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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불멸의 신화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4년 7월
평점 :
어렸을때 내 별명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여자 아이에게 이런 별명은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이름이 비슷하지도 않는데, 비슷하다고 우기는 초딩의 수준이 어디가겠는가? '이수진'을 '이순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유치함이라니. 그래도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존경하는 위인 중 '이순신 장군'이 항상 들어 있을때였으니 말도 안되는 별명이라도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워낙에 동네에 남자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고무줄 끊고 다녔던 것도 일조 하긴 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유치함이 가능할때가 그때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어찌되었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위인전으로 만난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난중일기'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때 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필독으로 있었고, 10여년전에 했던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는 인간 이순신에 대해 생각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불멸의 신화, 이순신 리더쉽과 같은 책들을 꽤나 많이 읽었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 이순신 관련책을 꺼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읽는 책부터 내가 읽고 있는 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을 제대로 모른다. 관심분야가 스토리 위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순신의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어린시절부터 백의종군을 했던 이유,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관계는 떠오르는데 그가 벌였던 해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유명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에 대해서도 시험문제 외우듯 이름만 알고 있지 어떤 전술이 사용된 해전이었는지 모르겠다. 몇십년 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전술과 해전들이 궁금한 이유중 <명량>이라는 영화의 흥행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즐기지 않은 내가 <명량>을 본것도 아니다. 그저 <명량>을 홍보하기 위한 스페셜 인강을 봤을뿐인데, 내가 모르고 있던 이순신 장군이 궁금했다.
조정우 작가의 『이순신 불멸의 신화』는 이순신 장군의 펼쳤던 모든 해전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시절이나 가족관계와 같은 스토리보다는 장군으로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거북선 진수식을 시작으로 옥포, 사천, 당포, 당항포, 한산, 안골포, 부산포, 명량, 노량대첩까지 해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간중간 가족들에 이야기가 실려 있기는 하지만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작가는 일본 장수와 사랑을 나누는 억새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일본인 장수도 사랑하고 조국도 사랑한다는 이 인물의 심중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억새라는 인물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는 한다. 조정우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순신 장군을 따라가다보면 거북선이 눈앞에 있는것처럼 실감나게 다가온다. 용머리의 용도나 바닥의 두께, 노를 젓는 군사들의 수처럼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들을 청사진을 펼쳐놓듯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도 뜬금없이 장군이 섭섭해하는 부분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당포해전에서 시간을 지키지 못한 이억기에게 이순신장군이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소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리도 늦으셨소." (p.101) 라는 부분을 읽다보면 '난중일기'에 나온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조정우 작가가 역사 고증을 많이 하는 작가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익진을 세계 역사상 최초로 해전에 응용하여 한산해전에서 1만여 왜군을 궤멸시킴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유년에 일본의 이중첩자 요시라의 반간계에 당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백의종군에 처한 이순신. 원균이 이끈 삼도 수군이 칠천량에서 궤멸당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 13척 대 333척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스토리 위주에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은 분명 아니지만, 조정우 작가의 글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놓치지 않아서 좋다. 다른 소설이라면 모르겠다. 워낙에 역사를 좋아하기에 조정우 작가의 글이 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고, 읽은 후의 느낌이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