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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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 민음사

한국장편소설 / 312 p.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고 부드럽게 방향을 틀고

서로의 마음속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말들이 완강하게 닫힌 내면의 문을 열고,

서로의 내면 깊숙이 진입하고,

그 안에서 자신과 꼭 닮은 말을 길어 올린다.

p.181

최근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오랜만에 만난 기쁨에 들떠 있었던 걸까? 쫑알 쫑알 얘기하기 바쁜 나를 보고 언니들이 말했다. “이다, 알고 보니 수다쟁이였네”

예전엔 친구들이 말 좀 해보라고 했을 정도로 듣기만 하던 난 어디로 갔을까?! 요즘 나조차도 내가 수다스러워졌음을 종종 느끼곤 하는 이때, 김혜진 저자의 장편소설 「경청」 책을 만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유능한 상담사에서 공공의 적이 된 임해수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좋은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경청’이란 기술의 중요성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사람의 귀가 두 개, 입이 한 개인 이유는 말하는 것보다 두 배를 더 들으라는 뜻이라 했고, 탈무드는 귀는 친구를 만들고 입은 적을 만든다고 했으며, 지혜의 왕 솔로몬은 신에게 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간청했던 이유를.

사람들이 익명으로 SNS에 쏟아 내는 말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녀는 말들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그 속에서 매번 길을 잃었다. …… 그녀는 몇 개의 단어가, 한 줄의 문장이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p.65

오랫동안 유능한 상담사로 살아왔다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녀는 용서받지 못하는 공공의 적 가해자가 된 걸까?

상담사가 단둘뿐이었던 센터에서 십 년을 일하며 같이 성장해왔던 일터로부터 퇴사 통보를 받았고, 함께 일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남편과는 이혼했으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극진히도 챙겼던 친구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매일 밤 편지를 쓴다. 그것도 끝내 보내지 못하고 폐기하는 사과인 듯, 항의인 듯, 후회인 듯한 편지를.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계속 다음 페이지를 읽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사정을 다 알고 나서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던 그녀가 사과 편지라 말하며 쓴 내용들에 나도 그러했을 거 같아서... 감정 이입 제대로 하며 읽었다.

그녀가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싸움을 하는 길고양이 순무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릴 때는 함께 기다렸고,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노력해 나아가던 아이와 그 기다림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깨달아 갔을 땐 함께 깨달으며 위로를 받던 시간.




장벽 없는 소통과 그로부터 치유되던 마음. 더 이상 과거에 묶여있지 않고 앞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던 ‘경청’.

한자로 기울 ‘경’(傾)과 들을 ‘청’(聽)으로 구성된 단어인, 귀를 기울여 들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경청은 한자를 풀이해 보면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사람(人)이 머리(頁)를 옆으로 기울여 왕(王)이하는 말에 귀(耳)를 기울이듯 듣고, 열(十) 개의 눈(目)으로 보듯 집중하고, 온전한 한(一) 마음(心)이 되는 듣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 또한 수많은 단어를 듣고서야 말하기를 시작하듯,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말과 감정을 상대방과 조금은 쉽게 이어주는 ‘통로’가 되는 '경청'을 여러 사람과 진정한 소통을 하고, 세상을 다시 듣기 시작하며 나아가기 시작한 임해수 그녀를 통해 나 또한 다시 배우며, 나도 들을 준비를 다시 재정비해 본다.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한 말이 언제 탄생하고 어ᄄᅠᇂ게 살다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p.225

김혜진 장편소설 「경청」, 인상 깊은 글귀

■ 누군가에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쉽게 잊히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피가 마르는데 잊은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p.7~8

■ 그녀는 오랫동안 유능한 상담사로 살았다. 상담사였을 때 그녀가 상대한 건 오로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사람들을 지배하는 기분. 그녀는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감정과 기분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조언을 하게 했다. p.28

■ 끝없는 의미 찾기.

그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상담사였을 때 그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것이었다. p.46

■ 얘야, 해수야, 해가 좋은 날엔 나가서 많이 걸어라. 뭐든 많이 보고 많이 들어라. 세상을 미워하는 건 바보 같은 것이다.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p.118

■ 남의 일에 입 대는 게 무슨 도움 되는 이야기야. 다 저 좋자고 하는 이야기지. p.171

■ 이 순간은 이 순간일 뿐이다. 그녀가 과거에 겪은 어떤 일의 결과도, 원인도, 이유도 아니다. 시간은 곧게 나아가지 않는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인과의 직선을 따라가지 않는 것처럼. 그녀 자신이 단 하나의 얼굴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p.185

■ 왜요? 왜 싫어해요? 얘들은 아무 짓도 안 하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싫은 데에 이유가 없으니 답답하지? p.195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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