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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백치 1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세계문학 / p.588
도스토옙스키 200주년으로 접하게 된 문학동네 「백치」. 저자의 책으로는 '백야' 다음으로 두 번째로 왠지 모르게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혀 올레를 외쳤더랬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수많은 물음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복잡한 이름으로 인해 앞에 나와 있는 주요 등장인물을 여러 번 다시 보기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다.
문학동네 「백치」 1권을 읽기에 앞서 표지에 그려져 있던 인물이 누구일지, 책 제목의 백치가 누구일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해답은 생각보다 빠르게 초반에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를 백치라고 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이야기를 읽을수록 여러 해석으로 느껴지던 이 단어가 다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1, 2부로 구성된 「백치」 1권의 1부를 읽을 때만 해도 모든 사건의 중심에 나스타시야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문의 맨 마지막 사람으로, 스위스에서 뇌전증 치료를 받으며 시골에서 요양하던 므이쉬킨 공작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로고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예판친 장군의 부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선 예판친 장군의 막내딸 아글라야에게 마음이 있지만 나스타시야 지참금을 노리고 결혼을 결심한 예판친 장군의 비서 가브릴라를 통해 그녀의 초상화를 보게 된다.
또한 쉰다섯 살의 토츠키는 예판친 장군의 딸에게 청혼을 하면서 자신의 피후견인 나스타시야를 걸림돌로 여기며 예판친 장군과 함께 거액의 지참금을 지어주고 가브릴라와 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스타시야의 생일선물로 비싼 목걸이를 산 예판친 장군! 므이쉬킨 공작이 만나는 사람마다 다 나스타시야와 이어져있는 이 관계를 보다 보면 절로 머리가 아파온다.
이렇듯 사건의 중심에 있는 듯했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토츠키의 피후견인으로 살다 성장하며 남다른 외모를 보이자 토츠키가 정부로 들어 앉힌 인물이다. 그녀를 과시용으로 때로는 어떤 특정 그룹에서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데 이용하던 토츠키가 이제는 그녀를 눈에 가시로 여기며 치워버리려고 한다. 역겹다 정말.
거액을 주면서까지 나스타시야와 결혼하려는 로고진, 그녀의 지참금을 보고 결혼하려는 가브릴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그녀를 이용한 토츠키 등 그 누구도 그녀 자체만을 봐주지 않았다. 그랬으니 유일하게 처음 자신을 보았음에도 믿어주던 공작에게 그녀가 마음을 빼앗기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을지 모른다.
공작은 진심으로 나를 위해 온 힘을 바치시는 분으로 내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신뢰하게 된 분이에요. 저분은 첫눈에 나를 믿어주셨고, 나도 저분을 믿어요. p.280
하지만 사람들은 공작을 백치라고 이야기한다. 여자를 좋아하냐고 묻던 로고진이 타고난 병으로 인해 여자라곤 모른다고 답하는 므이쉬킨 공작에게 유로지브이와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했고, 다른 이들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선의의 거짓말조차 못하는 그를 대놓고 바보라 이야기한다.
그런데 유로지브이란 보통 성(聖)바보 또는 바보 성자로 번역되는 기독교의 백치 성자, 고행자, 수난자이다. 그리고 “공작, 자넨 유로지브이와 다를 바 없군, 하느님은 자네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지!”(p.28)라고 말하던 로고진의 말에서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더 나아가 공작이 들려주던 마리의 이야기를 통해선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때묻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질적 가치와 힘을 파악하는 직관적 시선을 지닌 순박한 인간인 공작.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본질까지 꿰뚫어보는 식의 묘사를 볼 때면 영적인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때론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처럼 너무 해맑은 모습을 보일 때면 어리숙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로고진과 결혼한다던 나스타시야가 변덕을 부리며 도망을 쳤다 돌아오기를 여러 번, 거기에 연관이 있는 공작이 굳이 로고진을 찾아가 나는 그녀를 ‘연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연민의 정으로 사랑하고’ 있네. (p.376)라고 이야기한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가 절로 나왔던.(이 공작을 어쩔거냐고오!)
진실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소설이 2권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1권 후반부부터 가져야 했던 수많은 물음표가 2권에서는 느낌표로 가득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2권 표지 여인의 정체는 누구일까?(두둥!)