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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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은 아이가 두살, 큰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으니, 큰 녀석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작은 아이와 종일 씨름을 했던 시기다.  미친듯이 화분을 사서 거실을 푸른 밀림처럼 만들었었고, 뭔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때가 나의 10년 전이다.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는 행복할까?  내게 그 당시는 힘든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힘든 시기였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젊음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 젊음이 책임져야만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으니 말이다.  다시 뭔가를 배우고 일을 시작한것이 작은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으니, 10년에서 몇년은 더 흘러간 뒤에야 사람답게 생각이라는 걸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게 10년 전은 모든것이 힘들었던 시기로 남아있다.  물론, 몇해 전 이었다면 다르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마흔이 되기 전의 10년 전 이었다면 말이다.

 

 

 

  앨리스의 시간은 스물아홉으로 멈춰졌다. 그 시간이 10년 전이란다.  육체가 10년 전으로 간 타임슬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관에서의 사고가 앨리스의 기억의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놨다.  10년은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니다.  나 역시 10년이란 시간동안 공부를 했고, 아이들이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고, 운동을 시작하고, 경력이 쌓여갔으니 1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은 채우기가 힘들것이다.  앨리스에게도 10년 이라는 시간의 공백은 그렇게 다가온다.  부끄럼많았고, 언니를 자랑스러워하며 남편을 끔찍히 사랑하고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그 순수했던 시간이 앨리스에게 찾아왔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오래 전 기억이란다.  첫 아이가 아니라 벌써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고, 언니는 자신을 피하고, 남편과는 이혼을 준비중이라는 새로운 앨리스. 

 

앨리시는 경악했다.  10년 사이에 앨리스는 사람을 직업으로 판단하는 끔찍한 인간이 된 걸까?  앨리스는 언제나 엘리자베스 언니가 자랑스러웠다.  언니는 영리했고, 앨리스가 안전하게 한곳에 머무는 동안 늘 용감하게 모험에 나섰다. (p.35)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혼미한 꿈속을 헤매다가 병원에서 눈을 뜬 앨리스는 분명 올해가 1998년이고 12주 된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현실은 2008년이고 선홍색 빛깔의 제왕절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에서 앨리스는 누구나 그렇듯,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 남편 닉과 친언니 엘리자베스를 떠올린다. '지금이라도 닉이 오면, 언니가 오면, 모든 걸 제대로 바로잡아줄 거야!' 그러나 연락을 받고 한참 만에 온 언니 엘리자베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말들을 건네고, 포르투갈로 출장 중이라던 남편 닉은 어렵게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대체 또 무슨 수작이냐는 스물아홉에 앨리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하나 둘 지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몸이 기억하는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가면서 앨리스는 잃어버린 10년을 꿰어맞춰간다.  자신의 어느 부분에 이렇게 매정하고 모진 부분들이 있었던 걸까?  꿈꾸던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스물아홉의 앨리스의 눈엔 서른아홉의 앨리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아니, 어린 앨리스는 진짜 앨리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씩 스물아홉의 어린 앨리스는 2008년을 살고있는 진짜 앨리스가 되어가지만, 앨리스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어리고 순진하고 단순한 어린 앨리스와, 나이들어 현명하고 이성적인지만 냉소적인 진짜 앨리스의 시간으로 말이다.  2008년을 살고 있기에 서른아홉의 앨리스가 진짜인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떤 것이 진짜라고 장담하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앨리스에겐 스물아홉의 앨리스도 서른아홉의 앨리스도 앨리스이니 말이다.

 

'내가 10년간의 기억을 잊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놀라웠던 일, 즐거웠던 일, 화났던 일,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같은 모든 기억을요.' (p.198)

 

'2008년에는 정말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 되었다. 1998년에는 하루가 훨씬 한가했다.' (p.423)

 

  기억의 조각들은 말썽쟁이 세 아이, 사랑했던 남편과 알 수 없는 이혼소송, 자랑스런 언니와 소원해진 관계, 친정엄마와 시아버지의 재혼, 앨리스의 인생을 바꿨다는 친구의 죽음, 새로운 애인이라는 도미니크의 출현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10년동안의 변화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지만, 가장 놀라운 변화는 앨리스 본인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후 일주일 동안 앨리스는 과거와 현실 사이을 오가면서 10년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꿈에 그리던 값비싼 명품 가방과 옷을 입고, 골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쓰며, 하루에 200불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 트래이너를 부르는 삶.  그런 생활로 인해 꿈에도 그리던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근사한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2008년의 앨리스는 행복하질 않다.  훨씬 한가했던 시간이 10년의 세월과 함께 충분치 않은 시간이 되어버렸고, 모든것이 풍족함에도 풍족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가 제목이다.  리안 모리아티는 그녀의 기억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억의 부재로 인한 앨리스가 아닌, 행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통해서 변해버린 삶을 이야기 해주고 있지만, 변화는 앨리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당했던 언니는 불임으로 변해있었고, 남편을 잃고 숨죽였던 엄마는 시아버지를 만나 변해있었다.  어린시절부터 할머니라 불렀던 프래니는 블로그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고, 다정다감했던 닉은 사업의 성공과 함께 옆에 없었다.  어쩌면 리안 모리아티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의 기억이 아닌 다가오는 10년후를 생각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10년후 어느날 또 다시 10년이라는 기억의 부재를 맞게 된다면, 그 시간엔 10년전 시간을 그리고 있을까? 아니면, 참 잘 살아왔다고 투닥여주고 있을까?  어제의 내가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내가 내일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 과거의 나를 몽땅 잊고 살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나를 위한 또 다른 위로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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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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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51년 12월 14일,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법정에서 한 여자가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엘렌 제가도. 드러난 것만 해도 37명의 사람을 독살한 이 희대의 연쇄살인마는 어떻게 죽음의 신 ‘앙쿠’의 현신이 된 것일까?  여기까지가 팩트다.  1851년이니 어마어마하게 오래전 이야기인데, 이런 일이 있었단다.  왜 죽였을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죽음의 신 '앙쿠'의 헌신이라던 엘렌 제가도의 이야기가 2000년을 살고 있는 우리곁에 다가왔다. 장 퇼레의 어마무시한 글발로 말이다.  어찌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유머처럼 슬쩍 슬쩍 건들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처음엔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어느 누가 첫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겠는가?   

 

  

“아, 그거 꺾으면 안 돼요, 엘렌, 그건 천둥꽃이란다. 가만 있자, 이제부터 너를 천둥꽃이라 불러야겠다! 그쪽 줄기도 잡아당기면 안 돼, 그건 독사꽃 줄기야." (p.10)

 

  미신이 마을을 안개처럼 뒤 덮고 있는 곳, 브르타뉴.  켈트 문화의 뿌리가 워낙 깊은데다, 언어까지 프랑스어와는 다른 브르타뉴어가 사용될 정도로 고유한 풍토가 두르러진 이곳이 엘렌이 살던 곳이다.  몰락한 귀족의 가문의 자녀로 나오는데, 책을 통해서 다가온 어린 시절의 엘렌의 이미지는 백지였다.  이 어린 소녀에게 엄마는 왜 독초인 '천둥꽃'이라는 애칭을 지어준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애칭과 함께 '앙쿠'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팔려가 듯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처음엔 어린 소녀의 험난한 생활을 이야기하려나 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처음 맛보인 음식을 시작으로 그녀가 거쳐간 곳에선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의심을 했을텐데, 예쁜 소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시대의 열악한 환경은 그저 전염병이라고 생각을 해버린다.

 

  어릴 적 브르타뉴 벌판의 선돌 아래서 신비한 기운을 받아 브르타뉴 전설 속 죽음의 신 ‘앙쿠’의 현신이 되어버린 ‘천둥꽃’ 엘렌. 흰 피부와 눈부신 금발이라는 타고난 미모로 수컷들을 음탕하고도 요사스럽게 홀려내어 비정하게 살해하는 그녀, 천둥꽃. 탐욕스러운 군인들 뿐 아니라 성직자, 일가족, 순수한 선의를 베푸는 선량한 시민들까지 그녀의 살인은 이유가 없다.  흔적은 없지만 백발백중 목숨을 앗아가는 벨라도나 열매와 비소의 독이 그녀의 무기로 변하면서, 그저 친절하고 솜씨좋은 요리사로 위장하며 엘렌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계속해간다.  정신과 의사라면 그녀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만난 엘렌은 왜 계속해서 살인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자처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의 신이라는 '앙쿠'의 헌신이라는 착각에 빠졌을까?  자신의 요리가 타인의 생과 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을까?  알수는 없다.  그 어린 소녀가 엄마를 죽게 한 순간부터 죄의식이라는 기본적인 양심은 악마에게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의심하는 이가 나타나고, 그로인해 엘렌이 법정에 서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다.  플루이네크를 시작으로 뷔브리, 세글리앵, 트레다르제크, 궤른, 뷔브리, 로크미네, 오레, 퐁티비, 엔봉, 로리앙, 플뢰뫼르, 포르루이, 플루이네크, 반, 렌 그리고 또 다시 플루이네크까지 그녀가 거쳐것은 '죽음의 일꾼'인 '앙쿠'의 수레가 움직인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어린소녀를 나이들고 무서운 괴물처럼 변하게 한다.  외모뿐 아니라 살인에 대한 충동은 아이들 만화의 몬스터의 진화처럼 진화를 거듭한다.  그녀가 잡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법정에서 그녀의 삶이 오래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더 많은 살인은 멈춰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녀가 그랬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앙쿠의 헌신'을 엘렌의 어머니으 입을 통해서 초반부터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앙쿠는 왜 사람들을 죽게 하나요?” “왜냐고……? ‘끼익, 끼익’거리면서 앙쿠의 수레가 구르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단다. 그는 사람이 사는 곳을 그냥 지나쳐 가거나, 불쑥 들이닥치지. 누구와도 티격태격하지 않아. 낫으로 후딱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게 바로 ‘죽음의 일꾼’인 그의 천직이지.”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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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불멸의 신화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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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내 별명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여자 아이에게 이런 별명은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이름이 비슷하지도 않는데, 비슷하다고 우기는 초딩의 수준이 어디가겠는가?  '이수진'을 '이순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유치함이라니.  그래도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존경하는 위인 중 '이순신 장군'이 항상 들어 있을때였으니 말도 안되는 별명이라도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워낙에 동네에 남자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고무줄 끊고 다녔던 것도 일조 하긴 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유치함이 가능할때가 그때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어찌되었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위인전으로 만난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난중일기'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때 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필독으로 있었고, 10여년전에 했던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는 인간 이순신에 대해 생각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불멸의 신화, 이순신 리더쉽과 같은 책들을 꽤나 많이 읽었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 이순신 관련책을 꺼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읽는 책부터 내가 읽고 있는 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을 제대로 모른다.  관심분야가 스토리 위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순신의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어린시절부터 백의종군을 했던 이유,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관계는 떠오르는데 그가 벌였던 해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유명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에 대해서도 시험문제 외우듯 이름만 알고 있지 어떤 전술이 사용된 해전이었는지 모르겠다.  몇십년 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전술과 해전들이 궁금한 이유중 <명량>이라는 영화의 흥행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즐기지 않은 내가 <명량>을 본것도 아니다.  그저 <명량>을 홍보하기 위한 스페셜 인강을 봤을뿐인데, 내가 모르고 있던 이순신 장군이 궁금했다.

 

   조정우 작가의 『이순신 불멸의 신화』는 이순신 장군의 펼쳤던 모든 해전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시절이나 가족관계와 같은 스토리보다는 장군으로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거북선 진수식을 시작으로 옥포, 사천, 당포, 당항포, 한산, 안골포, 부산포, 명량, 노량대첩까지 해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간중간 가족들에 이야기가 실려 있기는 하지만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작가는 일본 장수와 사랑을 나누는 억새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일본인 장수도 사랑하고 조국도 사랑한다는 이 인물의 심중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억새라는 인물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는 한다.  조정우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순신 장군을 따라가다보면 거북선이 눈앞에 있는것처럼 실감나게 다가온다.  용머리의 용도나 바닥의 두께, 노를 젓는 군사들의 수처럼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들을 청사진을 펼쳐놓듯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도 뜬금없이 장군이 섭섭해하는 부분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당포해전에서 시간을 지키지 못한 이억기에게 이순신장군이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소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리도 늦으셨소."  (p.101) 라는 부분을 읽다보면 '난중일기'에 나온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조정우 작가가 역사 고증을 많이 하는 작가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익진을 세계 역사상 최초로 해전에 응용하여 한산해전에서 1만여 왜군을 궤멸시킴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유년에 일본의 이중첩자 요시라의 반간계에 당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백의종군에 처한 이순신. 원균이 이끈 삼도 수군이 칠천량에서 궤멸당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 13척 대 333척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스토리 위주에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은 분명 아니지만, 조정우 작가의 글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놓치지 않아서 좋다.  다른 소설이라면 모르겠다.  워낙에 역사를 좋아하기에 조정우 작가의 글이 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고, 읽은 후의 느낌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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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우드 임페리움 와일드우드 연대기 3
콜린 멜로이 지음, 이은정 옮김, 카슨 엘리스 그림 / 황소자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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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일드우드'에서 '자전거 소녀'는 <헝거게임>속 '모킹제이'만큼이나 강렬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헝거게임>에 열광했을 내가 피가 튀기는 전장보다 말하는 동물들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전하는 나무들이 있는 곳이 훨씬 행복해진 이유는『와일드우드』를 만나고 나서 부터 였다.  '와일드우드 연대기'의 마지막 편이 드디어 나왔다.  처음 '와일드우드'를 만났을떄의 설램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근거림의 시간들이 이제 막을 내렸다.  머리속으로 '와일드우드'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소녀와 함께 움직인다. 거대한 넝쿨이 쿵쿵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온 숲이 넝쿨에 감겨 잠이 들기도 한다.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올빼미. 그들의 등에 탄 산적들과 생쥐. 숲의 경계를 줄지어 넘어오는 아이들.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야 할 때가 온것 같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적으려고 하니 어떤이야기를 적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와일드우드'의 정보들이 머리를 헤집고 다닌다.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들 먼저 이야기해보자.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손에 갈고리를 하고 있는 곰이다. 1권부터 이야기가 되어 왔지만, 2권에 와서야 모습을 드러낸 에스벤과 장님이 된 캐롤 할아버지. 미망인 총독의 죽은 아들, 알렉세이를 살려내기위해 영혼의 집을 만든 후 총독에 의해 장님이 되고 갈고리손이 되어 쫓겨난 이들이 다시 모인다.  2권을 통해서 회합나무는 스스로 인형의 삶을 마감한 알렉세이를 다시 살려내라고 했고, 회화나무의 예언을 프루는 지키려고 했지만, 프루는 언더와일드우드에서 손이 사라진 곰, 에스밴만 찾아낸다. 숲의 경계 너머엔 금단의 숲에서 입양부적격자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던 캐롤 할아버지가 숲을 벗어나 언생크 고아원 봉기를 하다 마서와 함께 하역인부들에게 붙잡혔었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 산적들.  사라져버린 산적들을 찾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커티스를 와일드우드에 남겨둔채 2부의 막이 내려졌었다.

 

  2부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은 산적들을 찾는 커티스, 회합나무의 명령대로 진정한 후계자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에스밴과 캐롤를 찾는 프루, 마서와 캐롤 할아버지를 구하려는 입양부적격자 아이들까지 였는데, '와일드우드 임페리움'은 또 다시 미망인 총독을 드러낸다.  담쟁이덩굴과 함께 사라져버렸던 미망인 총독이 '오월의 여왕'이 된 지타에 의해서 초록 여제로 다시 태어났다.  어린 소녀는 단지 초록 여제의 아픔을 이해했기에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채워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엄마를 잃은 후 느꼈던 상실감이 자신만큼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을 유령인 누군가의 엄마를 위해 심부름을 하는 거라고 느꼈고, 그래서 유령이 원하는 물건들을 가져다 주고 싶었다. 독수리의 깃털, 조약돌, 알렉세이의 치아가 모이는 순간 지타는 잘못 된 걸 알았지만, 다시 살아난 초록 여제는 그녀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혁명 이후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금단의 숲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나 똑같은 시련을 겪는것은 마찬가지 인듯하다.  혁명의 중심이 사라진 후에는 서로의 의견과 실리가 우선이 되면서 '자전거 소녀'를 외치는 무리 역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그뿐인가?  강력한 매개체가 사라져버린 곳에서는 또다른 세력이 자신들의 방법으로 세를 확장해가기 위해 힘을 쓴다.  '자전거 소녀'를 따르는 무리가 반역의 무리가 되고 황폐한 나무를 숭배하는 종교집단인 시노드의 칼리프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곰팡이에 잠식되어 자신들의 의지가 사라져 버린 시노드 무리들.  두 세력만 있을때는 서로 자기들이 강하다고 떠들다가 더 큰 적이 나타나니, 공존관계가 시작되는 걸까?  두 세력이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는 초록 여제의 담쟁이덩굴.  가장 힘이 약한 생물 중 하나였던 담쟁이가 거대한 세력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숲은 한 순간에 푸른 장막에 덮이게 되면서 모두가 덩굴속에서 잠에 빠져들어 지금까지 왜 싸왔는지조차 모르는 고요가 찾아든다.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미래가 옳다고 외친다해도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게 다가온다.  나무들의 말을 듣는 숲의 아이 프루는 회합나무의 뜻을 따라 움직이고, 사라져버린 산전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커티스는 나름의 방법으로 숲의 계승자가 된다.  그뿐인가?  입양부적격자라는 듣기에도 껄끄러운 판결이 난 아이들 역시 자신들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오월의 여왕인 지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초록여제는 어떠한가?  그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영혼을 담은 그릇으로 다시 살아난 인형왕자였다.  손도 없고 눈도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곰과 할아버지가 만나 인형을 만들고 알렉세이의 치아를 장착하는 순간 '왜 또 살려냈는냐고' 괴로워도 하지만 초록여제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도 소년에게는 엄마일 뿐이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예요' 위로와 사랑만이 세상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랑이 변해버린 와일드우드와 금단의 숲 넘어까지 뻗어가던 담쟁이 덩굴을 잠재울 수 있었다.

 

"프루, 지금 와일드우드 심장부 깊은 곳에서 새 나무가 태어나고 있다.  넌 느꼈을 거야.  지금 자라고 있지.  아직 태어나지 않고 자궁 속에 있는 아기처럼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난산이 될거야." (p.217)

 

"너의 고통을 이해한단다.  우리 모두 그런 상실을 겪었지.  우리 모두.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야. 그리고 지금, 너는 진정으로 잘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단다." (p.489)

 

  죽은 나무사이에서 새 나무가 다시 태어나듯이 새로운 변화는 뼈를 깎는 상실의 고통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학교에서 조차도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숲의 아이들로 숲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세상의 멸망을 막아냈다.  자신이 살던 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와일드 우드와 언더우드를 보여주고 날개달린 새들의 나라인 아비앙과 사우스우드, 노스우드의 삶도 보여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여우가 군대를 만들고 독수리가 백작의 영애를 누리고, 생쥐가 산적이 되어 숲을 계승하는 곳.  어쩌면 이 모든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프루와 같이 맘이 열리지 않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것이 행복으로 마무리 되어지는 이야기. 동화는 이런게 아닐까?  모두가 행복해지는『와일드우드 연대기』를 만난 건 내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이 시간을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넘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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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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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을 시작으로 탐정이나 형사들은 삐딱한 맛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 시대다.  그렇지 않아도 천재같은 주인공들이 너무 반듯하면 정을 주기 힘들지 않는가?  셜록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약에 빠졌고, 요 네스뵈가 만들어 낸 거구의 남자, 해리 홀레는 누가봐도 알콜릭이다.  그럼에도 알콜 의존증은 벌써 넘어 선 듯한 이 삐딱한 남자에게 왜 이렇게 정이 가는걸까?  2미터에 가까운 키에 95kg가 넘어서는 거구의 해리 홀레는 어느 순간 내 머리속에선 미드 <하우스>의 그레고리 하우스역을 맡았던 휴 로리를 변해서 움직이고 있다.  조금은 삐딱한 모습 때문인지, 하나의 사건을 보고 추리해내가는 과정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요 네스뵈가 만들어낸 해리 홀레를 만날 때마다 휴 로리로 분해서 머리속을 헤집고 있다.

 

 

  <레드브레스트>에서 해리는 파트너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엘렌 옐텐의 죽음을 맞는다. 아케르셀바 강 옆에서 엘렌이 야구방망이로 맞아 죽은 사건.  엘렌의 죽음은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신 나치주의자인 스베레 올센이 톰 볼레르 경감에 의해 정당방위로 쏜 총에 맞아 사망을 했다고 보고가 되었지만, 그 배후 세력에 대한 미스테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남아있고, 해리는 완결처리 된 사건을 혼자서 캐고 있다.  엘렌의 사건은 해리 인생에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해리에게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일상은 찾아온다.  라켈과는 연인사이로 진척이 되고 있고, 해리를 따르는 올레그는 양육권 소송문제로 라켈과 함께 러시아에 가있는 상태다.

 

  지금 해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건은 보그스타바이엔 가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이다. 주말을 반납하면서 재생버튼을 누른 비디오 감상은 의구심만 일게 만들고, 알코올 중독인 해리의 머리속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그뿐인가?  7년 전 겨우 6주를 사겼던 안나가 나타났다.  헤어지면서 안나는 그녀가 쓰던 외국어로 욕을 했고, 언젠가는 그에게 똑같이 갚겠다고 맹세하면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겠다고 장담을 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저녁을 초대한단다.  그리고 애인이 있음에도 남자의 본능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라켈 몰래 해리는 안나를 만난다. 라켈에게 충실하지 않아서 였을까?  가위로 잘라낸 것 처럼 해리의 기억은 사라졌는데, 안나가 자살을 했단다.  자살을 한 안나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권총과 안나의 신발 속에 들어있는 사진한장.  뭔가가 있다.    

 

  은행강도 사건과 안나의 자살 사건은 해리를 중심으로 교차되면서 보여진다.  수사팀이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처럼 해리는 자신만의 팀을 이끌어 내면서 사건을 파헤쳐내기 시작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은행원 스티네의 죽음은 해리의 파트너 베아테의 뛰어난 눈썰미로 스티네의 남편인 트론 그레테의 형, 레브 그레테를 찾아내고, 레브 그레테와 트론 그레테 사이에 교집합을 찾아낸다.  안나의 죽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나의 신발 속 사진은 안나의 애인인 알부를 향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상함만 가득하다.  아니, 너무나 모든것이 알부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다.  안나의 삼촌 라스콜과 해리가 은행강도인 도살자와 안나를 죽인 남자를 체포할 증거를 찾아오는 것으로 정보교환을 은밀하게 진행하면서 두 사건은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이 된다면 요 네스뵈가 소설 전체에 깔아 둔 복선이 아까워질것이다.

 

'슬슬 시작해볼까?  어떤 여자와 저녁 식사를 했는데 다음 날 그 여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상상해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 S²MN'  (p.193)

 

  안나의 죽음이후 해리에게 온 메일 한통.  사건의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해리에게 오는 메일들은 기억이 사라져 버린 해리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혹시, 자신이 안나를 죽인건 아닐까...?  해결해야만 할 사건들과 함께 해리는 끊임없이 엘렌의 사건을 생각한다.  자신을 알콜릭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  그 사건으로 시작 된 알콜릭이 안나의 죽음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만든것은 아닌지 해리 자신조차도 확신을 할 수 없는 현실은 해리를 무력하게 만들지만, 해리 홀레는 역시나 해리 홀레다.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사건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한 순간 지목된 이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내지만, 현실을 끌고 나갈 수는 없게 만들어 버린다.  '사전입력'과 같은 다양한 수사용어들은 요 네스뵈가 깔아 둔 복선들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 내면서 어느 누구도 그가 설치한 트랩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은행강도 사건과 전 여자친구의 자살이라는 두 사건을 요 네스베는 옮긴이의 말처럼 저글링 되어지고 있는 두 개의 공을 번갈아 진행되면서 정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진것이 2002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년 후 란다. 이 작품의 원제는 오슬로의 거리 이름인 소르겐프리에서 따온 <Sorgenfri>라고 하는데, 그리스 신화 속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훨씬 와닿는다.  하나의 열쇠와 복수의 여신의 날개를 표지로 하고 있지만, 뒷표지는 세개의 동일한 열쇠를 보여주고 있다. 두개의 사건, 두개의 현장, 그리고 요 네스뵈가 보여주고 싶은 단 하나의 동기. 인간의 오만을 향한 신의 분노, 정의의 분노, 사랑의 분노를 상징한다는 NEMESIS가  S²MN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사건은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스티그 라르손 이후 책이 출간될때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요 네스뵈.  그의 작품은 아무렇지 않게 설치해 둔 작은 조각들을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부터 멈출 수 없는 롤러코스트를 타게 만든다.  롤러코스트의 벨트를 풀 수 없다면 요 네스뵈가 만들어낸 사건 속으로 해리와 함께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아직,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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