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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근사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처음 떠오른 생각은 '근사하다'였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필두로 만났던 김선영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근사한 책이 나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고 근사하다. 요즘 자모 청소년문학 시리즈에 푹 빠져서 읽고 있는 딸아이가 열광을 할 것 같은 그런 책이다. 처음 제목을 읽고는 이게 뭘까 싶었는데, 『미치도록 가렵다』라는 문장이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와서 이 근사한 책을 꼭 안고 있게 될지 몰랐다. 미치도록 가려워서 중2병이 걸리는 걸 알았고, 나 역시 미치도록 가려운 이유를 알았으니 꼭 병원에서 처방전으로 책 한권을 받은 것 같다.

사서 선생님은 계약직이나 한 학교에 계속 근무를 하는 분인지 알았는데, 보통의 선생님들처럼 로테이션을 하나보다. 책에서 만나게 된 수인은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다. 첫 부임지였던 수산나 고등학교에서의 활약이 워낙에 뛰어나서 수인이 전근 온 형설중을 주변인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수인 또한 불만에 가득 찬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결혼을 약속했던 율은 스펙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공부를 하겠다며 유학을 외치고 있고, 잘나가던 고등학교에서 전근을 온 학교의 도서관은 학교에서 가장 외진곳에 위치한데다 책들은 널부러져 있고, 처음 만난 아이들은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사서 교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를 백 번도 넘게 상기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생활이 감당하기 조차 벅차게 다가온다.
"그 학교 소문 좋지 않던데, 그 동네에서는 기피학교 1호야." "학교 폭력이 전국 서열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래."(p.26 )라는 말이 들릴 정도이니 '형설중'에 있는 아이들이 궁금하면서도 무서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니 말이다. 모든 아이가 다 학교 폭력을 당할리 만무하지만, 수인이 만난 아이들은 역시나 예사롭지가 않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장선생님의 '독서회를 운영하라'는 한마디에 각 반마다 활당을 채우기 시작하고 저마다의 꿍꿍이속으로 아이들이 독서회에 지원하여 도서관에 모이기 시작한다. 사사건건 말싸움을 하는 준표는 강제 배정을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그말에 동조를 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방과 후 활동을 하지않는 도범과 해명, 세호도 있고 도서관을 정말 좋아하는 이담도 있다.
수인의 눈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들을 기선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폭력 사건에 휘말리며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전학 다녀야만 했던 도범은 일진 생활을 정리하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을 짓찧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말보다 가방 속에 망치를 꺼내는 것이 빠른 해명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서 아이를 이해하게 된다. 그 옆에 함께 다니는 새처럼 조잘거리며 유쾌한 세호와 책이 말을 건다는 이담, 그리고 성적 스트레스로 미쳐버렸다는 도서관의 전설 희곤까지. 수인은 아이들을 알아가고 아이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학교는 아이들만 있는곳이 아니다. 뒤에 숨어 조정하는 교장 선생님도 혼자서 모두를 따시키는 미술 선생님도 있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보인다. 모두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같은 존재들이지만 모두 그 속을 알수 없기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다. 수인 역시 다른이들과 다를바 없지만, 수인에겐 수인을 100% 받아주는 치매 초기에 엄마가 있다.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께 만날 가려운겨. 미치도로 가려운 거야. 부리고 날개고 등이고 비빌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비대고 보잖어." (p.216)
노모의 말은 어쩜 이리도 현답을 알려주시는지. 알고 싶고 고민하게 만들던 답을 장자도 맹자도 아닌 치매 걸린 노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수인과 함께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를 꼭 끌어 안고 싶어진다. 노모의 말씀처럼 병아리가 아니니 봐주지도 않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니 대접도 못받는, 무얼 해도 어중간한 아이들. 중2병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을 앓고 견디기 위해 여기저기 부딛기는 아이들.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겠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견딜까? '어질더질',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말을 듣는 아이. 엄마,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홀로 삭이는 아이. 말보다 손이 빠를 수 밖에 없음에도 말을 시작하는 아이.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내 아이의 이야길 귀기울여 듣는것이 왜 이리 고된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던지.
한단계 성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운동을 하면서도 단계를 넘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포기하고 싶을때가 많아진다. 삶은 포기할 수 없는 운동이다. 그러기에 가려움에 부딪치고 쉽지 않음에 들어달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뼈가 자라날 때 성장통을 앓는 것처럼 뼈의 자람 뿐 아니라 생각의 자람도 성장통을 겪게 된다 는걸 왜 자꾸 잊어 버리는지 모르겠다. 분명 내 어린시절에도 이렇게 아리고 아팠을텐데, 장닭이 되어서는 중닭 시절을 잊은 듯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넌 왜 그렇게 못하냐고, 왜 그렇게 답답하냐고. 처방전처럼 받아 읽은『미치도록 가렵다』는 소설 속 인물들이 그들 나름의 가려움을 견뎌내며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전에 나를 돌아다 보고 내 아이를 장닭이 아닌 중닭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사랑만 받아도 부족한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지게 만드는 처방전. 이제 약을 만들 시간이다. 유통기한이 다 지나기전에 아이와 나에게 나만이 조제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줄 시간이다. 아이가 다 커버려 내게 눈길 조차 주지 않고 등 돌려 버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