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 -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숨 유니버설 로봇
카테르지나 추포바 지음, 김규진 옮김, 카렐 차페크 원작 / 우물이있는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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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R 로숨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원작 | 카테르지나 추포바 글그림 | 김규진 옮김 | 우물이있는집


만화·그래픽노블 / 256 p.

어떤 노동자가 가장 훌륭한 노동자일까요?

헌신적인 노동자? 정직한 노동자?

아니요! 가장 값싼 노동자지요.

부려먹기에 가장 경제적인 노동자요.

p.6

정녕 100년 전 출간된 이야기가 맞는가?! 지금 당장!! 이 시대가 아니고?!

기술의 발전으로 더 편해지는 삶을 추구해오던 사람들이 불러온 기계화가 거꾸로 인간을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아무런 괴리감 없이 지금의 현실에 그대로 투영된다. 

어느 순간 우리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무인 시스템’ 그리고 노동의 대체자로 떠오르고 있는 ‘로봇’.

첫 시작은 높은 임금과 임대료 등의 이유로 값싼 노동자를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럼 그 이후는?! 과연 어디까지 대체될 수 있을까?

‘로봇’이란 단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던 100년 전 1920년,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 100주년으로 출간된 그래픽 노블 『RUR 로숨 유니버설 로봇』을 통해 그 해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봇이 어떻게 해서 인간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 로봇이란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말로, 체코어로 robota는 중노동, 부역 노동을 뜻한다.




인간을 버리고 로봇을 창조했어요.

p.22

1920년 해양생태계를 연구하던 늙은 로숨은 1932년 생물과 같이 살아있는 물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물질을 이용해 신경조직, 내장, 뼈 등 필요한 것들을 시험관에서 생명체를 얻는 데까지 이르자 진짜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지독한 유물론자였고 무신론자였던 늙은 로숨은 과학으로 마지막 하나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들려고 했고, 결국 10년에 걸쳐 ‘로봇’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로봇을 늙은 로숨의 조카 엔지니어 로숨이 대량생산을 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인간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 후 필요한 기능만 탑재하고 육체적인 능력이 우리보다 더 훌륭한 노동자이자, 놀라운 지능과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나 창의적인 사고는 할 수 없는 존재로. 



 

처음엔 유지비도 많이 들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불완전한 존재 인간을 대신할 노동자였다. 그리고 저주받은 사회에서 쓰레기 취급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길, 굴욕과 고통과 가난이 없는 지금보다 인류가 자유롭고 위대한 모습이길 원했을 뿐이다.

노동도, 봉사도, 출산도 기계가 대신하는 세계.

하지만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신하면서 배운 지식과 고통, 분노, 전쟁 등으로 점차 인간적으로 변해가던 로봇이었고, 결국 인간으로부터 배운 방법으로 인간을 멸종시키려 한다.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을 거예요.

로봇이 아니잖아요.

능력도 없으면서 명령만 합니다.

당신들은 쓸데없는 말만 합니다.

제겐 주인이 필요 없어요.

저는 다른 이들의 주인이 되고 싶어요.

인간의 주인이 되고 싶어요.

p.93


박사님,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p.80~81

왜 우리는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미래에 등장하는 ‘로봇’을 떠올리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보다 아래의 존재로 생각하는 걸까? 인간의 일을 대신할 존재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의 결과물이었던 로숨의 수많은 로봇들처럼 말이다.

대량 생산된 로봇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로봇이 대신해 주는 노동으로 생긴 여유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에도 다 공감이 되어 『RUR 로숨 유니버설 로봇』의 결말에 등장하던 새 인류에 대해 생각해 봄과 동시에 로봇과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극작가, 각본가, 수필가, 출판업자, 비평가, 기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카렐 차페크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았고, 무엇보다 연극으로 수없이 많은 무대에 상연되고 큰 성공을 거든 희곡 『R.U.R』를 A4보다 약간 더 큰 판본으로 출간된 그래픽노블 버전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술술 읽히는 길지 않은 이야기에서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가 깊은 울림이 되는, 소장하기 좋은 그래픽노블이다.



생명은 또다시 시작할 것이네.

벌거벗고 하찮은 것으로부터,

황무지에 뿌리내리고

우리들이 만들고 건설한 것은

생명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네.

도시들과 공장들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의 예술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의 사상들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네.

하지만 생명은 끝나지 않을 것이네!

끝난 것은 우리들뿐이네.

그래픽노블 『RUR 로숨 유니버설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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