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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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 열린책들

러시아문학 / p.304

「백치」를 읽고 만나게 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내가 읽은 책은 유일하게 한 권인데, 괜찮을까?’란 걱정도 잠시 저자가 도스토옙스키를 만나게 된 과정을 풀어놓은 서문에서 17세기 러시아의 이른바 <열성 신도파>가 21세기에 환생한 거 같았다는 가이드의 달변 에피소드로 인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고, 그렇게 조금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안 읽었으면 어떠하리? 미리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걸작들의 명장면과 명대사로 친해지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과 함께 분명 후에 해당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에는 우리 모두가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삶의 일부인 ‘불안’부터 악의 조건이자 악의 결과로 본 ‘고립’, 인간이 단조로움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일상은 최고의 축복이 될 수도 반드시 빠져나와야 할 수렁이 될 수도 있게 하는 ‘권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중독이자 인간이 끊어 버려야 할 가장 끔찍한 중독인 ‘권력’, 도스토옙스키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화두 ‘고통’ 등 삶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는 총 12개의 키워드로 분류되어 있다.

주요 걸작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묶은 장면과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본 삶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한 페이지에 담고 있는 글이 많지 않아 읽기에 부담 없고 순서와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 쪽부터 읽어도 되며 중간중간 수록되어 있는 그림과 영화 포스터도 보는 재미도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지에서 온갖 유형의 인간 군상을 관찰하면서 이후 펼치게 될 인간론의 토대를 완성했고, 그 토대 중의 하나가 바로 '의미에 대한 욕구'였다고 한다. 그리고 단조롭고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일은 인간에게 형벌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또 다른 죄로 유도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죽음의 집의 기록' 제1부 제2장 명문장을 통해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악령’의 스타브로긴을 통해선 권태가 왜 악인지도 보았고, ‘백치’ 예판친 장군의 음흉한 비서 가냐를 비난하는 대목을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상투적이고 천박하며 남들 하는 것은 모조리 쫓아서 해야 안심하는 성격을 가진 평범함을 증오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조차 떠들지 못하게 하는 가난과 ‘죄와 벌’ 마르멜라도프가 술집에서 늘어놓는 장광설 등을 통해 다양한 고통 또한 만날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특별히 추려진 200개의 문장으로 그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고, 각 장면마다 짤막하게 해설해놓은 저자의 글마저 공감되는 것이 많아 하나하나 표시하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200개의 명장면 중 내가 인덱스를 붙여 놓았던 ‘백치’의 한 장면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나중에는 그 장면들이 늘어나 있겠지?!라는 생각에 또 신이 난다.

읽은 책은 읽은 책대로 더 자세히 정독하며 읽었고, 읽지 못한 책은 그 나름대로 또 앞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읽었던 뜻깊은 시간. 이제 온전히 소설 속에서 이 문장과 대사들이 자리했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정말 어떤 느낌일까?😌

도스토옙스키의 명문장 200, 인상 깊은 구절

▶ 세상은 날이 갈수록 하나로 합쳐지고, 이로써 거리를 줄여 나가고 허공을 통해 사상을 전달하는 형제적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아아, 인류의 그 같은 결합을 믿지 마십시오. 자유를 욕구의 증대와 신속한 충족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왜곡할 뿐입니다.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제2부 제6권 p.77 -

▶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습관화되면 우리는 획일화에 안주한다. <클릭>과 <좋아요>로 단순화되는 세계에서 탁월함은 증발한다. 순응과 타협을 너무도 일찍 가르치는 사회는 스스로 미래를 차단한다. <악마는 미지근함의 왕자요 타협의 제왕이다.> p.83

▶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거야. 단지 그 때문이네. 그것뿐이야, 그것뿐! 그걸 깨닫는 사람은 바로 그때, 그 순간 행복해진다네. - '악령' 제2부 제1장 p.91 -

▶ 제복을 입은 그는 천둥이자 신이었지만, 외투를 입은 그는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마치 하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제복이란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놀라운 일이다. - '죽음의 집의 기록' 제2부 제8장 p.102 -

▶ 어떻게 당신 내면에는 그런 치욕과 저급함이 그와는 정반대인 성스러운 다른 감정들과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는 거지? - '죄와 벌' 제4부 제4장 p.157 -

▶ 그는 사랑하므로 썼고, 존재하기 위해서 썼으며, 씀으로써 존재했다. p.179

▶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나 바라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천하 절경도 그냥 눈으로 보면 단순히 천하 절경일 뿐이다. 화자의 소망은 단순한 풍경에 위대한 자유의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삶을 지속시켜 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p.205

▶ 도스토옙스키는 용서 행위보다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한다. 그는 <당신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우리를 극한으로 몰아간다.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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