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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배반했을까? - 영류왕 vs 연개소문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9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고구려』라는 책을 읽으면서 광개토태왕이나 장수왕 시절의 삼국이 통일을 했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주벌판을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가 지금 우리땅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되었다면 식민시대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알수는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디로 굴러가는지 알 수 없게 굴러가고 있고, 역사 속 민초들이 수레바퀴속 하나 하나의 살이라고 해도 다음 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모두 동일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드라마의 영향이 확실히 크기는 하다. 연개소문을 떠올리면서 역사극의 주인공을 했던 어떤 인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역사극을 본 기억은 별로 없지만, 누가 연개소문역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대하드라마였던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결론을 어떻게 맺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는 <영류왕 vs 연개소문>으로 되어있다. 연개소문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는데, 영류왕은 생소하게 다가온다. 왕보다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확실히 많이 알려지긴 알려졌다. 영류왕은 고구려의 27대 왕으로 618년~642년까지 재위를 했다. 당에 몸이 사렸던 걸로 기록되어있는 영류왕은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조카가 왕위에 오른것으로 되어있다.
연개소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삼국사기』를 통해서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왕을 죽인 역적이자 고구려의 멸망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연개소문을 위대한 혁명가로 평가하고 있다. 김부식이 참조를 한 <구당서>,<신당서>, <자치통감>은 중국편에서 쓰여졌을 수 밖에 없었을 책이었고, 신라를 계승하고 있는 김부식은 당연히 고구려보다는 신라를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신채호 처럼 중국을 싫어해서 중국을 '지니'라고 부르면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애썼던 독립운동가의 입장에서 연개소문은 '영웅'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속 연개소문은 영웅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비쳐졌기에 『조선 상고사』를 통해 민족 의식을 높이는 길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이 비범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구려는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였다. 고구려의 입지를 보면 북으로 부여, 숙신, 선비, 거락, 서쪽으로 중국이 있었으며, 남으로는 기름진 평야를 가진 백제와 신라에 둘러쌓여있는 나라였다.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 춥고 험한 산골이었기에 요새가 되기에는 좋지만 평화롭게 정착해 살기에는 나쁜 땅이었던 고구려는 오직 싸움으로만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싸움으로만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고구려에는 소위 '좌식자(坐食者)'라고 해서 평상시에는 무예나 닦을 뿐 농사나 상업 같은 일을 하지 않다가,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군인이 있을 정도였고,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군사 집단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나라도 흥망성쇠는 피해갈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때 불렀던 노래중 '광광 광개토왕~ 우리나라 최초의 땅따먹기 제일인자'라는 가사가 기억나는데, 이런 땅따먹기 제일인자가 있었던 고구려도 내분은 막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연개소문의 역사적 선택은 옳은 판단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백제와 신라를 게속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러한 떄 왕을 시해하여 왕권을 흔든 행위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흔들린 왕권으로 인하여 연개소문이 죽고 난 뒤 아들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이 내분이 결국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으니까 말이다. 쿠테타와 부적절한 권력 승계에 대해 연계소문에게는 분명하게 잘못이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역사는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대립의 과정을 지켜보고 생각해봐야한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서 언젠가는 반드시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