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별처럼
캐서린 패터슨 지음, 고수미 옮김 / 열림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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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는 저기 있는 별들과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그러니까 넌 별과 같은 존재인 거야. p. 101

 

 누군가 나에게 너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눈속에 별을 훔쳤다고 하는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원소가 똑같기 때문에 별의 친척쯤 된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걸 누구에게 한 말일까? 11살 조금 넘은 엔젤에게 알수없는 별지기가 이야기를 한다.  넌 별과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사랑을 담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별지기는 누구이고, 한밤중 엔젤은 어떻게 별지기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엔젤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

 

 엔젤은 천사를 닮은 아이다.  이름이 아이의 운명을 갇어놓는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열한살 엔젤에게는 흔히 말하는 보살피는 아빠도, 사랑 넘치는 엄마도 없다.  그렇다고 고아는 아니다.  일찌감치 감옥에 갇혀있는 아빠와, 아이들을 버리는 것에 익숙한 엄마와, 고집이라는 고집은 모땅 다 부리고 있는 일곱살 된 남동생 버니가 엔젤의 가족이다.  버니가 태어난 후 당연히 버니는 엔젤이 돌봐야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소녀가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한 증조 할머니까지 돌보게 되어버렸다. 엄마와 함께한 그 어두운밤. '모건농장길'이 눈에 들어오고, 그곳엔 쓰레기장같은 집과 마귀 할멈같은 할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건 농장에서 하룻밤을 자는 사이, 세상을 원망만 하고, 투정만 부리는 엄마도 사라져 버렸다.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밤. 펑펑 울어도 될 나이인데, 울 수 조차 없는 엔젤앞에 별지기가 나타난다.   그리고 소녀에게 북두칠성을, 북극성을 가르쳐준다.  별은 엔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것.  별이 궁금해 도서관을 찾고, 엔젤은 별지기와 함께 더 많은 별들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1954년에 출간된 한스A.레이의 <별자리 찾는 법>을 읽고, 1996년 발간된 피터 시스의 <별세계의 전령>도 읽는다. 거기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별과 같은 무엇을 가져라>까지.  엔젤에게 별은 삶의 희망이 되어 다가온다.  천사를 닮은 아이.  아이는 별을 보지만, 두렵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지만, 몰래 버니를 데려가 버린 엄마가 그립고, 증조할머니가 산타클로스라 말하는 별지기,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두렵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처럼 살아야한다.  열 한살, 어른처럼 동생을 돌보고, 엄마를 돌보고, 할머니를 돌볼지라도, 아빠가 사준 곰인형, 그리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아이다.  사랑만 받아도 부족한 아이다.  남들 다하는 사춘기의 때도 써보지 못하고, 심술맞게 굴고, 항상 먹을걸 달라는 동생 이지만, 그 동생의 사라짐에 가슴아파할 나이는 아니다. 열한살은.  아니, 그 나이가 열둘, 열셋이어도 아이는 아이다.  너무나 조숙해져 버린 아이.  어리광을 부린다고 받아 줄 사람도 없고,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버린 기억으로 언제나 비상용 택시비를 양말속에 가지고 다니는 아이.  이 아이가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세상은 왜 이리 살기 힘이드는지...  내 맘처럼 살기가 참 힘이든다.  그리고 그걸 알아버린 아이.엔젤.  그래서 아이는 이야기 한다.  "저는 할머니보다 더 어른 노릇하는 데 지쳤다고요.  저는 아직 열두 살도 안 됐어요. 엄마. 어른 노릇은 엄마가 해야 할 일이예요." (p.315).  이말을 들은 아이의 엄마. 한번도 어른노릇 한적없는 아이의 엄마는 바뀔수 있을까?

 

 모르겠다. 참 고운책인데, 이 책이 해피엔딩인지, 세드엔딩인지 조차 모르겠다.  만남만이 전부라면 분명 이야기는 핸피엔딩인데, 그 만남으로 모든게 해결이 될 듯 싶지가 않다.  걱정이 되는 것은 작가가 만들어낸 알수 없는 결말에 대한 불안때문일까?  믿을수 없는 엔젤의 부모.   그리고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까지 엔젤의 짐이 더 많아지는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는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고운 표지와 21세기 판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선전문구에 정말 가슴따뜻할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별이 나온다고 <별>이 될수는 없다.  가슴 아리지만, 재미도 있고,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묘사도 뛰어나다.  읽으면서 엔젤에게 바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니도 한데 때려주고 싶고, 엔젤의 무책임한 엄마에게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따지고도 싶으니 말이다.  하지만, <별>은 아니다.  그냥 이 책만으로 재미있고, 가슴 아리다.  천사를 닮은 아이, 엔젤을 만난 것 만으로 말이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밤의 양치는 목동과 스테파노 아가씨는 찾을 수가 없지만, 토닥여주고 싶고 말해주고 싶다.  엔젤... 별과 사촌인 엔젤. 힘 내렴. 다 괜찮아 질꺼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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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어디에?
디팩 맬호트라 지음, 김영철 옮김, 호연 그림 / 이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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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말에 인터넷 책사이트에서 하는 시상식에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 사회자가 김영철씨였다.   개그맨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가, 내년엔 자신의 책으로 시상식에 오고 싶다는 말을 했었고, 그제서야 그가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그정도 였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를 다시 봤다.  영어와 무관하게 살아오다가 서른에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영어책을 세 권이나 냈고, 번역가로 또한번의 변신을 꿈꾸고 있단다.  거기서 띵하고 머리속에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짧은 책이다. 읽는 시간이 한시간이나 걸렸을까?  그런데, 이 먹먹함을 뭘로 표현해야할까?  맥스를 닮았다는 번역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를 닮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라...  쥐가 치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톰과 제리'의 영향으로 인해서, 치즈를 좋아하는 동물은 쥐부터 생각이 난다.  그리고 지금 <치즈는 어디에?>는 기상천외한 세마리의 쥐가 등장을 한다.  좋은책을 읽으면서 미로에 순종하면 살아가는 쥐들 속에 언제나 미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부딪치고 생각을 하는 맥스가 있다.   사람들 세계의 현자처럼 미로도, 치즈도 잘 알고 있는 제드가 있다.  그리고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빅이라는 이름의 쥐도 있다.

 

 미로속엔 맥스, 제드, 빅보다는 순종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쥐들이 훨씬 더 많다.  끊임없이 치즈를 향해서 달리고, 치즈가 옮겨지면, 또 다른 치즈를 향해는 달리는 쥐들.   그들은 왜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제드가 이야기를 한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행복을 좇아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행복을 좇는 그 자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행복을 찾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p.41). 나는 내가 좇고 있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은 쥐들은 미로를 넘어서 세상을 보기도 하고, 미로를 통과하기도 하고, 자신의 주먹으로 길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자와 같은 제드는 맥스가 미로넘어로 간 사실과, 자신이 미로를 통과한것을 그저 똑같은 일이라고 치부를 해버리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그의 말조차도 너무나 어렵게 다가온다.  "당신은 먼저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이 당신의 상상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 거죠.  나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했을 뿐이죠.  내가 하겠다고 다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p.89).  역시, 현자들의 말은 어렵네 하고 그냥 넘겨야 할까?  번역자의 말처럼 맥스, 제드, 빅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인간관계를 맺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진심으로 사랑하고 힘을 실어주면서 말이다.    멈추질 않길, 움직이길, 변화하길 바란다는 번역자의 말을 읽으면서 왜 이리 먹먹한지 모르겠다.  글로 쓰는 사랑과 누군가의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 어쩜 이리도 어려운지.   내 이기를 내려놓는 것이 왜 이리도 힘이든지 모른다.

 

 나는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짧은 책이 나를 휘저어 놓고 있다.  나는 정말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크지만, 그렇게 큰 것은 아닌, 이 세상을, 나의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이건 정말 내 삶의 방식인지,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인것 같지만, 내가 상상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그대로 이 자리에서 주저 앉아, 어린쥐와 늙은 쥐들처럼 누군가 내게 줄, 누군가 옮겨놓은 나의 치즈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을 아닐까? 여전히 나는 내 삶을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지... 나에게 묻는다.  잘 살고 있는거니?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니?

 

미로는 정말 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로는 삶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의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미로는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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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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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워낙 사정이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 2010년 3월 2일

 

 어떤 녀석이 거리낌없이 자신에게 이런말을 한다.  도둑이라고.  그것도 직업이란다.  공부하기도 모잘랄것 같은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에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러니, 도둑놈의 쉐끼라는 말이 나오지.  이 도둑놈의 쉐끼가 일을 내 버렸다.  나와바리라고 하던가?  반에 있는 물건은 손을 데지 말아야지.  아빠꺼라고 자랑하는 지란의 전자사전에 손이 간것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 었단다.  무슨..  자신도 모르게 손이간 전자사전을 팔아버리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세트로 맞춰서, 인터넷에 올리고, 금액은 내리고. 후딱 팔린다. 그리고 판매한 돈은 이통장으로 입금. 완전 범죄를 꿈꾼다.

 

 도둑놈의 쉐끼, 해일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고 한것은 그냥 나온 말이었다.  왜 그런말이 나왔을까?  그래도 할수 있을것 같았다. 곤달걀을 꿈꾸는 아빠와, 백숙을 꿈꾸는 형, 해철.  그리고 아리와 쓰리를 보고싶어하는 해일.  스티로품박스에 부화기를 만들고, 유정란을 안착시키는 그 순간부터 해일은 천재적인 두둑님의 손이 변할수 있을것 같았다. 손은 변하지 않았다.  그손은 그대로 였으니까.  진오의 초코파이를 먹을때도, 무지하게 쌓여가는 건전지위에 몇개의 건전지를 더 던져놓았을때도, 지란 아빠의 넷북을 가지고왔을때도 말이다.  하지만, 그 손과 함께 친구들의 눈길이 함께 하기 시작한다.

 

 있으나 없으나 잘 모르겠던 녀석. 그냥 씨익 웃는게 멋져보이고, 다른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언가를 주던 녀석이 꽤나 시크해 보였다.  그 녀석 주변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욕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진오가, 웃고 있지만 가슴아픈 지란이가,  프로페셔널한 반장, 다영이.  아리와 쓰리를 보겠다는 아이들이 해일이 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해일네 집에서, 고등어를 무지 좋아하는 해일이 어머니의 음식과, 해철느님을 외치게 하는 좀 멋져보이는 해철이 있는 그곳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몇해전에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만났을때의 그 설렘을 다시 만났다.  제목을 읽고는 이게 뭐야 하다가, 책속으로 빠져들어 버린다.  장편임에도 읽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청소년 소설답게 산뜻하다.  도둑.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지만, 무겁거나 슬프다는 느낌보다는 산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이혼한 부모, 미워하지만 미워할수 없는 아빠와 가까워지지 않는 새 아빠사이에서 갈등하는 지란과, 반장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는 다영을 만나면서도 김려령 작가는 호흡을 느리게 만들지 않는다.   부모의 최고사양의 전자기계가 인강이라는 한마디의 꼬리를 내리는 현실을 보면서 묘하게 공감이 간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고교시절은 청춘의 푸른빛이 돈다.  어디로 튈지모르는 무서운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입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어도, 이성을 갖추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애잔하면서도 감출 수 없는 청춘의 빛이 보인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시 고백>속에 녹아있다.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있는 가시들을 스스로 들추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추고 싶은 가시들을 하나씩 빼어 내면서, 아이들은 친구를 만들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왕따도 폭력도 없어서 좋다.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펼쳐지기에 소설속에서는 행복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김려령 작가의 글이 좋다. 그래서 <완득이>라는 참 촌스러운 제목의 글이 좋았고, <가시고백>이라는 생소한 제목의 책이 좋다.  읽고나니, 가시고백이 뭔지도 알겠고 말이다.   열 세살, 내 딸아이에 손에서 이 책이 떨어질 줄 모르고 있으니, 그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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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부름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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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공항에서 우연히 몸을 부닺치지 않았더라면 그와의 인연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수로 휴대폰이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그와의 인연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30초만 일찍, 혹은 30초만 늦게 카페에 들어갔더라면 그와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두 사람을 그 자리에 있게 한 건 바로 운명의 힘이었다. p. 314

 

 매들린의 돌아가신 할머니는 이런 운명을 '천사의 부름'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단다.  천사의 부름.  처음 책을 봤을때 느낌, 음... 기욤 뮈소네.  기욤 뮈소의 그녀가 돌아왔군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종이여자를 기점으로 밝은세상에서 나오는 기욤뮈소책의 일러스트가 이렇게 사랑스럽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  이번엔 어떤 판타지지?  천사의 부름이라는 타이틀을 슬쩍 읽고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도 사후세계나 말도 안되지만, 기욤 뮈소다운 판타지가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처음은 완벽하게 내가 알고 있는 기욤뮈소였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잌한입 베어물고, 부드러운 커피한잔 마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지.  이게 기욤 뮈소지.  그런데, 이게 왠걸...?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기욤 뮈소가 아니다. 신이 난다. 기욤 뮈소가 달달함에 스릴러를 뿌려주고 있다.  그에게서 원했던 이야기. 그를 통해서 듣고자 했던 말도 안되지만,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정신 번쩍 들게 하면서 2011년을 강타 했었던 동유럽 스릴러를 슬쩍 슬쩍 얹혀서는 그에게서 또다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오호~ 그렇지. 이제야 읽을맛이 난다.

 

 여전히 내 핸드폰은 아이폰도 갤럭시도 아니고, 메일을 볼수도 없다.  하지만, 핸드폰이 없으면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기욤 뮈소가 만들어낸 세상 속 매들린과 조나단역시 그렇다.  샌프란시스코와 파리에 살고 있는 이들이 JFK공항에서 만날 수 있는 확율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그들이 그곳에서 만나, 부딪히고, 핸드폰이 바껴버렸다.  그많은 기종 중 똑같은 기종, 똑같은 케이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이었을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것이 아닌 다른 핸드폰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속에 담겨 있고, 그 이야기들 들으면서, 타인이었던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조나단.  잘나가던 쉐프.  모델이던 아내가 자신이 믿었던 친구와 불륜을 저질르고, 그의 인생은 곧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별 다섯개를 상외하던 그를 구해냈던 어린 소녀. 보석같은 주근깨를 가지고 있던 그 소녀를 처음만난 그녀, 매들린의 핸드폰에서 만났다.  매들린을 만나야한다.  매들린. 플라워리스트인 그녀의 삶속으로 그가 들어올지는 몰랐다.  그녀의 과거를 어떻게 그가 알아냈을까?  깊숙하게, 아무도 찾을수 없을정도로 숨겨놓았는지 알았던, 사실들을 조나단이 끄집어 내기 시작한다. 어쩜, 앨리스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녀 앞으로 앨리스의 심장이 배달되었는데... 형사의 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나단이 그녀를 깨우기 시작한다.

 

 일주일간의 핸드폰과의 동거.  그 동거가 사랑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생과 사를 넘는다면 그들의 관계는 일주일이 평생을 같이한 사람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환상의 정원>이라는 꽃집을 운영하는 매들린과,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렌치 터치>를 운영하는 조나단.   휴대폰이 바뀌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책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게 만들어버린다.  굉장한 스피드와 함께 기욤 뮈소의 트래이드 마크같은 사랑이 곳곳에 묻어난다.  매들린의 약혼자와 조나단의 전처를 걱정할 사이도 없이, 어느 순간, 조나단과 매들린의 사랑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응원을 하고 있다.

 

 기욤 뮈소가 표현하는 사랑은 연애에 감정만이 있는것은 아니다.  그속엔 부녀간의 사랑이 있고, 부자간의 사랑이 있고, 우정이 존재한다.  마약으로 인한, 사랑의 왜곡도 있었지만,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사랑이 있어서, 기욤 뮈소의 책들이 좋다.  따뜻하니까.  오싹한 한파에도 사랑으로 인한 따뜻함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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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 인생의 굽이길에서 공자를 만나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1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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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논어를 읽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마흔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미루고 미뤘는데도, 마흔이 휙하고 다가와 버렸다.  그리고 책을 들었다.  이책을 읽을 나이가 된건 맞나?  아직, 마흔에게 논어는 어렵다.  갑작스런 인문열풍의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뺨을 내준후에야 책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우리집 작은 아아조차도 한자 시험을 보겠다고 들썩거리는 것을 보고는 잘 사용하지 않던 한문어휘가 쌍그리 사라지기전에 뜻풀이나 해볼 요량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공선생을 만났다.

 

 논어가 어떤책인지 몰랐다.  그래서 찾아봤다. 논어는 유가()의 성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서()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이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도 함축성있게 기재되었다.   《논어》라는 서명()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인데,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다. 편자에 관해서는 숭작참()의 자하() 등 64제자설(), 정현()의 중궁() ·자유() ·자하()설, 정자()의 증자() ·유자()의 제자설, 그 밖에 많은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라고 네어버백과 사전에서 말하고 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은 <논어>를 모두 101가지 주제로 나누어 원문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그 풀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어린 시절에 외워두었던 성경구절이, 명언들이 내 삶이 힘들때마다 강력한 무기가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알기에 한문장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길에 커다란 돌덩이와 갚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다.  나의 힘으로 되지 않을 때는 나를 넘어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책이라고, 그리고 그런책으로 <논어>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논어>일까?  세상에 그 많은 책들이 있는데, 저자는 왜 <논어>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인문학을 읽지않고, 문제집만 푸는 기계들이 되어서, 아이들이 죽어나간다는 말들을 한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고전이고 철학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합당한 책이 <논어>다.  그런데, 왜? 왜? 인문학을 읽지 않아 죽어나간다는 말들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일까?  그속에 예가 있어서 일것이다.  외동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조차 협동과 배려를 경험하지 않고 커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대응책으로 책을 이야기 한다.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비단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은, 아이들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저자는 입문=> 승당=> 입실=> 여언으로 논어를 이야기 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한 공자의 매뉴얼을 시작으로 공자 총장이 펼치는 감동의 리더십, 행복한 삶을 위한 나의 역할 모델, 행복한 삶을 향한 개성의 형상화, 자기주도적 삶을 위한 덕목과 자기주도적 삶의 핵심가치를 큰 가지로 잡고, 그 속에 101가지의 <논어>속 공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입문은 글자 뜻처럼 들어가는 문이다. 승당은 공선생이 한 이야기를 원문으로 적고있고, 입실은 원문의 뜻풀이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언은 저자의 생각과 함께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게 해준다.    

 

 어렵다.  사서삼경을 우리네 옛 선인들은 그 어린나이에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어렵다. 긴문장을 단 몇단어로 줄여놓은 어구속에 인생이 담겨있고, 그 인생을 풀어내기에는 내가 너무 치기어리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인생의 모든것이 스승이라는 학무상사(學無常師)뿐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이 속에 나와있는 101가지의 문장들을 익히고 싶었다.  내 삶에 얼마나 적용이 될지 알수 없지만,  멋지지 않는가?  여전히 나이 마흔이 되어도 겉멋은 사라지지 않고, 공선생이 말씀하시는 인도 예도 내게는 없는 듯 하다.  논어는 나이 마흔이 되어도 어려운 책이다.  인생의 굽이길을, 굴곡을 마흔이 되면 알게 될거라는 어린 시절의 생각은 내게는 사치인듯하다.  그래서, <마흔, 논어를 읽어야할 시간>은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읽어야할 책이 될듯 하다.  여전히 나는, 뽐나게 한구절 읍조리고 싶은, 겉멋에 사로잡혀 있는 나이 마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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