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명회는 남이 장군을 제거했을까? - 남이장군 vs 한명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6
임채영 지음, 최상훈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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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왕조가 만들어질때는 지도자는 탁월한 능력, 리더십이 필요하고, 지도자 주변에 뛰어난 장수들과 책사가 있어야만한다.  그뿐인가?  백성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지도자로서의 모든것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새로운 왕조가 탄생할때마다 하늘은 영웅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영웅은 백성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었다.  이중 백성들의 지지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고, 그러기에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자는 기존 정치 세력에게는 늘 위험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왕위를 차지한 왕 밑에 있는 고관대작들에게는 더욱더 무서운 '공공의 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나라 무속 신왕에서 장군으로 모시는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남이 장군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무속인들이 장군으로 모실까?  이 남이 장군은 어려서부터 백성들의 믿음과 칭송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태종의 넷째 딸 정선 공주의 아들로 태어난 남이 장군은 한명회와 함께 훈구파의 양대 산맥이었던 권람의 사위였다.  어려서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뛰어난 무예와 지략으로 변방의 여진족을 무찔러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았고, 1467년 조선 개업 이후 가장 큰 반란이었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면서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지만, 세조 사후 예종떄 '남이의 옥'으로 인해 거열형으로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남이 장군에 이름만 알고 있었기에 남이 장군이 이렇게 젊은 인물인줄 역사공화국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 한국사법정에서는 남이장군이 자신을 모함한 훈구 세력의 중심인물 한명회를 법정에 세워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 하고 있다.

 

 

   조선 역사속에서 한명회만큼 많이 등장하는 인물도 흔치 않을것이다. 수양대군의 책사로 수양대군이 한명회를 두고 '자신의 자방'이라고 할 정도로 꾀와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하기에 수양대군을 세조로 만들었고, 한평생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인물이다.  세조부터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왕을 모시며 예종, 성종의 장인으로 영의정의 자리에 앉았었을 뿐 아니라, 세조의 유언으로 예종 즉위 3개월 동안 왕의 권한을 가진 원상으로 있기도 했다. 이만하면 개국공신 못지않다.  태조의 왕조 설립에 도움을 준 인물들을 개국공신이라고 하는데, 개국공신들의 자손은 나라에서 보상차원으로 관직을 주었다  한명회는 그 덕으로 처음 관직에 오르게 되지만, 그의 야망은 '계유정난'을 통해, 정난공신이 되고, '남이의 옥'을 거쳐 익대공신이 된다.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장수를 하였고, 압구정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지만, 사후 연산군 시대에 부관참시를 당하면서 또 한번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나오게 된다. 

 

  훈구공신은 세조의 집권을 도운 인물들로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과는 차이가 있다.  신봉하는 학문과 사상도 훈구파들은 대부분 성리학을 신봉하였고, 이를 나라 운영의 기본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다.  정변이 있을때마나 깊숙이 개입하여 세력을 키웠으며 대표적 인물로 한명회, 권람, 홍윤성, 정인지, 신숙주, 정창손, 김국광 등을 들 수 있는데, 대부분 집현전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의 국가 체계를 정비하고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사화를 일으키고 관직과 특권을 독차지하여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였으며 부정부태를 일삼기도 했다고 하니, 권력은 물과 같아서 그대로 두면 썩는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6권은 '남이 장군 vs 한명회'로 왜 한명회는 남이 장군을 제거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본 법정에서 피고인 한명회는 자신은 남이장군의 죽음과는 상관이 없고, 남이 장군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역모죄와 유자광의 고발로 시작을 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유자광이 남이 장군의 시를 엿듣고 男兒二十未平國(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이라는 문장을 男兒二十未得國(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바꿔서 권력에 쟁점에 있던 남이 장군을 역모죄를 씌었다는 것이다.  유자광의 고발로 남이 장군이 옥에 갇히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몰라서 법정에 세운것은 아니다.  이번 법정을 통해 한명회가 당시 왕을 능가하는 핵심 권력 기관의 수장으로 나라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결재하던 위치에 있었다는 것.  훈구파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대표로 훈구파에 맞서는 남이 장군을 탄압하였으며, 세조 사후에 숙청이 이뤄진 거으로 미루어 당시 혹은 이후로 예상되는 적대 정치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왕도 부럽지 않을 권세를 누렸던 한명회.  조선 전기에 뛰어난 활약을 하며 임금과 백성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남이 장군.  하지만 그는 불과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역모를 꾀했다는 모함을 받아 처형되고 말았다.  역사의 가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항상 꿈을 꾼다.  그랬다면 어떘을까하고 말이다.  만약 남이 장군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무속인들의 신이 아닌 살아있는 장군으로 나라를 위해 살았다면 우리 역사가 조금 더 윤택해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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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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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탄생, 아니 그 이전인 우주의 탄생부터 현대사까지 한번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뛰엄 뛰엄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역사를 좋아하기에 꽤나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내 아이에게 하나씩 알려주려면 쉽지가 않다.  터무니 없이 방대해지고, 무엇보다 너무 어려운 용어들이 튀어나와서 아이도 나도 정신이 없게 된다.  게다가, 나의 용어들은 지극히 종교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기에,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기에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이고 제대로된 세계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쉽지가 않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계적인 석학 곰브리치의 명저라고 되어있는 '곰브리치 세계사'는 세계사 입문서의 결정판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인류 진화에 관한 진짜 옛이야기'라고 말이다.  '그정도는 내가 더 잘하지'라는 호기로 시작된 『어린이를 위한 학문시리즈』의 일환이었던 세계사 이야기는 1936년 출간되어 출간되자마자 5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단다.  작가 말년에 본인의 책을 번역하면서 "『곰브리치 세계사』를 다시 읽어 봤더니 정말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더구나. 내가 봐도 훌륭한 책이야!"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니, 아흔두 살의 생을 마감한 곰브리치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부담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갈 수 있는 책임에도 틀림이 없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지구 탄생을 시작으로 말을 하고 음식을 만들구 도구를 이용하는 역사상 가장 위해대 발명가들로 넘어간다.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있는 위대한 발명가들과는 괴리감이 있지만, 읽다보면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방대한 세계사를 풀어내는 방법이 독특하다.  분명 연대순인듯 하지만, 그렇지 않고, 목차 또한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신은 오직 하나뿐',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마호메트는 신의 예언자다'처럼 상반된듯 보이지만, 세계사속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고, 간결한 문맥으로 이야기를 전해준다. 곰브리치가 만들어낸 세계사 속 목차들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이게 뭘까하는 궁금증 말이다. '천둥 번개가 치던 시대, 별이 빛나는 밤, 기사 시대의 황제, 불행한 왕과 행복한 왕, 마지막 정복자' 처럼 여긴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하고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들이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하 듯 이책은 세계사 입문서다.  시대순, 연도순으로 타이트하게 풀어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충분히 의문을 갖게 만들고, 다른 책들을 찾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들이 그리스도교와 연결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슬람 문화를 들려주면서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간 여정을 보여주며, 아시아의 사상을 들려준다.  문화는 떼어내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화를 떼어내어 이해하려 하고, 의문을 품을때가 많다.  하나로 이어지는 끈을 곰브리치는 파악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짧고 간결한 이야기책 같은 『곰브리치 세계사』가 세계사 입문서로서 빛을 발한다.  더 깊은 내용은 찾아보면 된다.  그전에 발을 담가보고 싶다면 이 책만한 입문서는 드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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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방석 -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따듯한 세 편의 가족 이야기
김병규 지음, 김호랑 그림 / 거북이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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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는 아동 동화는 표지부터 눈이 부실정도로 현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게 눈부신 동화들 사이에서 만난 『꽃방석』은 예전에 나온책인가 할정도로 수수하게 다가왔다.  큼직한 글씨로 책장을 펼쳐서 한시간이면 거뜬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김병규 작가의 신작은 세상에서 가장 큰분, 넉넉한 분, 너그러운 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짓말 엄마와 모르는 척 딸, 속상한 아빠와 크는 아들, 진짜,진짜 우리 할머니. 이렇게 세파트로 나뉘어진 글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다가오지만,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달분이의 엄마는 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 엄마가 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는게 창피한 달분이는 엄마를 모른척하고, 학교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줄때는 먹기가 싫었다.  급식이 먹기 싫었고, 식당에서 반찬을 나눠주는 엄마도 보기 싫은 달분이.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예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 엄마가 학교 식당에서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보면서 달분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급식을 받으면서 "엄마! 김치 더 주세요!"를 외치는 달분이.  달분이가 커가면서 엄마의 마음도 푸근해진다.

 

   달풍이가 동네 책방에서 왜 책을 슬쩍 했는지는 달풍이도 의아해한다.  그저 읽던 책을 두고 올수가 없었다.  화물 회사의 일용직 짐꾼인 아빠는 지금까지 도둑맞은 수백 권의 책값을 물어내라는 억지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아!'하는 한숨을 쉬는 아빠를 보면서 달풍이는 다시는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거라는 다짐을 하고 "아들은 부모님이 좋다고 여겨질 적에 '고맙습니다.'  제 잘못을 깨달았을 때 '죄송합니다.'이 두마디만 잘하면 되는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세상에서 가장 큰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가 달풍이만 위한다고 입을 뾰족하게 내밀던 달분이. 시골에서 작은 구멍가계를 하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으로 예쁜 꽃방석 두개가 엄마, 아빠에게 주어졌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할머니가 얼마나 달분이를 사랑했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꽃방석에서 발견된 할머니의 편지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꽃방석보다 더한 금방석에도 앉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와 아빠,엄마,달분이,달풍이 모두에게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분으로 남아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모두가 가족임을 보여주고 있고,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아빠, 엄마, 할머니는 꽃방석에 앉혀 드려야 할 어른들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엄마와 딸 이야기, 아빠와 아들 이야기,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꽃방석』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꽃방석의 의미와 함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 시대에 이런 수수한 이야기가 말이 될까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품어주는 것이 당치 않다면 누가 가족이라고 하겠는가?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온한 곳이 가정이라는 사실을, 가족과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작가는 잔잔한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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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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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형규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무채색 가족』이었다.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얼마나 열광을 했었는지 모른다.  순수하다 못해 뇌가 깨끗한 조민희와 그의 가족들은 처음 이야기를 만나면서 이 이야기가 뜰까 싶었는데, 이게 회가 거듭할 수록 요즘 말로 꿀잼, 졸잼이 아니던가?  누군가는 처음 웹툰으로『무채색 가족』을 만났을 때, 어디가 웃음포인트인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했었고, 나 역시 그랬던것 같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도대체 어디서 웃어야할지 몰랐었는데, 어느 순간 민희에게 동화되어 코믹이 아닌, 사람냄새를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강형규 작가가 쓸개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를 아는 이들은 당연히 열광 할 수 밖에 없었다.

 

 

  국적도, 학적도 가지지 않은 존재, 무적자.  신체 기관의 일부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조선족의 미신에 따라 붙여진 이름, 딴낭, 쓸개.  이제 이 아이의 존재가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보다 쓸개의 양아버지, 마오수.  다섯 번 결혼한 재주 좋은 이 양반은 여자의 엉덩이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래서 모든걸 청산하고 쓸개의 양아버지가 되었겠지만, 이제 죽을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감님이 쓸개에게 비밀을 알려주겠단다.  쓸개의 엄마를 만났던 날, 마오수는 김해정과 쓸개만 만났던 것이 아니었다.  김해정이 타고온 부서진 배에 실려있던 금 400kg.  월병모양의 금덩어리들.  밖으로 나오면 안되는 금덩이들.  이젠 모든건 쓸개에게 넘어간다.  유통할 수 없었던 월병모양의 400kg의 어마어마한 금덩어리들을.

 

  쓸개 2권은 쓸개의 생물학적 부모인 길학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성실 하나로 종로 주단거리의 신용을 쌓았던 젊은 청년, 길학수. 그가 어떻게 세실리라 포목상의 주인이 되었는지 그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주단을 중국으로 가져가 수를 놓아 다시 한국으로 가지고 오면 금액이 배가 되는데, 이 물건을 맡길 사람으로 학수청년만큼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중국을 오가면서 학수가 만나게 된 또 다른 거래. 장물인 금을 중국에서 제련을 해서 다시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오면 되는데, 금을 본 학수의 눈이 변했다.  누구도 주인이 아닌 금이 눈앞에 있고,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금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사람은 언제 겁을 먹을까?  두려움을 주면 겁을 먹는다.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으로 상대와 줄다리기를 했을때 먼저 그것을 깨는 쪽이 이기는 게임.  이 두려움의 법칙을 길학수는 알았고, 두려움에 해정은 딴낭을 데리고 한국으로 피해버렸다.

 

  과거와 현재가 교묘하게 교차되면서 보여진다.  분명 쓸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길학수의 모습이 보여지고, 길학수의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쓸개의 모습이 보여진다. 머릿발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딴낭과 눈빛이 변해버린 길학수.  이들의 관계는 부자 지간이지만, 그런 모습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희재와 함께 밀항을 한 쓸개.  쓸개와 희재.. 아니, 금의 행방을 찾아 중국으로 움직이는 길학수의 하수인들.  두려움으로 길학수에게 복종할수 밖에 없었던 이정환에 아킬레스건을 쓸개는 용케도 찾아낸다. 아니,한번에 찾아낸걸 보면 천재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길학수 밑에서 길학수의 충견노릇을 하고 있는 인물들은 조선족이나 혼혈인듯 보인다.  그들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금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  주인은 없지만 제대로 나올 수 없는 금덩어리. 

 

  이 금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돈 많은 이들은 해결이 가능한지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금에 꿈틀거리는 욕망들을 쓸개는 영리하게도 이용하기 시작한다.  금을 얻기 원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쓸개에게로..  오직 엄마를 찾고 싶은 유아적인 쓸개에게 금은 그저 엄마의 흔적일 뿐이었으니까.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는 책을 통해서 만나봐야한다. 이 어마무시한 스케일을 여기서 풀어낼 수는 없다.  책으로 만나든, 웹툰으로 만나든 만나보시길.  강현규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들에 빠져 들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하겠지만, 그 재미가 쏠쏠할것은 백프로 보장한다. 이제 무채색 가족을 시작으로, 라스트와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만나고 요즘 연재를 시작한 또 다른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 말이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강형규작가의 늪에 나 혼자 빠지기엔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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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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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못하는 향기가 있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던 날 바람에 머리위로 날리던 아카시아는 향기을 품어냈었다.  내 기억 속 아카시아 향기는 아빠의 냄새로 남아있다.  이젠 아빠라는 말보다 아버지가 더 자연스러워졌고, 그 시절의 아빠의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아카시아 향기는 젊은 시절 당당하고 멋졌던 아빠를 떠올리게 만든다.  몇해전에 아버지께 아카시아에 대한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시는걸 보면 내게만 강렬한 향기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집 작은 녀석이 엄마 냄새라고 우기는 비누냄새는 어쩜 내가 아카시아향을 맡으면서 아빠의 젊은시절의 떠올리는 것처럼 후에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내리는 커피향기는 하루를 풍요롭게 만든다.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향은 커피맛을 보기도 전에 가슴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에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내려먹는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모든 일상에서 향기를 떠오르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 장미향을 맡으면서 어디서 맡은 향인지 갸우뚱 할때도 있지만, 복숭아 향과 장미향의 오묘한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내가 사물에서 향기를 맡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필립 클로델의 『향기』는 Acacia(아카시아)에서 Voyage(여행)까지 그가 경험하고 여운으로 남아있는 향기를 그려내고 있는 에세이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기에 당연히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냄새와 기억에 대한 그리움과 삶을 다룬 산문집을 턱하니 마주하게 될지는 몰랐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한 그리움이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묘한 책이다.

 

  작가의 공감각능력은 일반인의 그것을 확실히 뛰어넘는다.  어린시절의 향기는 그 시절을 보여주고 있기에 작가는 양배추에서 비루한 향을 끌어내지만, 난 양배추의 향을 좋아한다.  아니, 양배추를 좋아한다.  우리집 큰 아이도 양배추 향을 싫어하는데, 이 글을 읽게 되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를 만났음에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호텔의 향기는 어떨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무향이 호텔의 향기라고 이야기를 하는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에 동조하게 된다.  나를 지우고 내 전에 있던 이들의 향기를 지우는 곳이 호텔이니 말이다.  a부터 v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글이 쓰여졌기에 어린시절 이야기와 성년의 이야기가 뒤섞여서 보여지고 있다.  처음엔 성장 수필처럼 보여지다가 갑자기 어린 딸의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했던 이유는 글의 짜임 때문이었지만, 작가의 의중은 그에게 남겨진 향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판사에서 키워드로 뽑아낸 것처럼 여름에 내리는 흰 눈 같던 아카시아,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젊음을 되돌려주던 메낭 스킨, 떨리던 첫 키스의 순간으로 안내하는 허브 향, 산책하던 숲에서 만난 동물의 사체에서 느끼는 폭력의 기억, 계절을 알리는 강물과 숲의 냄새, 사랑하는 삼촌이 남기고 간 낡은 스웨터, 노동의 숨결이 배어나는 담배 냄새, 선크림과 야외 수영장에 깃든 태양과 여름의 기억, 최고의 간식이었던 구운 베이컨과 마늘 향, 달콤한 과자의 풍미를 더하는 계피 향, ‘추위를 타는 이웃처럼’ 빽빽이 꽂혀 있는 책에서 풍기던 묘한 곰팡내, 방금 새로 간 침대 시트의 포근하고 청결한 향기, 이국의 도시에서 맞는 밤과 정열의 냄새, 가장 평안하고 숭고한, 잠든 아이의 살냄새. 향긋하고, 알싸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고, 고소하고, 매콤하고, 씁쓸하고, 퀴퀴하고, 때로는 후각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려낸 듯 재탄생된 추억과 향기의 목록들은 읽으면서 나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억으로 만들어진 향기들이 추억이 될때가 종종있다.  한 순간의 풍경이 향기로 다가오고 그 풍경이 향기와 함꼐 추억이 되기도 한다.  내 어린시절 아카시아 향처럼 말이다.  아마, 글의 처음이 '아카시아'였기에 책을 읽는 내내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아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책의 마지막을 읽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는 속을 메스껍게 만들고 버스의 휘발류 냄새가 얼마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필립 클로델의『향기』는 휘발유 냄새와 함께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맡았던 향기보다 내가 살아갈 날 동안 맡게 될 향기가 훨씬 다양할 것이다.  내 어린시절에 경험하고 느꼈던 것보다 근 10년간의 경험이 훨씬 다양하니 말이다.  아이들 역시 새로운 경험이 향기와 함께 버부려져 새로운것을 기억하게 될것이다.  그 향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만들 수 있는지를 필립 클로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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