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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파는 아이들 ㅣ 문학의 즐거움 37
린다 수 박 지음,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4월
평점 :
'잃어버린 소년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개암나무 책이기에 이렇게 가슴끝이 먹먹하게 다가올 책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근간 읽었었던 개암나무의 책들은 읽는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발을 허공에 뜬채로 읽는 그런 기분이 드는 책들이 대부분 이었으니 말이다. 아이책에서 달콤함을 느끼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이책도 그런 책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우물 파는 아이들>이라느 조금은 무거운 제목이었지만, 책을 읽기전 생각은 경쾌하고 발랄한 성장드라마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배경은 남수단이다. 2008년과 1985년의 남수단.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을 하면서 이야기가 풀어져 나간다. 2008년의 남수단. 빈 플라스틱 통을 들고 아침나절의 절반을 꼬박 걸어서 열한살 니아는 바가지로 누런 흙탕물을 퍼서 물통에 물을 담는다. 이렇게 니아는 하루에 두번 물을 길러간다. 그리고 이젠 다섯 살 동생 아키르와 함께 해야만 한다. '아키르는 겨우 다섯살이라 키도 너무 작고 걸음도 느린데,' "그 아이도 배워야지." 다섯살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물통을 들고 흙탕물을 떠오는 거란다. 이곳 수단은. 집에는 밥 먹는 동안만 머물렀다. 이제 다시 연못으로 가야 했다. 연못에서 집으로, 다시 연못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이것이 니아의 하루 생활이었다. 일 년의 일곱 달을 그렇게 살았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p.27)
1985년의 남수단. 전쟁은 2년전에 시작되었다. 남부 출신의 반군들이 정부에 맞서 싸웠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가운데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열살 살바가 있었다. 살기 위해서 뛰어야 했고, 살기위해서 집으로 돌아갈수가 없었다. 그렇게 열살 아이는 부모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그들이 딩카 부족이라는 것과 전쟁터를 피하려고 한다는 것만 알았다. 살바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끝없이 걷는 나날이 계속되었다.'(p.29). 끝없이 걷는 나날 속에서 살바는 삼촌을 만난다. 그리고 삼촌과 함께 걷는다. 살기 위해서. 그 속에서 살바는 친구 마리알을, 삼촌을 잃지만 에디오피아 남민촌을 향해서 걷고 또 걷는다.
2008년의 남수단. 니아의 동네에 낯선 손님 두명이 찾아왔다. 마을사람들이 가끔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서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곳, 비가 오면 모를까, 물이곤 한방울도 없는 그곳에서 물을 찾아주겠단다. 쇠로된 빨간색 기린이 땅을 파고, 착암기가 돌아가려면 시추공에서 계속 물을 흘러야 한단다. 물을 얻기 위해 물이 있어야 한다니. 2009년까지 이어지는 공사. 물주머니의 물이 새고, 새는 곳은 기우고, 새고 기우고 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니아는 여전히 다섯살 동생과 연못으로 간다. 물을 얻기 위해서.
난민촌에서 열일곱이 된 소년. 에디오피아 군인들의 총을 피해 천이백 명 소년들의 지도자간 된 소년은 한번에 한 걸음씩.. 한번에 하루씩, 오늘만 ... 딱 이날만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케냐로 향한다. 그리고 이 소년들은 무사히 케냐에 도착한다. 일년 반이 걸려서 말이다. 난민캠프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살바. 이제 그는 열살에 소년이 아닌, 스물 두살의 청년이 되었고, 뉴욕주, 로체스터에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것이다. 그리고 살바는 아버지의 생존을, 어머니의 생존을 알게된다. "저는 남수단을 위한 사업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일년이 흘렀다.... 그가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살바는 희망을 잃을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삼촌의 말을 떠올렸다. 한번에 한 걸음씩. 한 번에 문제 하나씩. 이 문제만 해결하고, 살바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p.115)
1983년에 시작된 '2차 수단내전'은 여러 당파가 관련되어있는 내전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부에 있는 이슬람교도 중심의 정부와 남부의 비 이슬람교도로 나뉜 싸움이었다. 수백만 명이 영구 실종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 실종자 중 살바 같은 '잃어버린 소년들'은 필사적으로 걸어 남수단, 에티오피아, 케냐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살바는 2009년 12월부터 '수단을 위한 물'대담을 했고, 남부수단에서 딩카 족과 누어 족을 위해 43곳의 우물을 팠단다. 이렇게 2008년의 남수단 소녀, 니아와 1995년의 남수단 소년, 살바는 이어진다. 누어족이 딩카족을 죽이고 서로 적대시 하는 이들이 우물로 하나가 된다. 여전히 싸움은 진행 중이다. 수백 년동안 원수였던 두 부족이 우물로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이제 니아는 다섯살 동생을 데리고 흙탕물이 있는 연못게 가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공부도 할수가 있게 되었다. 우물 하나로 말이다. 굉장히 쉬운 해결책인 듯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살바가 수단으로 다시 들어간것 부터가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해결되어 지길... 해피엔딩으로 끝났음에도 가슴 먹먹한 이 동화가 왜 수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보여지는 걸까?
"고맙습니다. 물을 끌어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니?" "니아" "만나서 반갑다. 니아. 내 이름은 살바야."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