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마취 상태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9
이디스 워튼 지음, 손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마취 상태』

이디스 워튼 | 손정희 옮김 | 은행나무


세계문학·영미소설 / 452 p.

반마취 상태란?

의학에서 출산하는 여성에게 모르핀과 스코폴라민을 혼합한 진통제를 주사하여 산고를 줄일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출산 자체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하는 의학 기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마취 상태 분만이 1920년대 미국 뉴욕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이 있는 법'이지 않을까?!




물론 출산에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지……. 그저 '아름다움'만이 있어야 해……. 아이를 낳는 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시적인 일이어야만 해. p.23

국내 초역 이디스 워튼 『반마취 상태』 소설에 등장하는 맨퍼드 부인 또한 출산에 있어 고통이 아닌 아름다움만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스스로에게 진통제를 주사하며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걱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소화불량이나 운동 부족일 뿐이라며 모든 것이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하던 그녀.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이 있는 법'이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은 없다 생각하며 수많은 의무들을 완수하기 위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이다.

7시 30분 정신 고양. 7시 45분 아침 식사. 8시 정신분석. 8시 15분 요리사 면담....

15분 혹은 30분 간격으로 정해져 있는 그녀의 일정표를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힌다. 친딸조차 엄마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서에게 자신을 좀 끼워 넣어줄 수 없겠냐고 물어볼 정도의 수많은 의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건국 이래 최고의 경제 호황기를 맞았던 풍요로운 세상.

하지만 동시에 가치관 붕괴로 정신적으로 찾아온 공허함에 따른 불안과 고통. 그리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빠져든 재즈 음악, 춤, 음주 등의 탐닉 행위.

이 모든 것이 뉴욕의 한 상류층 가정 맨퍼드 가족을 중점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듯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며 어지러이 진행되던 이야기 『반마취 상태』.

두 번의 결혼을 한 맨퍼드 부인 폴린 그리고 전남편 사이에서의 아들 짐과 그의 아내 리타, 현재 남편 덱스터와 그 사이에서의 딸 노라의 서로 얽힌 시선 속에서 그들이 느끼던 불안과 고통이 점점 반마취 상태로 변화해 가는 과정.

그 속에서도 지나가는 시대를 대표하는 '폴린'과 현재 시대의 '리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 '노라'의 관계가 인상 깊다.

특히 리타의 다음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 전 시어머니들이 두렵지 않아요. 예전처럼 영원한 관계는 아니잖아요. p.271


함께 하는 현재는 서로가 겪은 다른 시대가 겹쳐진 상태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그에 따라 불협화음 또한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노라'가 있듯 현재 또한 그렇게 서로 노력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이디스 워튼만의 특유의 문체로 그려진 미국 그 시대에서 현재를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