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낭자열전 2 - 진영낭자전 조선 낭자열전 2
월우 지음 / 아름다운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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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배필 맞아 결혼 하겠다며 사촌동생을 시켜서 왕비를 간택하라고 하던 『조선 왕비 간택 사건』속 서브 여주들이 다시 태어났다.  은호낭자의 이야기는 심장을 간질이면서 사랑에 골인했는데, 은호낭자만큼 강렬한 주인공 중 한명인 진영 낭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물이 뭔지 아파서 누워있는 형을 보면서 조카딸을 죽인 아비와 어미.  그 속에서 어찌 이리 고운 아가씨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매같은 민영의 죽음을 현무군과 서경이 해결을 해준 후 진영 낭자는 민영이 남긴 향갑하나 지니고는 세속을 떠나 절로 들어갔다. 부모는 죄값을 치뤄야하니 옥에 갇혔고, 진영이 죽은 민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여승이 되어 평생 민영의 명복을 빌고, 제 부모의 죄를 속죄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딱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인네 같은 발상이긴 하다.

 

 

  어째서 절에 들어간 진영이 여전히 삭발도 하지 않고, 사미니도 비구니도 되지 않았는지 진영은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있지만, 은혜 스님의 언중으로 그녀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는 미련을 알수가 있다. "그것이 어찌 단순히 향갑이기만 하겠니? 네가 속세에 두고 온 미련이요, 네가 떨치지 못한 인연의 뿌리인 것을... 그러니,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처사님을 따라가거라." (p.37)  아닌 밤중에 홍두꺠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감옥에 있는 아비에게 빌려준 돈을 빌미로 제 아내가 될 것을 강요하는 뻔뻔한 사내 성현을 따라가라는 은혜스님의 말을 져버릴 수 없는 이유는 '부도식향만계(향유및 머리꾸밈 금지)'라는 사미니가 되기위해 지켜야만 하는 십계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뻔뻔한 저 남자를 따라가 속죄하다보면 민영의 향갑 조차도 무심히 바라볼 날이 올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누구의 형편을 살필 만한 입장이 못되오.  내 추례한 입성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지금껏 옷 한 벌, 신 한 켤레 허투루 사지 않고 평생을 모은 큰돈을 이 여인의 아비에게 빌려주었소.  그런데 이제 와 혼인을 못 한다 하면, 나는 어쩌란 말이오?  그 큰돈을 어디서 돌려받으란 말이오?" (p.31)

 

  아이가 둘이나 있다면서 뻔뻔하고 무례하게 진영에게 환속을 요구하는 이 남자 영 이상하다.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서는 무조건 제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는데, 현무군의 사촌 정한군과도 면이 있는 사이란다.  꼭꼭 감쳐 두었던 성현의 이야기가 정한군을 통해서 하나둘씩 풀어지는데, 그보다 더한것이 생겼다.  정한군 눈에 진영이 들어왔다.  민영의 죽음을 현무군이 풀어줄때 도움을 줬던 인물을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참, 조선 땅 좁다.  어찌 왕의 사촌들이 이리 잘도 돌아다니는지 모른다.  그뿐인가?  예쁜 여자는 참 잘도 찾아낸다.  '단아하게 생기긴 하였지만, 코도 그리 높지 않고, 입술도 그리 많이 도톰하지 않은, 배자 빛의 살결이 유난히 곱긴 하지만, 생김새 자체가 그리 특별나게 어여쁜 여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꾸만 정한군의 시선을 끌었다.' (p.113)

 

  쌍둥이 이현과 성현.  의좋고 형을 아비처럼 여기던 성현이 천재라는 형보다 먼저 생원이 된것이 문제였는지, 형을 위한 일이었건만 도성을 떠나고, 형수님을 다정히 대한것이 문제였는지, 형이 그렇게 죽을 줄 몰랐다.  자신에게 남겨진 조카 채은이, 채욱이를 버릴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고, 애당초 형이 죽은 것이 모두 성현의 잘못 같았다.  그런 성현의 눈에 진영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성현의 마음도 정한군의 마음도 모두 쥐고서는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갖고 노는 진영.  그녀의 모습이 들어오면서 그녀를 놓칠 수가 없었다.  진영이 환속하면서 오씨문중은 오대감의 재산이 진영에게 돌아갈것을 탐내면서 혼사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방해 공작을 펼치기 시작하고, 숨겨진 성현과 오대감사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연이라는 것은 만드는 것일까?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일까?  조선시대 사대부가 낭자들에겐 외출 한번 자유롭지 못하니,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것 처럼 들리지만, 『조선 낭자 열전』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연을 만들어 낸다.  감추고 억압되어 숨죽여 살아가는 여인들이 아니라, 가족과 가문을 위해 나서고, 사촌의 죽음을 파헤쳐나가면서 두려움을 무릅쓴다.  그런 인물들이었기에 그녀들이 무현을 만나고 성현을 만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달달한 로맨스가 책 표지만큼이나 곱게 다가오는 책이『조선 낭자 열전』이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나를 믿어 줄 내 듣든한 배우자. 그들이 만들어 가는 사랑 이야기가 가슴 뛰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낭자들이 사랑을 찾는 과정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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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낭자열전 1 - 은호낭자전 조선 낭자열전 1
월우 지음 / 아름다운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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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무공 이윤과 아파 서경의 사랑이야기로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조선 왕비 간택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 다시 살아나『조선 낭자 열전』으로 태어났다.  조선왕비 간택령으로 죽음앞에 섰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었는데, 외전의 느낌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읽으면서 궁금했던 이야기, 혹시 무현과 은호낭자 사이에 뭔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월우 작가는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주고 있다.  궁금하면 일단 보라고 하고 있으니 월우작가가 장사를 하면 대박집을 만들어 낼 것 같다.  서경과 연을 맺은 이들은 참 오래도록 함께 한다.  첫 장면이 은호 낭자에게 서경이 보낸 매파였으니 말이다.  소년 검객 용화단의 단주이면서 사문객주의 행수였던 무현의 이야기는 조금 뒤로 넘기고 자신을 죽이려하던 남자에게 "내 손으로 죽게 해주게" (p.78) 라면서 알량한 양반가 열녀를 외쳤던 은호낭자.  물론, 이 알량한 양반이라는 표현은 상남자 무현의표현이다.

 

 

 "사는 게 뭐 별겁니까? 죽을때까지 열심히 발버둥도 치고 안달도 내보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게지요.  그래도 정 안 되면 하는 수 없는 일이고요.  우리 앞에 뭐가 놓여있는 건지는 아가씨도 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p.22)

 

  은호 낭자가 시집을 간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시집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매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심장통에 걸린 은호 낭자, 집안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시집을 간단다. 그것도 자신만큼 아픈 남자에게 말이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죽으려 하는것일까?  그저 결혼 후 죽어서 열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만 꽉찬 은호에게 또 다시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가 나타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남자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는 이 남자가 왜 쫓기는지 알 수 없지만, 은호의 시선이 자꾸만 사문객주의 행수였다는 이 남자, 무현에게 가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남자, 은호 곁을 떠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은호 옆을 서성이고 있다.

 

  처음엔 그랬다.  그놈의 알량한 양반들 때문에, 그들의 썩어빠진 권력욕 때문에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온몸에 피비린내를 풍기며 짐승처럼 어둠 속을 기어 다니는데 팔자 좋은 양반집 여인은 죽어서 열녀가 되겠다며 스스로 죽게 해달라고 청해오는 것이 밉고 싫었다. 용화단의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서 좌의정 송만섭의 명을 따랐지만, 이젠 아니란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데, 왜 자꾸 이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지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고있는데, 이 여자가 아프단다.  심장통에 걸려 아픔으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열녀가 되기위해 시집을 간다는 여자의 모습이 용화단의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피를 뒤집어 쓰고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졌기에 그녀가 눈에 밟혔는지도 모른다.   

 

"이 멍청한 여자 같은라고...!  이 한심한 여자 같으니라고...!  그깟 가문이 뭐라고, 그깟 열녀문이 뭐라고, 그딴 몸을 하고서 혼인을 하려 해?  그것도 저보다 더 빨리 죽어 나자빠질 그런 놈하고?" (p.85)

 

  본견적인 은호낭자를 향한 무현의 사랑쟁탈전이 시작된다.  남의 부인이 된 여인을 왜 이리 탐하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그저 은호낭자가 저렇게 죽어가는것이 안타까웠고, 은호낭자를 살릴 수 있는 이가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았다.  씨내리를 하는 말도 안되는 죄를 벌이고 있는 임진사 가문도 우스웠고, 그 틈에 자신이 끼어서 은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찌되었던 은호의 첫남자는 자신이니까 말이다.  조선시대의 말이되는 일이냐고 묻는다면 『조선 왕비 간택 사건』역시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로맨스는 그저 로맨스로 만나야 하고, 그 당시의 사회상을 알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재미있지 않는가?  상남자 무현의 애절한 로맨스도 가슴절절하게 다가오고 말이다.  "미안하지만 난 안 그럴 거야.  당신을 버리지도, 겁먹어 지레 포기하지도 않아.  세상에 보란 듯이 당신을 빼앗고 말겠어!  훔치고 말겠어!  그러니 당신은 실컷 고민하고 괴로워해.  당신 의지 따위와는 상관없이 나는 강제로 당신을 뺏으면 그만이니까." (p.202)

 

  나비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비는 여인네의 옷섶을 세모 모양으로 자른 것으로, 소박을 맞은 여인임을 나타내는 증표라 할 수 있단다.  가문과 남편에게서 내쫓김을 당한 여인이 이 나비를 갖고 서낭당 앞에 서 있으면,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하는 사내는 누구라도 그 여인을 아내나 혹은 첩으로 맞아들여야만 했다는데, 처음 알게 된 내용이다.  뭔가 일을 낼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서경을 통해서 임진사댁에서는 은호를 소박놓을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은호는 그렇게 무현의 여인이 된다.  무현의 여인이 되기 훨씬전에 서로 함께 한 시간이 어마어마 하지만, 이젠 아무도 은호와 무현의 사이를 갈라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양반가 체통을 중시하는 은호의 집안과 임진사 집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일의 시작이 양반가 체통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어보시길.  정경부인이 된 서경의 지략은 『은호낭자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니 말이다.

 

"소문이 많으면 무엇이 진짜인지 다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거든요. 거기다 연달아 계속되는 소문은 결국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결국 싫증을 내게 만들지요.  그럴 때 앞의 소문들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사람들은 그때야말로 그것이 진짜라고 미데 되는 법이지요."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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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트라이앵글
오채 지음 / 비룡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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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가 독특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머리위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 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슷한 듯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깔끔한 표지다.  처음엔 이 책을 교육이나 소통관련 책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겉 표지만 보고 떠올랐던 이미지는 청소년기 아이들과에 소통을 이야기하는 책쯤으로 생각했는데, 소설이다. 그것도 끝내주게 멋진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표지가 얼마나 멋지게 책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지 일러스트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때는 교복 자율화로 교복을 입는 학교가 신선한 충격이었었고, 그때문에 교복은 로망처럼 느껴졌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입기 시작한 교복은 사복을 동경하게 만들곤 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는것 같다.  분명 누구나 동일한 사고를 가지고 같은 삶을 살아 갈 수는 없다.  얼마전에 『기억전달자』를 읽었었는데,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청춘이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하면서 타인과 다른 모습을 꿈꾸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열일곱 청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묘한 빌라가 있다.  빌라 이름이 '몽마르뜨 언던 위'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다. 주부입장에서는 고마운 빌라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찌되었든 이곳 '몽마르뜨 언덕 위'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은 형태네 엄마가 하시는 식당에서 아침,점심,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게다가, 형태네 식당은 빌라에 있다.  약간 오피스텔같은 느낌의 빌라 같기도 하고, 상가 건물 같기도 하고,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이 빌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빌라를 기점으로 세 아이가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죽은 후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엄마의 유품인 카세트테이프를 애지중지하는 소월이.  엄마의 소원대로 미술을 공부하고 예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지만, 미용학교에 진학하고픈 예고 재수생 형태, 예고 수석 입학자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오천만 원이나 하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다니지만, 바이올린이 짐처럼 무거운 시원이.  열일곱의 청춘들은 청춘이 해야만 하는 고민을 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일까?" 

 

  누군가 이야기를 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해야할 고민을 대입이라는 장벽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대학을 가고, 대학에서 자신을 찾으려 할때는 취업전선에 막혀서 못하다가, 취업을 하고나서 자신을 찾으려하니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간 회사를 1~2년도 안 다니고 그만둔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때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살아 있는 걸까?'를 고민한다는 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고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것을 포기한 삶일테니 말이다. 기억조차도 지우고 싶은 아빠가 소월이 앞에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나타났는데, 강아지 이름이 소중이란다.  어린시절부터 그렇게 아빠가 필요할때는 나타나지도 않더니 무슨 면을 가지고 나타난걸까?  미용이 너무나 좋아서 하루 세시간씩 엄마 몰래 하는 미용실 알바는 힘든지도 모르겠는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는 형태는 몸이 바쁘다.  어린시절부터 목검을 들고 시원이를 좌지우지하는 엄마, 자신보다 바이올린이 중요한것처럼 보이는 엄마를 볼때마다 시원이는 답답했다.

 

  어린시절부터 삼총사로 불리는 세아이는 모두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겐 본인의 고민이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오지만, 곁에 있는 친구들 눈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엄마의 유품인 테입이 늘어나서 못 듣게 되었을때 세상이 무너지듯 느껴지다가,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을땐 자신의 인생이 사라진듯 느껴지다가도 아빠의 존재가 조금 고맙게 느껴지는것처럼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은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대한 고민은 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여전히 모르기에 아빠의 부재가 딸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소월이 아빠가 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형태의 예고입시와 미술에 집착을 하는 형태 엄마도 있다.  소월이 눈에는 옥탑방 맑은 아저씨가 정상적인 사람의 표본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오히려 맑은 아저씨를 통해 알게된 장애우, 로함이가 훨씬 살아야만 하는 존재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월이가 그렇게도 알고 싶은 꿈을 천개도 넘게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 우물을 파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언제까지 파야 하냐고요.  그분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물을 만날 때까지 파는 거라고. 어떤 경우는 1 센티미터를 안 파서 물을 못 만날 수도 있다고.  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게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오늘부터 차근차근 만나러 가 보십시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p.200)

 

  형태 엄마와 세 아이가 함께들은 강연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1 센티미터를 더 파면 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 수 없기에 그때까지의 고뇌와 노동이 힘이 들어 포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는 않지만 만날때까지 계속하면 만날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아이들의 질문은 태평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엄마, 아빠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나는 그 질문에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소월이처럼 나의 꿈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아이에게는 꿈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조차도 그 꿈을 찾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지치면 내가 찾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투영시키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가는거지라는 생각을 '지금 나는 살아있는걸까?'라는 생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책이 삼각형을 만들어 내는 근사한 삼총사의 이야기인 『그 여름, 트라이앵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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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배반했을까? - 영류왕 vs 연개소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9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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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고구려』라는 책을 읽으면서 광개토태왕이나 장수왕 시절의 삼국이 통일을 했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주벌판을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가 지금 우리땅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되었다면 식민시대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알수는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디로 굴러가는지 알 수 없게 굴러가고 있고, 역사 속 민초들이 수레바퀴속 하나 하나의 살이라고 해도 다음 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모두 동일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드라마의 영향이 확실히 크기는 하다.  연개소문을 떠올리면서 역사극의 주인공을 했던 어떤 인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역사극을 본 기억은 별로 없지만, 누가 연개소문역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대하드라마였던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결론을 어떻게 맺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는 <영류왕 vs 연개소문>으로 되어있다.  연개소문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는데, 영류왕은 생소하게 다가온다.  왕보다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확실히 많이 알려지긴 알려졌다.  영류왕은 고구려의 27대 왕으로 618년~642년까지 재위를 했다.  당에 몸이 사렸던 걸로 기록되어있는 영류왕은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조카가 왕위에 오른것으로 되어있다.  

 

  연개소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삼국사기』를 통해서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왕을 죽인 역적이자 고구려의 멸망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연개소문을 위대한 혁명가로 평가하고 있다.  김부식이 참조를 한 <구당서>,<신당서>, <자치통감>은 중국편에서 쓰여졌을 수 밖에 없었을 책이었고, 신라를 계승하고 있는 김부식은 당연히 고구려보다는 신라를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신채호 처럼 중국을 싫어해서 중국을 '지니'라고 부르면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애썼던 독립운동가의 입장에서 연개소문은 '영웅'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속 연개소문은 영웅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비쳐졌기에 『조선 상고사』를 통해 민족 의식을 높이는 길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이 비범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구려는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였다.  고구려의 입지를 보면 북으로 부여, 숙신, 선비, 거락, 서쪽으로 중국이 있었으며, 남으로는 기름진 평야를 가진 백제와 신라에 둘러쌓여있는 나라였다.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 춥고 험한 산골이었기에 요새가 되기에는 좋지만 평화롭게 정착해 살기에는 나쁜 땅이었던 고구려는 오직 싸움으로만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싸움으로만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고구려에는 소위 '좌식자(坐食者)'라고 해서 평상시에는 무예나 닦을 뿐 농사나 상업 같은 일을 하지 않다가,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군인이 있을 정도였고,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군사 집단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나라도 흥망성쇠는 피해갈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때 불렀던 노래중 '광광 광개토왕~ 우리나라 최초의 땅따먹기 제일인자'라는 가사가 기억나는데, 이런 땅따먹기 제일인자가 있었던 고구려도 내분은 막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연개소문의 역사적 선택은 옳은 판단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백제와 신라를 게속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러한 떄 왕을 시해하여 왕권을 흔든 행위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흔들린 왕권으로 인하여 연개소문이 죽고 난 뒤 아들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이 내분이 결국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으니까 말이다.   쿠테타와 부적절한 권력 승계에 대해 연계소문에게는 분명하게 잘못이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역사는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대립의 과정을 지켜보고 생각해봐야한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서 언젠가는 반드시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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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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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간전부터 대단한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책이 『공허한 십자가』다.  1,000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전자책 리뷰단을 모집을 했었으니 근간 읽었던 책들중에서도 궁금함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리뷰단이 아니더라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읽고 싶었다.  처음 '방과후'를 만났을 때 부터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을 읽는 동안엔 계속 함께 할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여전히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사랑하는 내게 그의 새 작품은 행복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확실히 그랬다.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다른 모든것을 집어 삼켜버린 것처럼 내 모든 이성을 마비시켜버렸었는데, 책의 내용은 즐거움만을 선사하진 않았다.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장을 넘겨야 하는데, 넘길 수가 없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사오리와 후미야.  게이고의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가 '프롤로그'가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이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주 살짝 맛보기 처럼 보여지고 있다.  풋풋한 아이들의 첫사랑.  이 풋풋한 사랑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놓쳐버리지 말아야만 한다.   처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떄는 제목만 보고 종교색이 강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언제가 읽었던 『성녀의 구제』처럼 다른 부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목과 함께 생각하기엔 책 표지가 묘하다.  찢겨져나간 책장 사이로 보이는 숲.  푸른기운으로 가득한 빼곡한 나무들.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표지속 나무뒤에 숨겨진 진실은 어떤 것일까? 

 

   11년 전 강도에게 딸을 잃은 가족이 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은 가족을 헤체시키고 이들은 죽은 딸을 잊을 수가 없어서 남남이 된다.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나카하라와 전업주부에서 잡지사 기자가 된 사요코.  어린 딸의 죽음은 일본에 현 사형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고, 조용히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지키는 나카하라와 달리 사요코는 피해자 가족 모임등을 통해서 자신과 같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돕는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여전히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마나미를 잊을 수가 없다.  먼저 간 자식, 그것도 죽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안고 간 아이를 보낸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 마나미의 사건을 담당했던 사야마 형사의 방문을 통해서 그들은 다시 만난다.  살아있는 모습이 아닌 사후를 알리는 통보였지만 말이다.

 

  죽은 전부인의 이야기가 왜 궁금했을까?  오래전에 남남이 되어버렸기에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만 사요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은 나카하라에게 함께 하자는 듯이 기를 흘려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씩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도벽을 취재하고 있던 사요코와 도벽 취재에 응한 인터뷰어 사오리.  어디선가 봤던 인물이다 싶으면 '프롤로그'를 찾아가면 된다.  사요코를 죽인 68세의 노인 마치무라 사쿠조.  노상 강도인가 싶은데, 그를 구명하기 위해 애쓰는 사위의 이름이 후미야다.  왜 '프롤로그'를 풋풋함 젊음으로 감싸고 있던 이들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이야기의 전면에 나오는 걸까?  분명 작가가 어딘가에 깔아놓은 복선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오리의 집에 있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사진. 모든것이 붉은 가구와 가전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땐 터무니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결혼을 한 후미야와 후미야의 장인. 어떤 연결고리가 분명히 있는데,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p.201)

 

  딸의 죽음이후 극단적으로 사형론을 옹호하고 있는 사요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의 목숨을 헤한 범법자에게 사형은 당연한 것처럼 다가온다.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하나에의 목소리에서는 어떤것이 옳다라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사요코의 입을 통해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공허한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예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p.406).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자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형론과 사형폐지론 중 어떤것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작가가 나카하라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는 것처럼 모범 답안은 없다.  그럼에도 생각은 해야한다.  과거의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겐 그저 잊혀진 과거의 한 조각일수도 있지만, 어떤이에겐 평생을 따라다니는 십자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분명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로 인해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오늘이 되어버릴 미래의 나를 잊을 때가 많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이 의문에 대한 모범 답안는 없겠지요."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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