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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이봐, 친구.
모든 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못하고 낙오하는 이들도 있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만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저 형식적인 자유뿐인 상태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최저한도의 생활 보장마저 힘든 상황에서부터 생이 시작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생존 또는 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건의 확보를 요구하는 권리인 '생존권'의 위협. 자본주의의 발달로 생겨난 부익부·빈익빈 현상.
가난과 비참한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절망 속에 갇혀 살아가야만 하는 그 어떤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던 비극적 세계가 「미친 장난감」 속 주인공 실비오를 통해 현실적으로 그려지며 되물어 온다.
언제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게 되냐고. 그리고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덤벼드는 꼬마에서 벗어나 어엿한 신사가 되려면, 보란 듯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놈의 세상, 왜 이다지도 불공평하냐고. 산다는 게 다 그런거냐고...
여기서 당장 꺼지라고, 이 더러운 자식아.
도대체 어쩌다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네 인생이 말이야?
「미친 장난감」 주인공 실비오의 첫 모험은 그가 책 속 모험 이야기에 푹 빠지면서 시작된다.
구두 수선공으로부터 도적 문학의 짜릿한 즐거움과 스릴을 알게 된 실비오는 퐁송 뒤 테라유 자작이 쓴 로캉볼에 관한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최고의 도적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언제나 위조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엔리케와 함께 도적들과 악당들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다 강도질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행위라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실비오와 엔리케는 전선, 전등갓, 접시, 나이프 등 족족 훔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경보 장치가 없는 금고에서 현금을 빼내는데 성공했으며, 뒤늦게 노파 집에 얹혀사는 친구 루시오가 합류하면서 '한밤의 신사들 클럽'이 탄생했다. 그리고 셋은 학교 도서관의 책을 훔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경찰의 추적으로 일이 커지자 비밀조직의 활동을 멈추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난 죽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냐…… 난 죽을 수 없어…….
그렇지만 난 자살해야 해.
더는 너를 먹여 살릴 수가 없다며 가난으로 인해 어려워진 삶을 이야기하던 엄마는 매일 같이 이제 너도 일해야 한다 말했고, 결국 실비오는 중고책방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가 꿈에 그리던 공간이었을 수도 있었을 책방. 하지만 손님을 끌기 위해 '소 방울'을 딸랑딸랑 쳐야 했던 그.
책방을 그만둔 뒤 항공 군사학교의 정비공으로 취직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퇴직, 지물포에서 종이를 판매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으나 다시금 그에게 손을 내밀던 범죄의 유혹.
그리고 경찰 수사관이 된 친구 루시오와의 만남과 거액의 위조수표 유통 사건으로 감옥에 있다는 엔리케의 소식.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로캉볼처럼 위대한 도둑이 되기를 꿈꾸었던 그가, 보들레르처럼 천재적인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던 그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가난에 무너져 내리게 될까?
이봐, 절름발이.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먹기 위해서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을 뿐이라고. 즐거운 일도 없고, 파티나 축제에 갈 생각은 꿈도 못 꿔. 그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잖아, 절름발이. 이제 이런 생활도 지긋지긋해.
가난한 프로이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했던 이야기 「미친 장난감」.
문학과 읽기가 그들에게 범죄나 다름없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했던 도서관마저 돈에 의해 철저하게 규제되었던 그 시절이 실비오의 삶과 경험으로 되풀이되며 일어나는 과정으로 담은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특히 그가 범죄의 세계에서 놓여나기 위해 했던 마지막 선택으로 받아야 했던 비난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은 절대 죽을 수 없으나 자살해야 한다는 실비오의 말이 메아리치며, 책 제목으로 정해진 '미친 장난감'의 의미와 함께 불타오르는 얼굴을 가진 표지가 저자가 던지는 묵직한 펀치로 돌아오며, 오늘날 '소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책이 그의 손을 거치지만 정작 그의 것이 될 수 없었던 현실.
당신은 오늘날 어떤 '소유'를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다들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다니는 거죠?
인생은 아름다운 거예요. 아름답고말고요…….
그렇지 않아요?
p.26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