을 조작했다.  우씨왕후는 자신과 연나부를 위해 고국천왕의 죽임이후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서열 2순위였던 발기 왕자는 우씨 왕후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걸까?  현명하기로 소문난 재상인 을파소가 연우왕자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발기왕자보다 연우 왕자가 더 왕에 적합한 인물이었지 않았을까?  발기 왕자가 왕이 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군사를 이끌어 우씨 왕후와 연우 왕자가 있는 궁성을 공격하였을 때, 고구려 사람들은 발기 왕자를 따르지 않았다. 

 

 

  신라시대 여왕을 비롯해서 왕비의 여왕들의 이야기는 야사처럼 전해져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조선의 영향이 클 것이다.  강력한 고구려에서 두번이나 왕후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금 우씨 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유는 가쉽을 위함이 아닌, 강대한 나라 고구려의 '형사취수혼'이 왜 유지될 수 밖에 없었는지, 어째서 지금 우리는 이런 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기 위함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수백년전의 역사는 잊혀져 버린다.  기록에 없는 역사는 거짓으로 치부되기 일수이고, 배우지 않았기에 '말도 안된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에서 나온 제도였고, 그 제도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이 아닌 당시의 사회와 국제관을 알아보는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시각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역사를 알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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