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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목민심서 - 상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평점 :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2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640만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황인경 작가의 <소설 목민심서>가
재 출간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고 황인경 작가의 10년간의 자료 수집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다산 선생의 일생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기에
대하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당시 시대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천재인 다산의 삶은 목민(牧民)을 위한 삶이었다. 그의
일대기를 황인경 작가와 함께 다라가다보면 다산이 200여 년 전, 세상을 개혁하지 안흐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들려온다. 이 시대의 다산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128/pimg_7045411761143618.jpg)
약용이 문간방에 세들어사는 목수 천만호를 불쌍히 여겨 솜트는 기계를 발명하는는 내용으로 <목민심서>의 상권이 시작된다.
약용의 천재성은 솜트는 기계뿐 아니라 화성증축시에 사용된 거중기를 통해서도 보여지지만, 여러권으로 분책되어 찾기 힘든 내용들을 한장의
도표로 그려내 임금께 드리는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왜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상권은 정조가 사도세자를 잃은
해인 임오년에 태어난 약용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는 모습과 함께 정약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천재는 살아나기가 힘이든가 보다. 임금으로부터 무한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인물들에게서 약용을 구해내기가 어찌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용의 천재성과 주신관계보다 상권에서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조선 천주교의 태동이다.
천주실의, 서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약용을 제외하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것이다. 그러기에 <목민심서>를 통한 정약용의 일대기의
전반부는 천주교 태동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천주교 태동을 만나게 되는 기회는
적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배교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작가의 글 덕분에 그 시대상을 더욱 세세하게 알수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 천주실의, 서학을 통해 들어온 천주, 하늘의 아버지는 억압박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영.정조 시대가
조선 후기시대 중 그래도 잘 사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힘있는 권력자의 주먹이 바로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태평을 피부로
느낄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승훈, 이벽을 필두로 불기 시작하는 천주교의 바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돌리던 똑똑한 남인 청년들을 사로잡았고, 그 속에는
약용의 형제들도 포함이 된다. 후기 조선 사회는 봉건적인 씨족 사였였기에 초기 천주교도들의 관계 역시 인척간이 많고 정치적으로는 남인 세력이
주를 이를 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이승훈은 이가환의 생질이며 정약용의 자형이었고, 이벽은 정약현의 처남이며 황사영과 홍재영은 약현의 사위였다. 홍재영은 홍낙민의 아들이며
홍봉주는 손자였고, 정철상과 정하상, 정정혜 등은 정약종의 자녀이고, 이수광의 손자 이윤하는 권일신의 매부이며 안종복은 권일신의 장인이 된다.
이렇듯 약용의 가깝고 먼 인척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초기 천주교사를 주도해 갔다. 초기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넘어오면서 처음엔 본래 자리하고
있는 신앙관과 융합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때문에 제사제도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분파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조선 초기 천주교사에서 이승훈이 세번이나 배교를 하고, 이벽이 배교 후 쓸쓸한 죽음을 맞은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신앙보다는 학문에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그러기에 정약용 역시 학문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약용을 시기하는 인물들에게는 천주학쟁이 정약용만큼 타격
대상이 되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같은 남인인 홍낙안, 목만중, 이기경은 벽파들의 앞잡이가 되어 남인의 우두머리들을 없애고 자신들의 권세를
위해서 모든 방편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들의 세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모든 시간을 약용을 잡기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시기, 질투의 나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들이 어제 200년전 조선땅에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상소가 올라올때마다 약용을 약식으로 유배 보냈다가, 다시 올려오기를 수없이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암행을 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영화의 모티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디서나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며
목사 천만호가 지어준 죽란사(竹欄舍)에서 약용과 비슷한 이들이 모였으니 이들이 죽란시사(竹欄時社)이다.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되 아부를 경멸하고, 고관대작 알기를 정치 모리배꾼 정도로 치부하고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었고, 재능과 주견이 뛰어나 가히 치열한
설전과 학문적 비판력을 견줄 수 있는 죽란시사는 이주신, 이치훈, 윤지눌, 한치웅, 홍약여, 이성욱, 이양신, 유진옥, 심화오, 신경보,
한원례, 이휘조, 채이숙, 정약전과 정약용이었다. 이런 수재들이 나라 살릴길을 도모해야함에도 세상은 그들을 초야에 뭍히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사실과 픽션을 오고가면서 <목민심서>상권은 정약용의 젊은 시절을 그와 함께 동거동락하던 인물들과 절대 신뢰를
보여주는 정조의 사랑과 함께 조선 천주교의 태동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기에, 목민이 되고자 하는 약용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