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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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학번이다.  누군가는 학생운동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서태지에 빠져있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아니 직장을 다녔다.  내게 그 시절 학교는 회사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곳이었다.  최루탄이 날라다니고 대학로 거리가 웅성거릴때도 내 눈엔 학교 도서관만 보였던 시기였다.  다른 모든것은 사치처럼 느껴졌었으니까.  고등학교때 '전교조'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선생님들로 부터 들었던 '미싱은 잘도도네'라는 노래의 가사는 그저 빨갛고 노란 꽃밭 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다음해에 88올림픽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한해 위 선배들은 무더위에 마스게임을 연습해야만 했었다.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중학교 성적이 상위3%에 들던 선배들도 여상으로 들어온 순간 차별이 시작되었었고, 그런 차별을 빵 하나와 우유 하나와 바꾸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우린 생각을 하면 안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저 '너희는 특별하단다'는 선생님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었으니까,  그렇게 열아홉에 취업을 하고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공부를 해야함을 느꼈고, 그러기에 내 주변에 세상엔 담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시작은 진우가 보낸 청첩장이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친구와 20대를 함께한 모든 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하나의 기억이었다.  공부라면 단연 손을 꼽을 수재들이 다니는 곳, 서울 대학교.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  태의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여 본것은 미학이 아닌, 선배 미쥬였고, 태의는 미쥬를 따라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간다.  태의가 숭배하는 그녀를 따라서.  하지만, 그곳엔 태의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미쥬는 최초의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될 그릇이었으니까.  음류시인인 고학번 현승 선배, '투신(투쟁머신)'이 쓰여진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다니는 대석형, '공대 전체를 집어삼킬 거목으로 자라날' 진우.  의심, 호기심,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학창시절은 대학안에서만 끝날 수가 없었다.  사회에 모든것이 부조리로 느껴지던 시절이었고, 그런 나이였으니까.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넘어가고, 한총련이 NL과 PD로 갈라지던 시기에 학생들은 어느곳이든 들어가야만 했고, 그들은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젊음을 동력으로 하기에 한곳에 머무르지를 않는다.   

 

  태의가 입학해서 만난 동기들과 선배들은 운동권으로, 학생운동에 참여를 했고, 태의 역시 자신의 굳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여를 하게 된다.  전학협이 김우중을 습격하는 과정에 태의가 함께하면서 태의는 경찰의 관찰대상자로 낙인이 찍히고 대공분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의를 지목한 이가 대석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어야 나올 수 있는 곳.  전학협 간부가 대석 형의 이름을, 청녀진보당 간부가 전학협 간부를 불었던 곳.  그곳에서 태의는 진우의 이름을 대고 나오면서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게 된다.  신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던 건가?  학생다운 호기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는것은 아니었을까?  '베티'라는 이름을 버리고 '미쥬'가 된 그녀.  기호논리학을 배우면서 '보수적 자녀->진보적자녀 = 미쥬'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고, '마르크스'에 대해 고민하던 그들의 이야기에 왜 손아람은 D-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진우와 공대학생회장를 두고 경쟁을 펼쳤던 윤구의 이야기.  재료공학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 F학점을 받고 재적이 되어버린 윤구. 

 

  사회 이야기게 귀를 기울이고, 정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내 세상의 좁은 시야를 발견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총의장. 그를 통해서 만났던 세상은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20년이 지나서 듣고 있다.  아직도 그들의 이야기는 진행중이라고 말이다.  분명 그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생소하건만,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  작년에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공존의 히트를 쳤다.  깔깔거리면서 웃기만 했지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가 다가 아니었음을 알았을까?  여전히 나는 사회운동엔 무감각하다.  아니,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여전히 모호하다.  어떤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어떻게 딱잘라서 이야기하고, 하나의 주장을 강요할 수 있을까?  동전의 양면을 내가 보는 쪽만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54편의 이야기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사를 보게 만들고 있고, 그를 통해서 다시 나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는 어쩜 제목 그대로 낙제에서 간신히 복권된 학점인 ‘D-’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F에서 건져지기 위해 아둥바둥 거리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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