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임지선 쓰고 엮음, 이소영 외 글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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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의 김민영

이지은, 임지선 외 3명 지음 | 아르테

영화·시나리오 / p.232

한국인의 삶 F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p.126

'저 내성적이에요.' 하면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네가?”라며 웃는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낯을 많이 가리던 나였기에, 짝이랑 내 앞, 뒤로 앉은 친구들이랑만 친하게 지냈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조금씩 활동적으로 변화했고, 민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내 친구 사진을 두 번 나눠 촬영했을 정도로 많았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스무 살 버디 무비 「성적표의 김민영」의 각본집을 읽으며 학교가 달라지고, 일하는 곳이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며 변해 버린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즐거웠던 나의 20대의 일상과 친구들도 함께 떠올려 본다. 


모든 일상을 함께했던 고3들의 생이별이 전국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생이별은 더 이상 그들이 고등학생 때처럼 같은 배경 아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모든 것이 바뀐다. 그 사이에 카톡으로 연결될 수 없는 공백이 발생한다.

p.159

수능 100일을 앞두고 창작욕을 잠시 재워 두자며 삼행시클럽 해체를 선언하던 정희와 민영 그리고 수산나. 이 셋은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대학을 가지 않고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청주에 남은 정희, 청주를 떠나 대구대에 진학한 민영, 아예 한국을 떠나 하버드대에 입학한 수산나 그리고 재수를 선택한 수능 시험장에서 만났던 정일.

처음엔 서로의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 화상 채팅을 하며 만남의 시간을 갖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진다 했던가?! 각자 생활하는 곳에서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셋의 우정은 점점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며 나 또한 경험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민영 자신이 자신의 집으로 정희를 초대했음에도 자신의 편입을 위해 성적표 결과에 계속 이의신청하며 정희와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던 모습에선 내가 꼭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홀로 민경의 집에 남겨진 정희가 민영의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보며 나도 어쩌면 민경이었던 적이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친구들에게 몇 점짜리 친구였을까?


미공개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는 무삭제 시나리오 「성적표의 김민영」에선 20대가 된 친구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재은, 임지선 감독 대담과 김주아, 윤아정 배우의 에세이 그리고 영화를 읽는 다섯 명의 시선까지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조금씩 멀어지던 그들이었지만 마지막 정희가 민경에게 남긴 성적표와 그림대회에서의 그림은 또 다른 메시지를 보여준 게 아닐까?!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인연 또한 있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20대로 돌아가 그때가 되어 본 시간이었다. 표지에서의 수경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정희와 민경의 에피소드에 웃음 지으며,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다. 세심하게 그려진 스무 살의 버디 무디 「성적표의 김민영」을 말이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남기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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