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민심서 - 상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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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2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640만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황인경 작가의 <소설 목민심서>가 재 출간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고 황인경 작가의 10년간의 자료 수집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다산 선생의 일생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기에 대하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당시 시대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천재인 다산의 삶은 목민(牧民)을 위한 삶이었다.  그의 일대기를 황인경 작가와 함께 다라가다보면 다산이 200여 년 전, 세상을 개혁하지 안흐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들려온다.  이 시대의 다산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용이 문간방에 세들어사는 목수 천만호를 불쌍히 여겨 솜트는 기계를 발명하는는 내용으로 <목민심서>의 상권이 시작된다.  약용의 천재성은 솜트는 기계뿐 아니라 화성증축시에 사용된 거중기를 통해서도 보여지지만, 여러권으로 분책되어 찾기 힘든 내용들을 한장의 도표로 그려내 임금께 드리는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왜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상권은 정조가 사도세자를 잃은 해인 임오년에 태어난 약용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는 모습과 함께 정약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천재는 살아나기가 힘이든가 보다.  임금으로부터 무한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인물들에게서 약용을 구해내기가 어찌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용의 천재성과 주신관계보다 상권에서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조선 천주교의 태동이다.

 

  천주실의, 서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약용을 제외하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것이다.  그러기에 <목민심서>를 통한 정약용의 일대기의 전반부는 천주교 태동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천주교 태동을 만나게 되는 기회는 적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배교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작가의 글 덕분에 그 시대상을 더욱 세세하게 알수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   천주실의, 서학을 통해 들어온 천주, 하늘의 아버지는 억압박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영.정조 시대가 조선 후기시대 중 그래도 잘 사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힘있는 권력자의 주먹이 바로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태평을 피부로 느낄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승훈, 이벽을 필두로 불기 시작하는 천주교의 바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돌리던 똑똑한 남인 청년들을 사로잡았고, 그 속에는 약용의 형제들도 포함이 된다.  후기 조선 사회는 봉건적인 씨족 사였였기에 초기 천주교도들의 관계 역시 인척간이 많고 정치적으로는 남인 세력이 주를 이를 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이승훈은 이가환의 생질이며 정약용의 자형이었고, 이벽은 정약현의 처남이며 황사영과 홍재영은 약현의 사위였다.  홍재영은 홍낙민의 아들이며 홍봉주는 손자였고, 정철상과 정하상, 정정혜 등은 정약종의 자녀이고, 이수광의 손자 이윤하는 권일신의 매부이며 안종복은 권일신의 장인이 된다.  이렇듯 약용의 가깝고 먼 인척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초기 천주교사를 주도해 갔다.  초기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넘어오면서 처음엔 본래 자리하고 있는 신앙관과 융합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때문에 제사제도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분파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조선 초기 천주교사에서 이승훈이 세번이나 배교를 하고, 이벽이 배교 후 쓸쓸한 죽음을 맞은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신앙보다는 학문에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그러기에 정약용 역시 학문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약용을 시기하는 인물들에게는 천주학쟁이 정약용만큼 타격 대상이 되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같은 남인인 홍낙안, 목만중, 이기경은 벽파들의 앞잡이가 되어 남인의 우두머리들을 없애고 자신들의 권세를 위해서 모든 방편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들의 세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모든 시간을 약용을 잡기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시기, 질투의 나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들이 어제 200년전 조선땅에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상소가 올라올때마다 약용을 약식으로 유배 보냈다가, 다시 올려오기를 수없이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암행을 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영화의 모티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디서나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며 목사 천만호가 지어준 죽란사(竹欄舍)에서 약용과 비슷한 이들이 모였으니 이들이 죽란시사(竹欄時社)이다.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되 아부를 경멸하고, 고관대작 알기를 정치 모리배꾼 정도로 치부하고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었고, 재능과 주견이 뛰어나 가히 치열한 설전과 학문적 비판력을 견줄 수 있는 죽란시사는 이주신, 이치훈, 윤지눌, 한치웅, 홍약여, 이성욱, 이양신, 유진옥, 심화오, 신경보, 한원례, 이휘조, 채이숙, 정약전과 정약용이었다. 이런 수재들이 나라 살릴길을 도모해야함에도 세상은 그들을 초야에 뭍히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사실과 픽션을 오고가면서 <목민심서>상권은 정약용의 젊은 시절을 그와 함께 동거동락하던 인물들과 절대 신뢰를 보여주는 정조의 사랑과 함께 조선 천주교의 태동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기에, 목민이 되고자 하는 약용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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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지구촌 학교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16
안선모 지음, 김석 그림 / 풀빛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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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함께사는 세상이 벌써 16번째로 접어들었다. 지구촌 종교이야기로 시작된 풀빛의 『함께 사는 세상』시리즈는 출판사의 첫 의도처럼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기에 어린이들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넓은 시각을 키워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기획의도에 딱 맞는 책이다.  접근도 용이하지만, 대륙별로 분류해서 나라별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의 눈에도 쏙쏙 들어오고, 짧은 호흡으로 읽을수 있기 때문에 한번에 읽어 내려갈 필요가 없이 쉬엄쉬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시리즈다. 게다가 재미있다.  처음 한권이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다음권을 부르고 있다.

 

  초등학교는 겨울방학이 끝나서 학교를 가고 있고, 중고등학교는 아직 방학중이다.  우리집 작은 아이는 누나는 집에 있는데, 혼자만 가는 학교가 어찌나 억울한지를 성토하기 바쁘지만, 학교는 열심히 다닌다. 너무 놀기만 해서, 그냥 학교를 다니지 말고 열심히 놀라고 했더니, 학교에 가야 놀수 있다고 하는 아이의 답이 우습기도 하고, 학교란 어떤곳인가 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둥글둥글 지구촌 학교 이야기』를 같이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후에 어땠어하고 물으니, 그저 씩~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다행이란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천천히 걸어도 10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학교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의 학교를 읽고 아이가 체감하는 것은 시설보다는 걸이와 교통수단인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인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까지의 학교 이야기들이 나와있는데, 아이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잘사는 북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이들의 이야기인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통교육을 배우는 학교들도 있고, 흙투성이 바닥에 앉아 필기도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도 밝고 희망에차서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여학생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다가 이제야 가게된 아이들도 있고, 전통인형극을 배우는 학교나 사원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는것이 학교의 방편인곳도 있다.  아시아를 넘어서서 만나게 되는 유럽의 학교들은 귀족교육을 받는 곳도있고, 발도르프 교육을 받는 곳도 있지만, 학교를 통해서 협동을 배우고 올바른 인재를 길러 내는 엘리트교육을 위주로 성적표도 숙제도 없는 스웨덴같은 곳도 있다.  하지만 어디 그런 곳만 있겠는가?  꿈을 찾아주는 도자기 학교가 있는 이집트, 코란과 탈무드를 공부하는 튀니지, 국제화를 외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있으며, 초콜릿 만드는 법을 배우는 벨리즈나 아우이트의 말과 전통을 이어나가는 알래스카의 학교들도 존재한다. 

 

  우물안 개구리는 세상을 다 볼 수가 없다.  아이들에겐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전부이기에 다른곳은 모른다.  몇해전에 큰아이가 필리핀을 다녀와서 그곳과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되었는데,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현대 사회는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들을 용이하게 하지만,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찾는 것과 스치듯 지나가는 화면은 차이가 있다.  1년 내내 추운 나와와 1년 내내 더운 나라가 공존하는 곳이 아시아라나는 것도 학교를 가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책을 통해서다.  오세아니아는 외딴 산지에 살아도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정규 수업을 받기도 하고, 아메리카는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이들의 모습의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곳이 존재하고,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뭔가를 꼭 배우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글처럼 다른 학교, 다른 교실, 다른 칠판과 교과서, 다른 선생님을 통해서 '세상이 참 많이 다르구나'를 느끼고 이 다른 세상과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조금은 생각하길 바란다.  아이들 동요속에 자꾸자꾸 걸어나가 지구 한바퀴를 도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다름을 인정해야하고, 그 속에서 새롭고 더 낳은 것을 발견해 나가야 할테니 말이다.  <함께 사는 세상>시리즈의 취지처럼 사는곳도 음식도 생활 습과과 문화가 다르지만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같은 이유는 지구는 한 마을이고, 함께 살아가는 한 마을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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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왕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3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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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에 읽은 시리즈 중 최고는 단연 『사형집행인의 딸』이었다.  작가가 밑그림으로 그려놓은 시대상이 얼마나 치밀한지 아이들과 함께 어렸을때 읽었던 세밀화 그림책을 떠올리게 했고, 책을 읽는 동안 생각나는 역사적 지식들은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지금 올리퍼 푀치가 만들어낸 뛰어난 이야기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다.  엉뚱하다고 생각이 들던『거지왕』이라는 제목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고 있으니,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이 책장을 덮고 이렇게 몇주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내 앞으로 튀어나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600년대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사랑은 어느곳에서나 일어났는지, 의사집안의 아들과 사형집행인, 우리식으로는 망나니집안의 딸의 사랑이야기가 전작의 기본 흐름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이야기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독자를 끌어 모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7년 11월이 프롤로그로 나오고 있다.  현대가 아닌 시점은 언제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숀가우의 사형집행인이 야콥 퀴슬의 이야기가 1662년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25년전으로 올라가야한다.  전쟁으로 광기에 둘러쌓여진 용병들의 행동은 잔인함을 넘어 괴물을 세상에 던져놓은것처럼 보여지고, 그 가운데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딱 거기까지다. 프롤로그는.  시간은 순식간에 퀴슬을 누이동생을 찾아 떠난 레겐스부르크로가는 뗏목위로 옮겨놓으면서 프롤로그는 잊게 만들어 버린다.  사형집행인에게 시집가기 싫어 레겐스부르크의 목욕탕 주인인 안드레아스 호프만을 따라 떠나버린 엘리자베트가 병에 걸렸다는 편지는 퀴슬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퀴슬은 숀가우에서 레겐스부르크로 움직인다.  하지만 누이동생의 집에서 퀴슬은 피로 가득찬 욕조안에서 누이동생과 호프만을 보게되고 레겐스부르크의 경비대는 퀴슬을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감옥에 가둔다.  

 

  독자의 눈에는 분명 누군가의 모함이라는 것이 보이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알수가 없다.  어느 누가 숀가우의 사형집행인을 노리고 있을까?  아버지가 떠난 숀가우에서 사형집행인의 가족들은 여전히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자신들의 안식을 위해 막달레나를 마녀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게다가 광장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워야하는 사형집행인의 가족이라니.   숀가우가 아닌 다른곳으로 떠난다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막달레나의 결심은 지몬과 함께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고모가 살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곳에 도착한 후 퀴슬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도시에나 있는 사형집행행은 레겐스부르크도 마찬가지다.  퀴슬만큼 대담하고 약학에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필립 토이버.  토이버에 눈에도 퀴슬이 누명을 쓴것이 보이지만, 그에겐 힘이없다.  퀴슬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막달레나와 지몬이 움직이면서 이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막달레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베네치아 대사인 실비오 콘타리니,  뗏목 마스터인 카를 게스너,  거지들의 왕인 현자 나탄,  주교의 양조사인 후베르투스 신부와 히에로니무스 라이너, 요아힘 케르셔, 도미니크 엘스페르거뿐 아니라 한스 라이저, 파울루스 수사, 미치광이 요하네스 같은 거지들의 이야기가 퀴슬의 용병시절과 교차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형집행인이 되기 싫어 들어갔던 군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끊임없이 퀴슬에 눈앞에 과거를 되새기게하는 문자들이 보여지지만 봉인해버린 기억은 좀처럼 수면위로 올라오질 않는다.  퀴슬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음에도 막달레나와 지몬은 사건해결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 사랑싸움으로 고달프다.  지몬보다 조금도 우월해보이지 않지만, 베네치아 대사라는 신분과 막달레나와 사소한 행동들은 지몬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싸움 하느냐 퀴슬을 구할수나 있을까 싶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숀가우의 사형집행인의 딸과 의사의 아들이다.

 

  서로가 얽히고 설킨 가운데 거지들의 왕인 현자 나탄은 지몬과 막달레나에게 레겐스부르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인물들을 연결시켜준다.  사형집행인만큼 사회적 약자인 거지들.  거지들이 얼마나 훌륭한 연극배우들인줄 누가 알았겠는가?  숀가우에서 부터 밑밥으로 뿌려지던 맥각은 레겐스부르크에선 두터운 깔개가 되어 나타난다. 퀴슬을 죽이려는 음모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죽임을 당하는 창녀들의 이야기는 두개의 커다란 줄기로 나아가다가 '사형집행인의 딸'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하나의 지류에서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곳을 보고 달려가다가도 그들은 항상 한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해결해낸다.  깔려있던 복선들은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하지만,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기에 긴장감을 늦출수가 없게 만들고, 그 덕분에 『사형집행인의 딸』은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이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막달레나와 지몬의 러브스토리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던 모든이들에게 답을 들려주는 『거지왕 - 사형집행인의 딸 3』은 출판사에서 장담하듯이 이 시리즈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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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마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2
마거릿 마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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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의 존재를 믿는가?  갸우뚱도 아니고 말도 안된다고 단정을 지어버릴 나이가 되어버렸다.  물론소설 속 마녀라면 읽으면서 동화되어 믿는 듯 하고, 영화 속 마녀들 역시 그런다.  역사 속 마녀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권력에 희생양인 여인들이 생각이 나니, 난 마녀를 믿지 않는다고 단언할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로 만나는 마녀들은 매력적이기에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순간엔 오로지 그녀들에게 빠져든다.  원제가 'The Changeover'인 『내 안의 마녀』는 제목 그대로 내면에 내제되어있는 마녀의 힘을 끌어내어 마녀로 전환을 해버린 로라의 이야기다.  이렇게 한줄로 써버리면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을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가 쓴 한줄평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썸'이 빠져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속에 로맨스가 빠져있을리 없는것이 비룡소에서 나온 '블루픽션'중 하나이니 말이다.

 

  블루픽션은 청소년 소설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번에 만난 이야기는 76번째까지 나온 작품들 중12번째 이야기다.  중학생인 딸아이가 좋아하기에 함께 읽는데, 블루픽션은 지금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중간 중간 고전이 섞여있어서 읽는 재미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고, 그러기에 책을 읽으면서 부모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물론,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면이 다분하다.  『내 안의 마녀』를 만나보자.  마녀는 분명 魔女, wicked이니, 여자여야 하는데, 남자 마녀가 있단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자 마녀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로라는 남들에게 없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  섬뜻한 느낌이 들면서 경고를 보내는 무언가를 느끼는 능력.  오로지 로라만 느끼는 능력이다.  아빠가 이혼을 하고 나갈때도 남자 마녀가 전학왔을때도 느꼈던 그 위험한 경고를 로라는 또다시 경험한다.

 

  경고로 인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음에도 로라의 동생 '재코'에게 일어난 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카모디 브라크라는 껍데기만 남아있는듯 한 노인이 재코에 손등에 도장을 찍으면서 로라에게 전해지던 경고는 현실이 되어 지금까지의 무수한 경고보다 강력한 마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끔찍하게 무섭고 힘든 마법을 말이다.  재코는 병원에서 진단할수 없는 병으로 점점 사라져가는데, 엄마에겐 믿을 수 없게도 크리스라는 애인이 생겨버렸다.  재코가 왜 저렇게 아픈 줄 그냥 알고 있는 로라.  마법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마녀들뿐이기에 로라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마녀인 소렌슨 칼라일의 집을 찾아간다. 로라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정말 소렌슨 칼라일이 마녀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소렌슨 본인의 입에서 마녀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고, 로라의 시선과 목소리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로라의 착각인지 아닌지 알수가 없게 만든다. 그렇게 포기할때쯤 마거릿 마이는 마녀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남자 마녀의 존재를 말이다.

 

  마녀의 존재가 드러나고, 이제 로라는 마녀를 통해서 재코에게 걸린 마법을 풀기를 원한다.  바로 풀어주면 편할텐데, 남자 마녀의 마법은 그리 강하지 않은지, 소렌슨의 엄마, 할머니 마녀는 민감자인 로라에게 마녀가 되어 그녀가 마법을 풀라고 권유를 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탈을 쓴 악령 카모디 브라크의 먹이가 되어버린 재코.  재코를 구할 방법은 브라크를 물리칠 힘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녀가 되는 의식을 치러야한다고 하지만, 어떤것이든 처음은 생소하다.  목숨을 건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열네살 소녀는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 소녀와 소년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니, 소렌슨은 로라가 자신을 인지한 순간부터 궁금했을것이고 그 궁금증이 사랑의 감정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마녀의 집안에 태어난 남자아이.  마녀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게하기위해 입양을 보낸 엄마.  결국 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마녀의 끈으로 이어진 소년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을것이고, 그 시선은 아이들의 풋풋한 감정을 건드렸을 것이다.

 

  로라와 소렌슨의 이야기는 로라의 엄마와 크리스 아저씨의 모습을 비교시키면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올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들만 바라보기에는 시들어가는 엄마가 너무 애틋하다는걸 아이는 알아간다.  그리고 브라크에게 조금씩 생명력을 도둑맞으며 죽어가고 있는 재코.  『내 안의 마녀』는 해피엔딩이다.  로라가 어떻게 브라크를 물리치는지 스릴을 느끼게 하고, 로라의 changeover은 언어의 유희로 아름다움이란 이런거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짜릿하지 않은 달달한 사랑이 존재하고, 판타지의 세계같은 세계관이 흐르지만, 이 책은 역시 사랑의 강이 가장 넓고 깊게 흐른다.  동생을 살피는 누나의 마음.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이성간의 또 다른 사랑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만난 가장 근사한 내용은 재코의 말이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해지. 응?  누나가 '참아!'하고 말해서, 나 진짜로 참았어.  이렇게 참았어..." 재코는 주먹을 꽉 쥐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참고 있으니까, 누나가 와서 나 꺼내 줬어."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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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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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학번이다.  누군가는 학생운동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서태지에 빠져있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아니 직장을 다녔다.  내게 그 시절 학교는 회사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곳이었다.  최루탄이 날라다니고 대학로 거리가 웅성거릴때도 내 눈엔 학교 도서관만 보였던 시기였다.  다른 모든것은 사치처럼 느껴졌었으니까.  고등학교때 '전교조'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선생님들로 부터 들었던 '미싱은 잘도도네'라는 노래의 가사는 그저 빨갛고 노란 꽃밭 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다음해에 88올림픽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한해 위 선배들은 무더위에 마스게임을 연습해야만 했었다.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중학교 성적이 상위3%에 들던 선배들도 여상으로 들어온 순간 차별이 시작되었었고, 그런 차별을 빵 하나와 우유 하나와 바꾸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우린 생각을 하면 안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저 '너희는 특별하단다'는 선생님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었으니까,  그렇게 열아홉에 취업을 하고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공부를 해야함을 느꼈고, 그러기에 내 주변에 세상엔 담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시작은 진우가 보낸 청첩장이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친구와 20대를 함께한 모든 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하나의 기억이었다.  공부라면 단연 손을 꼽을 수재들이 다니는 곳, 서울 대학교.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  태의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여 본것은 미학이 아닌, 선배 미쥬였고, 태의는 미쥬를 따라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간다.  태의가 숭배하는 그녀를 따라서.  하지만, 그곳엔 태의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미쥬는 최초의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될 그릇이었으니까.  음류시인인 고학번 현승 선배, '투신(투쟁머신)'이 쓰여진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다니는 대석형, '공대 전체를 집어삼킬 거목으로 자라날' 진우.  의심, 호기심,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학창시절은 대학안에서만 끝날 수가 없었다.  사회에 모든것이 부조리로 느껴지던 시절이었고, 그런 나이였으니까.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넘어가고, 한총련이 NL과 PD로 갈라지던 시기에 학생들은 어느곳이든 들어가야만 했고, 그들은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젊음을 동력으로 하기에 한곳에 머무르지를 않는다.   

 

  태의가 입학해서 만난 동기들과 선배들은 운동권으로, 학생운동에 참여를 했고, 태의 역시 자신의 굳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여를 하게 된다.  전학협이 김우중을 습격하는 과정에 태의가 함께하면서 태의는 경찰의 관찰대상자로 낙인이 찍히고 대공분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의를 지목한 이가 대석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어야 나올 수 있는 곳.  전학협 간부가 대석 형의 이름을, 청녀진보당 간부가 전학협 간부를 불었던 곳.  그곳에서 태의는 진우의 이름을 대고 나오면서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게 된다.  신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던 건가?  학생다운 호기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는것은 아니었을까?  '베티'라는 이름을 버리고 '미쥬'가 된 그녀.  기호논리학을 배우면서 '보수적 자녀->진보적자녀 = 미쥬'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고, '마르크스'에 대해 고민하던 그들의 이야기에 왜 손아람은 D-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진우와 공대학생회장를 두고 경쟁을 펼쳤던 윤구의 이야기.  재료공학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 F학점을 받고 재적이 되어버린 윤구. 

 

  사회 이야기게 귀를 기울이고, 정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내 세상의 좁은 시야를 발견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총의장. 그를 통해서 만났던 세상은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20년이 지나서 듣고 있다.  아직도 그들의 이야기는 진행중이라고 말이다.  분명 그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생소하건만,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  작년에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공존의 히트를 쳤다.  깔깔거리면서 웃기만 했지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가 다가 아니었음을 알았을까?  여전히 나는 사회운동엔 무감각하다.  아니,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여전히 모호하다.  어떤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어떻게 딱잘라서 이야기하고, 하나의 주장을 강요할 수 있을까?  동전의 양면을 내가 보는 쪽만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54편의 이야기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사를 보게 만들고 있고, 그를 통해서 다시 나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는 어쩜 제목 그대로 낙제에서 간신히 복권된 학점인 ‘D-’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F에서 건져지기 위해 아둥바둥 거리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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