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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전시회에서 만났던 ‘드가’를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책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발레리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화가로만 기억되었던 그를 조금 더 확장하여 제대로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파리 곳곳의 장소를 보다 보니 드가와 함께 파리 예술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의 삶과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사회문화적 배경도 함께 알게 됨으로써 그 당시 파리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드가가 살았던 19세기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혁명과 소요와 전쟁으로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갈등을 경험했던 시기로 예술을 둘러싼 기준과 유행 역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전쟁과 내전을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위축되었던 살롱이 더욱 보수적인 취향과 기준을 고수할 거라 생각했던 예술가들은 살롱의 권위주의적인 심사 위원들의 손에 작품의 생사여탈권을 맡기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전시회를 열게 된다. 그렇게 1873년 ‘무명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협회’가 출범하게 되고 이들에게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풍경을 주된 주제로 삼으며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드가는 온갖 모순과 악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 관심을 가졌고, 당시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의 대가인 앵그르로부터 들은 “선을 그려요, 많은 선을, 기억에 의해서이건, 자연에 의해서이건” 이 말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으며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인물과 사물의 윤곽선을 흐트러뜨렸던 것과 달리 그는 평생토록 선명한 윤곽선을 고수했다. 과거 어느 사조보다도 고객의 성향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했던 인상주의와 달리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는 당장 작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기에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존재감을 높여 갔다.
19세기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급진적인 도시 계획으로 파리 대개조가 일어나고, 대개조 이후 경제적으로 넉넉해 유유자적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 플라뇌르가 출현한다. 인상주의는 플라뇌르의 예술이고, 바뀐 파리의 모습을 보며 달라진 도시의 이면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드가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화가였다.
인상주의 그룹의 핵심이었지만
가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혁신의 편에 있으면서도 전통적이었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전통과 갈등을 빚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본능적이고 직관적이었다.
드가의 묘부터 시작된 장소가 오페가라르니에, 롱상 경마장, 그리고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박물관, 콩코르드광장 등 여러 장소로 이어져 소개된다. 파리에서 태어난 드가의 생애와 함께 보는 파리 예술공간을 지도와 함께 더 나아가 QR코드로 직접 그 장소를 보게 해둔 점이 색다르면서도 좋았다. 정말로 직접 지도를 보며 그 건물을 찾아다니면서 파리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알고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박스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그림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에투알>, 수석 발레리나가 풋라이트를 받으며 나오는 모습 뒤쪽으로 무대 배경막 사이에 서있는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려웠던 경제생활로 인해 후원자를 두었던 발레리나들의 비참한 현실이 몽황적인 아름다움과 대비되며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드가는 화면 속의 인물과 사물을 자르는데 뛰어났다. 19세기 회화에 이런 식으로 곧잘 나타나는 절단은 프랑스 혁명이래 자아가 파괴되고 사회체제가 해제되는 양상이 미술에 반영된 것으로 작품들이 시대의 징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항상 그림과 글이 함께하는 책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흐름의 끊김. 한참 집중해서 빠져들며 다음 장을 넘기는데 글이 아닌 그림이 나올 때의 당황함이란, 재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겨보지만 이미 끊어진 흐름, 다시 앞으로 가서 읽으며 그림을 건너 띄고 이어 읽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설명과 나와있는 그림이 서로 안 맞을 때도 있다. 앞에서 설명하고 뒤에 그림이 나오는 구조, 그 그림이 옆에 있었더라면 설명의 글이 더 잘 다가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과 함께 보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드가
1839년 등장했던 사진 앞에서 화가들이 초상화의 고객 대부분을 잃으며 사진에 거부감을 가진 것과 달리 드가는 직접 사진을 찍으며 활용했다. 재료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조소 작업을 한 <열네 살의 어린 발레리나>는 얇은 천의 발레 의상을 입히고 토슈즈를 신기고 리본까지 단다. 끊임없이 일관되게 세상을 무대처럼 바라보며 새로운 구도로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구사해 나갔던 드가, 시간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던 그를 눈으로 담아보며 그와 함께 한 시간을 이렇게 기록해본다.
노년의 드가는 파리를 배회했다. 소변을 자주 봐야 했기에 오늘날의 버스처럼 운행되었던 승합마차를 타고 다니지 못했다. 홀로 파리 여기저기를 비척거리며 돌아다녔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젊었을 적에는 감각을 탐하며 도시를 집어삼킬 듯했던 그가 이제는 방향도 목적도 없이 다녔다. 오로지 돌아다니는 존재인 플라뇌르가 드가의 마지막 정체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