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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셜록을 시작으로 탐정이나 형사들은 삐딱한 맛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 시대다. 그렇지 않아도 천재같은 주인공들이 너무 반듯하면 정을 주기 힘들지 않는가? 셜록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약에 빠졌고, 요 네스뵈가 만들어 낸 거구의 남자, 해리 홀레는 누가봐도 알콜릭이다. 그럼에도 알콜 의존증은 벌써 넘어 선 듯한 이 삐딱한 남자에게 왜 이렇게 정이 가는걸까? 2미터에 가까운 키에 95kg가 넘어서는 거구의 해리 홀레는 어느 순간 내 머리속에선 미드 <하우스>의 그레고리 하우스역을 맡았던 휴 로리를 변해서 움직이고 있다. 조금은 삐딱한 모습 때문인지, 하나의 사건을 보고 추리해내가는 과정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요 네스뵈가 만들어낸 해리 홀레를 만날 때마다 휴 로리로 분해서 머리속을 헤집고 있다.

<레드브레스트>에서 해리는 파트너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엘렌 옐텐의 죽음을 맞는다. 아케르셀바 강 옆에서 엘렌이 야구방망이로 맞아 죽은 사건. 엘렌의 죽음은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신 나치주의자인 스베레 올센이 톰 볼레르 경감에 의해 정당방위로 쏜 총에 맞아 사망을 했다고 보고가 되었지만, 그 배후 세력에 대한 미스테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남아있고, 해리는 완결처리 된 사건을 혼자서 캐고 있다. 엘렌의 사건은 해리 인생에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해리에게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일상은 찾아온다. 라켈과는 연인사이로 진척이 되고 있고, 해리를 따르는 올레그는 양육권 소송문제로 라켈과 함께 러시아에 가있는 상태다.
지금 해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건은 보그스타바이엔 가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이다. 주말을 반납하면서 재생버튼을 누른 비디오 감상은 의구심만 일게 만들고, 알코올 중독인 해리의 머리속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그뿐인가? 7년 전 겨우 6주를 사겼던 안나가 나타났다. 헤어지면서 안나는 그녀가 쓰던 외국어로 욕을 했고, 언젠가는 그에게 똑같이 갚겠다고 맹세하면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겠다고 장담을 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저녁을 초대한단다. 그리고 애인이 있음에도 남자의 본능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라켈 몰래 해리는 안나를 만난다. 라켈에게 충실하지 않아서 였을까? 가위로 잘라낸 것 처럼 해리의 기억은 사라졌는데, 안나가 자살을 했단다. 자살을 한 안나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권총과 안나의 신발 속에 들어있는 사진한장. 뭔가가 있다.
은행강도 사건과 안나의 자살 사건은 해리를 중심으로 교차되면서 보여진다. 수사팀이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처럼 해리는 자신만의 팀을 이끌어 내면서 사건을 파헤쳐내기 시작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은행원 스티네의 죽음은 해리의 파트너 베아테의 뛰어난 눈썰미로 스티네의 남편인 트론 그레테의 형, 레브 그레테를 찾아내고, 레브 그레테와 트론 그레테 사이에 교집합을 찾아낸다. 안나의 죽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나의 신발 속 사진은 안나의 애인인 알부를 향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상함만 가득하다. 아니, 너무나 모든것이 알부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다. 안나의 삼촌 라스콜과 해리가 은행강도인 도살자와 안나를 죽인 남자를 체포할 증거를 찾아오는 것으로 정보교환을 은밀하게 진행하면서 두 사건은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이 된다면 요 네스뵈가 소설 전체에 깔아 둔 복선이 아까워질것이다.
'슬슬 시작해볼까? 어떤 여자와 저녁 식사를 했는데 다음 날 그 여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상상해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 S²MN' (p.193)
안나의 죽음이후 해리에게 온 메일 한통. 사건의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해리에게 오는 메일들은 기억이 사라져 버린 해리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혹시, 자신이 안나를 죽인건 아닐까...? 해결해야만 할 사건들과 함께 해리는 끊임없이 엘렌의 사건을 생각한다. 자신을 알콜릭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 그 사건으로 시작 된 알콜릭이 안나의 죽음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만든것은 아닌지 해리 자신조차도 확신을 할 수 없는 현실은 해리를 무력하게 만들지만, 해리 홀레는 역시나 해리 홀레다.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사건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한 순간 지목된 이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내지만, 현실을 끌고 나갈 수는 없게 만들어 버린다. '사전입력'과 같은 다양한 수사용어들은 요 네스뵈가 깔아 둔 복선들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 내면서 어느 누구도 그가 설치한 트랩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은행강도 사건과 전 여자친구의 자살이라는 두 사건을 요 네스베는 옮긴이의 말처럼 저글링 되어지고 있는 두 개의 공을 번갈아 진행되면서 정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진것이 2002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년 후 란다. 이 작품의 원제는 오슬로의 거리 이름인 소르겐프리에서 따온 <Sorgenfri>라고 하는데, 그리스 신화 속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훨씬 와닿는다. 하나의 열쇠와 복수의 여신의 날개를 표지로 하고 있지만, 뒷표지는 세개의 동일한 열쇠를 보여주고 있다. 두개의 사건, 두개의 현장, 그리고 요 네스뵈가 보여주고 싶은 단 하나의 동기. 인간의 오만을 향한 신의 분노, 정의의 분노, 사랑의 분노를 상징한다는 NEMESIS가 S²MN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사건은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스티그 라르손 이후 책이 출간될때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요 네스뵈. 그의 작품은 아무렇지 않게 설치해 둔 작은 조각들을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부터 멈출 수 없는 롤러코스트를 타게 만든다. 롤러코스트의 벨트를 풀 수 없다면 요 네스뵈가 만들어낸 사건 속으로 해리와 함께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아직,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